시간은 때로 꽤 많은 것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한때 걷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오르던 어떤 감정이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강을 건너게 되면서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조차 희미해져 갈 때, 시간은 참 공평하면서도 냉혹한 것이라는 사실을 꺠닫는다. 연쇄살인사건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날 때도 마찬가지다. 빠른 시일 내에 범인이 잡힌다면 좋겠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진척이 없을 땐, 처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커다란 분노와 슬픔조차 서서히 그 빛깔이 옅어진다. 그 참혹한 살인조차도 아련한 추억으로 만들어버리는 시간의 힘이라니, 참 가차없다.
그래서 우리 나라 영화 <살인의 추억>은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섬뜩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한없이 쓸쓸하고 서글펐다.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슬픔과 분노마저도 어느덧 추억처럼 희미해져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그저 보고만 있어야 했던 사람들. 비단 우리 나라 사람들만의 감정은 아니었나 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조디악> 역시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소름끼치는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이처럼 시간에 휩싸여 싸늘해져가는 현대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었으니 말이다. 다만 보다 차갑고 보다 조용하게, 그래서 더 섬뜩하게 이야기한다.
1969년 샌프란시스코를 기점으로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남자들은 생존하고 여자들만 목숨을 잃는 살인사건. 더 기가 막힌 것은 자기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누군가가 매 사건마다 경찰에 신고를 하며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린다는 것이다. 범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역의 유력 신문사들과 경찰서에 암호를 실은 편지를 보내며 일종의 "게임"을 제안한다. 범인은 신문 1면에 자신이 보낸 암호를 실을 것을 요구하며 샌프란시스코 전역을 마비시킨다. 퍼즐에도 소질이 있던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스의 삽화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제이크 질렌할)는 이 사건에 유독 깊은 관심을 갖고 같은 신문사의 베테랑 기자 폴 에이브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암호 해독 등 사건 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청의 강력계 경위 데이브 토스키(마크 러팔로) 역시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기꺼이 드러내면서 자신을 찾아내기를 당당하게 원하는 범인의 행각때문인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데 골몰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수시로 수포로 돌아가고, 사건의 범위는 점점 샌프란시스코 뿐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희생자만 늘어간다. 분명 여러 단서들을 갖고 있음에도 매번 헛수고만 하는 경찰과 언론은 범인의 계략에 놀아나고 있는 것인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지난 작품들을 통해 현란한 영상과 빈틈없는 연출력을 과시하며 "테크니션"으로서의 명성을 날려온 데이빗 핀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상당히 다른 노선을 택한 듯 싶다. 간단히 말해, 이번 <조디악>에서는 그의 이전 영화에서와 같은 현란한 영상과 도시적인 연출력은 상당 부분 자취를 감췄다. 대신 실제 있었던 사건을 최대한 꾸미지 않고 진솔하게 쫓아가는, 담백하고 조용하지만 진득한 연출력을 선보인다. 170분에 가까운 만만치 않은 러닝타임동안 영화는 눈부신 기교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리고 드디어, 핀처 감독은 이를 통해 이제는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더 멋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섬뜩한 소재와는 달리 시종일관 조용하고 진득한 영화의 분위기에 걸맞게 배우들의 연기 또한 광기 어린 듯 폭발적이진 않아도 안정된 자세에서 믿을 만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사건을 이끌어가는 세 인물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와 폴 에이브리, 그리고 데이브 토스키는 사건을 대하는 적극성에 있어서 서로 차이를 보이는데, 그 미묘하면서도 분명한 차이를 제이크 질렌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크 러팔로 세 배우가 멋지게 연기해냈다. 제이크 질렌할은 예의 모범적이면서도 활동적인 이미지를 세 아이를 둔 가장이기도 한 로버트의 캐릭터에 대입시키면서 묘한 조화를 이끌어낸다. 사건을 향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지만 뭔가 노련한 경력자라기보다 활기부터 앞서는 신입사원같은, 그래서 한편으론 능숙하지 못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치기도 하는 로버트의 모습을 잘 소화해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가 이렇게 출중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였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점잖은 듯 하면서도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과감하게 치고 나가는 대담한 면모를 보이는 폴 에이브리 역을 조용하지만 감히 넘볼 수 없는 뚜렷한 개성을 덧입혀 연기해냈다. 젠틀한 이미지와는 달리 실생활에선 사고뭉치였던 그의 실제 이미지가 어느 정도 겹쳐 보였던 탓일까, 점잖은 듯하지만 자기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폴 에이브리의 모습이 더욱 무게감 있게 와 닿았다. 늘 부담없으면서도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 온 마크 러팔로 역시 이 영화에서 세 사람 중 어쩌면 사건에 대해 가장 소극적이라 할 만한 데이브 토스키가 사건 해결을 향한 욕망과 현실적인 장애 사이에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훌륭히 연기해냈다. 이들 외에도 로버트의 아내 멜라니 역의 클로에 세비니, 데이브의 동료 수사관 빌 역의 앤써니 에드워즈, 유명 방송인 멜빈 벨라이 역의 브라이언 콕스, 손글씨 감정가 셔우드 역의 필립 베이커 홀, 샌프란시스코 경찰청의 고위 간부 역의 더모트 멀로니 등 다양한 개성의 주변 인물들을 보여주는 조연 배우들의 묵직한 연기까지, 일단은 이렇게 배우들의 연기가 굳건하게 받쳐주니 영화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스릴러 내지는 드라마로서 관객들에게 조용하지만 효과적인 흡입력을 선사한다.
