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 리스트에 대하여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원작 : 토마스 케닐리
배우 : 라이엄 니슨슬리, 레이프 파인스
상영시간 : 3시간 15분 , 벤 킹
제작연도 : 1993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토마스 케닐리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y
쉰들러 리스트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오하이오주(州) 신시내티에서 출생하였다. 유대계 출신으로 UCLA대학을 졸업하고 텔레비전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다가 1972년 《격돌 Duel》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1974년 첫 극장용 영화 《슈걸랜드 특급열차》를 만들고, 1975년에는 식인상어와의 혈투를 그린 《조스 Jaws》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영화계의 대표적인 흥행감독으로 떠올랐다. 그 후 《클로스 엔카운터》 (1977) 《레이더스》(1981) 《E.T》(1982) 《인디애나 존스》(1984) 《컬러 퍼플》(1985) 《후크》(1991) 《쥐라기 공원》(1993) 《쉰들러 리스트》(1994) 등의 영화를 연출했으며 대부분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쉰들러 리스트》는 1994년도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7개부문상을 수상함으로써 흥행성은 높지만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들지는 못한다는 그에 대한 평가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시놉시스...
오스카 쉰들러(라이엄 니슨슬리)는 나치당원으로 거물들과의 인맥을 바탕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가이다. 1939년 폴란드는 2주 만에 독일군에 점령되었다. 쉰들러는 이곳에 식기공장을 세워 전쟁기간에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그는 유대인 회계사 스텐(벤 킹슬리)과 함께 공장의 문을 연다. 유대인을 무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어 돈을 많이 벌어들인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을 폐쇄하라는 명령이 내린다. 유대인들에게 이유도 없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쉰들러 공장의 노동자와 함께 스텐도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다. 어둠 속에서 끊이지 않는 총성과 불꽃을 바라보며 쉰들러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크라코우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심한 노동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지낸다. 쉰들러는 광기어린 친위대의 젊은 장교 거트(레이프 파인스)와 개인적인 친분을 두텁게 한 뒤, 식기공장을 다시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거트의 감시 아래 있지만 공장이 다시 가동되어 스텐과 직공들도 다시 일하게 된다. 노동력으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은 찜통 열차속에 짐짝처럼 채워져 죽음을 향해 떠난다. 이런 일들을 겪은 쉰들러는 고민하다 유대인을 살려내자는 결단을 내린다.
전쟁 동안 축적한 재력을 바탕으로 유대인 한 사람당 값을 쳐주고 거트와 협상한다. 자신의 고향인 체코에 공장을 세우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산다는 명목이다. 전에 자신의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 그 가족 등 스텐과 함께 모두 1,100명의 유대인 명단을 작성한다. 이들은 극적으로 체코행 기차에 탄다. 잘못되어 아우슈비츠로 보내져 머리를 깎이고 옷이 벗겨져 한 방에 모인 그들의 머리 위에서 살인 가스가 나올까 질려 일그러진 모습, 공포에 떠는 가장 비극적인 인간의 모습의 한 장면이다. 쉰들러의 유대인들은 체코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종전을 맞기까지 인간적인 생활을 한다.
전쟁이 끝난 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금이빨을 뽑아 만든 반지와 전범으로 몰릴 쉰들러를 염려해 모두의 서명이 된 진정서를 써서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들이 준 반지에는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세계를 구한 것이다ꡑ라는 탈무드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반지를 받아든 쉰들러는 더 많은 유대인을 구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쉰들러 리스트는 제작 연출을 맡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나치들의 잔인한 광기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이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출연자 모두 폴란드와 이스라엘의 무명배우들로, 장소도 실화의 현장인 크라쿠프에서 실제 그때의 공장을 사용해 촬영한 흑백영화이다. 1993년 제6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쉰들러 리스트의 영화 기법
한 마을에 도둑들이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 상 황을 가장 현실감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의 기법은 무엇 일까?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에서 그 정답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카메라이고, 카메라 중에서도 하이 앵글 쇼트와 핸드 헬드 카메라의 사용이다. 핸드 헬드 카메라를 사용해 어지러운 상황을 팬이나 플래시 팬으로 거칠게 표현해서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또한 쫓고 쫓기는 상황은 하이 앵글 쇼트를 사용하여 스릴을 느낌과 동시에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핸드 헬드 기법을 사용했다...