앞서 얘기했듯, <조디악>에서 데이빗 핀처 감독이 보여주는 연출 실력은 그가 이전까지 보여 온 것과 상당히 다른 구석이 많다. 폭력과 살인을 비주얼적으로 강조하지도 않고, 관객들의 숨을 절로 멎게 할 현란한 카메라의 움직임도, 관객의 신경을 갖고 노는 듯한 재기발랄한 전개도 없다. 대신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더욱 현실과 가까이 맞닿은 듯한 특유의 도시적인 서늘함과, 섣부른 긴장과 이완 없이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사건을 쫓아가는 섬세한 시선이 남아 있다. 17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동안 영화는 기교를 사용하기보다 사건의 발생과 전개 과정을 마치 수사 기록처럼 세심하게 따라간다. 익히 듣던 말대로, 이 영화가 기초로 한 사건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이 영화를 본다 하더라도 오히려 영화를 통해 사건의 처음과 끝을 모두 알 수 있을 만큼, 영화는 사건의 영화적 재현보다는 현실적 기록에 초점을 맞춘 듯 하다.
결국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현실의 수많은 일들은 영화에서만 있을 법한 일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이 되고, 등장인물들이 느꼈을 감정은 영화적으로 조작된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이 품었을 감정이 된다. 이처럼 영화적 기교보다 사실적 묘사와 서술에 집중한 <조디악>의 전개는 그래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의 전개와 그 속에서 펄떡거리는 인물들의 심리를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물론 핀처 감독은 여전히 "조디악 킬러"가 보낸 암호들이 신문사 전체를 감싸는 장면을 통해 긴박한 압박감 속에 흘러가는 사건의 정황을 묘사하고, 짤막짤막하게 끊어지는 컷과 어둠의 효과적 이용을 통해 긴장감을 멋드러지게 조성하는 등 테크니션으로서의 면모도 여전히 적당히 과시하고 있다. (특히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노란 택시를 둘러싼 살인현장 장면은 정말 별다른 기교가 없음에도 빼어난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이 단지 그 당시의 이슈로서만 그치지 않고 40년이 거의 다 된 지금까지도 수사가 진행될 만큼 끊임없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온 일이라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도 상당했을 것이다. 영화는 이에 걸맞게 살인사건을 다뤘다고 해서 스릴러로서의 면모만 과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그 영향을 받은 사회가 어떤 결과들을 낳는지는 차분히 쫓아간다.(물론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추리극으로서의 재미를 되살리며 장르영화다운 구석을 드러내는 건 마찬가지다.) 첫번째가 이 살벌한 와중에 펼쳐지는 경찰과 언론 간의 신경전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그저 경찰은 수사하고 언론이 이를 착실히 보도하면 되지 않겠냐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만도 않은게, 어떤 중요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순간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알 수 없기에 경찰은 쉽게 언론에 알리기를 꺼려하고, 한편 언론은 오랜만의 대박 특종을 건져야 하기 때문에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면 반드시 기사로 싣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충돌을 겪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일촉즉발로 전개되는 사건의 추이를 놓고 경찰과 언론이 벌이는 골때리는 신경전을 묘사하면서 살인사건이 점점 복잡하게 만들어가는 사회의 단면 하나를 묘사한다.