핸드헬드(들고 찍기) 촬영기법의 사전적 의미는 카메라가 고정된 받침대나 기계적 안전 장치에 부착되지 않았음을 현저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 촬영 방식을 말한다. 이것은 휴대용 카메라를 통해 촬영되거나 그 결과로 나타난 불안전한 영상의 상태를 가리키며, 영화에 우발적이고 분방한 스타일을 부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핸드헬드 기법은 시네마 베리떼 다큐멘터리에서 적극적으로 채용되어 왔고 지금은 극영화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처음으로 영화용 카메라가 발명되었을 때는 지나친 무게 때문에 이것이 불가능했으나 1920년대 이후의 기술 혁신에 의해, 특히 뉴스 영화를 위해 특별히 한결 가볍고 작은 모양으로 카메라(에끌레어 카메라)가 개량되면서 기록영화나 전위영화 작가들에 의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의도적인 핸드헬드로 인해 현장성, 즉흥성, 자유 분방함 등의 리얼리즘 스타일이 강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카메라가 화면 내의 참가자로 직접 등장하는 미학상의 차원으로까지 발전되었다. 일반적으로 누벨바그는 카메라 움직임을 자유분방하게 펼쳤는데 패닝과 트래킹 뿐만 아니라, 회전그네든 휠체어든 막다른 골목이든 어디를 막론하고 들고 찍기를 감행하였다. 누벨바그의 핸드헬드가 보여준 새로운 사실주의적인 장면은 자연조명이나 롱테이크와 더불어 현장촬영의 규범이 되었다. 이는 최근 1995년 도그마 선언에 있었던 현장감 넘치는 핸드헬드 촬영의 고집으로까지 이어져 누벨바그의 영화미학을 독특하게 발전시켜오고 있다. 프랑코 제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1968)에 나오는 긴 격투장면은 핸드헬드로 촬영하여 카메라를 액션에 휘말린 사람의 시점처럼 보이게 했다. 또한 <브레이킹 더 웨이브>(라스폰 트리에, 1996)에서는 항상 조금씩 흔들리는 화면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미세한 감정의 변화들을 표현했으며, 최근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스티븐 스필버그, 1998)에서는 도입부의 상륙장면을 핸드헬드로 찍어 2차 대전을 실제로 중계하는 듯한 사실감을 만들어 냈다.
국내에서 핸드헬드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이 흥행에 성공한 이후였다. 주인공을 후위에서 따라가며 핸드헬드로 촬영하여 주인공에게 운동감과 사실성을 부여한 이 스타일은 이후 국내에서도 활발히 쓰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근래에는 자주 접하게 되는 카메라 기법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성수 감독의 <비트>(1997)이다. 환규(임창정)에게서 돈을 뜯어간 동네 깡패들과 민(정우성)이 싸우는 장면에서 핸드헬드가 사용됨으로써 실제 싸움의 현장에 있는 듯한 사실감과 현장감, 운동감을 관객에게 만들어 주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임상수, 1998)에서도 핸드헬드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세 명의 주인공들을 개별적으로 비추는 장면에서는 상당히 흔들림을 나타내고 다른 장면에서는 비교적 유동이 적은 움직임을 나타낸다. 섹스 씬도 교차 편집이 아닌 핸드헬드로 촬영하여 일상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핸드헬드의 장점이 현장성이라면 <산부인과>(박철수, 1997)에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하지만 다의적이고 열린 시각의 입장에 서면 그 의미가 모호한 부분이 많다. 핸드헬드는 관찰자, 즉 관객에게만 시선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도 하나의 관점을 제공하는데 이는 감독(혹은 작가)이 부여한 시선이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 감독은 카메라에 남성의 관음증적인 시선을 제공한다. 이제 카메라는 현장성을 넘어 여성의 신체를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자유 분방하고 독보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산부인과>의 핸드헬드는 여성을 둘러싼 성과 출산 문화라는 현실적 문제를 외면하고, 단지 쾌락적 시선에만 얽매이고 말았다. 감독의 의식이 어떻게 반영되느냐에 따라 핸드헬드의 현장성이 왜곡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핸드헬드가 쓰인 영화로는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1999)가 있다. <간첩 리철진>에서 핸드헬드는 화장실 안에서 화이가 철진에게 운명을 빌려주는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사용된다. 시작 부분에서 간첩이 자살하는 장면은 뉴스나 다큐멘터리 같은 역동성과 현장감을 준다. 하지만 리철진이 낯선 땅에 와서 적응하는 동안의 모습에서는 핸드헬드가 두 가지의 기능으로 작용한다. 하나는 낯선 땅에 와 있는 리철진의 어색함과 회의하는 감정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와 동일한 기능으로 말이다. 또 하나의 기능은 낯선 그를 관찰하는 관찰자의 기능이다. 예를 들어 리철진이 빨간불에 신호등을 건너는 장면에서처럼 관찰자에게는 낯선 인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핸드헬드는 관찰자의 호흡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양식화된 기존의 문화 관습과 패러다임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은 영화 형식에 있어서 핸드헬드 촬영으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히 테크닉이 아니라 영화 미학을 담아내는 역할까지도 수행함으로써 도그마 95 이후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펼쳐 보이고 있다.
하이 앵글 쇼트 기법을 이용했다...