이러는 과정에서 살인범은 언론과 기묘한 화학작용을 이루게 된다. 대담하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살인범과 그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듯 하면서 결국은 그의 계략에 완벽하게 말려드는 언론의 모습 말이다. 살인범은 애초부터 자신이 만든 암호를 신문 1면에 게재할 것을 요구하며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린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람을 살해하는 목적에 대해서까지 구구절절이 설명하면서 자신이 가지는 독특한 캐릭터를 강조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름은 끝까지 알리기를 거부하면서 어떤 범접할 수 없을 듯한 신비감을 조성한다. 이런 살인범의 꽤나 능숙한 기술을, 언론이 이용하는 듯 하면서도 완벼갛게 말려든다는 점이 문제다. 언론은 살인범을 방송이나 신문에 직접 등장시키기까지 하면서 그것을 자신들의 특종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그러한 언론의 행동은 결국 앞서 얘기한 살인범의 행각들과 맞물리면서 살인범을 점점 뜬구름같은 존재로 만든다. 잡으려 손을 뻗어도 여기저기서 흩어지는 신기루와도 같은 어떤 절대적 존재인 양 본의 아니게 살인범을 띄워주는 셈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살인범 본인의 두뇌 플레이와 이에 완벽하게 놀아 난 언론의 모습이 만들어 낸 신기루같은 범인의 존재는 이를 쫓는 사람들을 미칠 지경에 이르게 한다. 분명 희생자들을 죽인 사람은 있는데, 모든 증거들을 갖다 대봐도 도무지 맞는 용의자를 찾을 수가 없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살인사건이기에 이를 저지른 범인을 잡는 것은 인간의 도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면서 범인의 행방은 갈수록 연기처럼 묘연해지고, 오히려 이를 쫓는 사람들은 더 이상 가망없는 것에 목숨을 거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다. 분명 대박을 맞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할 때마다 항상 쪽박을 차는 도박처럼, 사건에 몸을 담그는 것 역시 분명 범인은 있는데 시도마다 허탕을 치는 헛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렇게 점점 희미해지는 범인의 흔적 속에서 이를 뒤쫓는 인물들의 모습은 더 이상 활약이 아닌 불필요한 짐이 되어 간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사건을 두고 불같이 타오르던 여론도, 심지어는 여론이 다 식은 가운데에서 외로이 끝까지 불씨를 붙들고 있던 인물들의 행적도, 시간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쉽게 타올랐다가, 지지부진한 전개 속엣 어느덧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불씨는 황급히 사그라든다. 마침내 적막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버티던 소수의 사람들마저도 포기하고 말 때, 결국 한 시기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이 살인사건은 마치 전설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살인사건이 전설이 되다니, 그렇게 피부에 와닿던 공포가 마치 헛것처럼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다니, 참 소름끼치는 현실이다. 이렇게 영화는 한 살인사건을 통해 단순히 스릴러로서의 긴장감만 조성하는 데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이로 인해 한 사회가 헛된 생명력을 순식간에 얻고, 그러다 얼마나 순식간에 그 생명력을 잃어가는지를 무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그 무덤덤한 어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 영화가 꽤나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덤덤한 어조가 품고 있는 싸늘한 현실의 시선을 떠올리면 절로 소름이 끼친다. 영화의 오리지널 포스터에 보면 "연쇄살인범으로부터 목숨을 잃는 방법으로는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이 있다."라는 카피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카피가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 그 망할 놈의 "조디악 킬러"는 결국 사람만 죽인 게 아니라, 그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던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 가득 끓어오르는 감정들 마저 죽인 것이다.
이렇게 <조디악>은 연쇄살인이라는 지극히 자극적인 소재를 깔고는, 그것이 어쩌면 한 사람 혹은 한 사회로 하여금 얼마나 빨리 달아오르고 얼마나 빨리 식어버릴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냉엄한 시험대가 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 시험대 위에서 마치 살인범의 손에 놀아나는 듯 자신의 목숨까지도 담보로 하며 사건에 목을 매고, 그러다가 결국은 연기처럼 그 열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섬뜩하다가도 서글퍼진다. 예전같았으면 이런 소재를 가지고 매끈한 스릴러를 만들었을 것 같은 데이빗 핀처 감독은 이렇게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주제 속에 당시 사정없이 휩쓸렸던 사회의 싸늘한 자화상을 훌륭하게 펼쳐놓음으로써, 그의 시선이 단지 예리할 뿐만 아니라 깊고 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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