하이 앵글 쇼트(high angle shot) 카메라는 크레인에 설치되거나 혹은 천연적으로 높게 튀어 나온 곳에 설치된다. 이 앵글은 관객들에게 전반적인 조망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숙명이나 운명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 앵글은 속도감각은 잘 전달되지 않는 반면 지루함을 나타내는 데는 효과적이다. 하이 앵글은 피사체의 중요성이 감소되며 위에서 찍힌 인물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 같고 사소하게 보인다. 이 앵글은 자기비하를 나타낼 때 효과적이기도 하다.
*쉰들러리스트 :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는 다르다. 흔히 흥행감독이라 말을 하지만, 그 이상이다. 유태인 학살문제를 오스카 쉰들러 한 사람의 일로 축소 시킨 점도 있지만, 그가 아니면 누가 과연 이런 대단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는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내가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일까. 더 많은 책 읽고 좋은 영화 보면서 생각해보아야겠다.
쉰들러 리스트의 이미지!!
이 영화는 첫부분과 끝부분을 빼고는 흑백으로 보여진다. 흑백영화의 최대장점인 명암의 대비와 촛불의 미학, 그리고 클로즈 업의 위력으로 더욱더 공포감을 조성한다.
흑백 위에 칼라를 채색했다.
빨간 옷을 입은 소녀장면과 영화 후반부의 시체를 태우는 장면에서 옮기던 시체에 묻은 피를 빨간색으로 색칠해서 그 상징을 부여하였다.
소녀의 빨간 옷은 생명의 소중함과 희망을 상징 하는 듯 하며 피 묻은 시체는 절망, 좌절과 극한상황 잃어버린 희망 등을 상징한다고 생각된다.
핸드헬드(들고 찍기) 촬영기법의 사전적 의미는 카메라가 고정된 받침대나 기계적 안전 장치에 부착되지 않았음을 현저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 촬영 방식을 말한다. 이것은 휴대용 카메라를 통해 촬영되거나 그 결과로 나타난 불안전한 영상의 상태를 가리키며, 영화에 우발적이고 분방한 스타일을 부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흑백 영상과 핸드헬드 촬영기법은 사실성을 부여해 준다. 특수효과가 없었음에도 3시간 15분이나 되는 이 영화에 관객이 몰입하고 감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실성에 있다. 나찌에 의한 유태인의 학살을 카메라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유태인의 모습, 죽음의 공포로 가득찬 표정들, 아무 죄의식없이 유태인을 살해하는 나찌장교의 싸늘한 얼굴, 시체를 태우고 눈처럼 떨어지는 재 등등. 충격적이고 잔혹한 학살의 광경은 관객을 몰입하게끔 만든다.
화면 속의 유태인들에게 관객은 동일시하고 특수효과에 의존하기보다는 사실적인 묘사가 이 영화의 스타일상의 특징이다. 흑백화면, 3시간 15이라는 긴 상영시간, 유태인 학살이라는 어두운 주제라는 유리하지 못한 조건에도 스필버그는 역시 그답게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하고 감동하게끔 만든다.
Ϩ͒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¾ žõXȠ婠ʎŸ7 구해낸 바로 그 사람이다. 영화에 전반부에 그의 속물적인 성격에 대한 묘사e:13px;color:"#000000";line-height:21px;text-align:justify;'><A NAME="#1610000995"></A><IMG src="C:\DOCUME~1\안상현\LOCALS~1\Temp\UNI8aa1.gif" width=176px height=141px >Ϩ͒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ɘꘘ¾<SPAN style='HWP-TAB:1;'> </SPAN>žõXȠ婠ʎŸ7 구해낸 바로 그 사람이다. 영화에 전반부에 그의 </SPAN><SPAN STYLE='font-family:"굴림체";font-size:13px;color:"#0000ff";line-height:21px;text-align:justify;'>속물적인 성격에 대한 묘사</SPAN><SPAN STYLE='font-family:"굴림체";font-size:13px;color:"#000000";line
감동적인 장면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지극히 헐리웃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는 소리없이 가방에 패물을 가득 담은채로 떠났다고 한다. 현실과 영화의 간격... 이 영화에서 관객을 경악케 하는 것은 유태인학살이다. 인간의 이성과 광기가 결합되었을 때 그것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가를 나찌의 유태인 학살에서 볼 수 있다. 인간의 역사를 지배한 것은 광기와 탐욕과 전쟁이 아닐까 싶다. 은폐되어진 채로 반복될 따름이다. 수많은 학살의 역사가 어떤 것은 주목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한 채 지속되어 왔다.
이 영화의 주제는 '휴머니즘'이다. 바로 자신이 유태인인 스필버그에게 이 영화는 진실된 것이다. 꿈과 환상의 세계에서 그는 자신의 역사,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독일의 나치정권 치하에서 한때 나치에 동조했던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가 폴란드 의 자기 공장에 유태인들을 취직시켜 1천1백명을 아우슈비츠 등 대학살로부터 구 해낸 얘기를 다룬 실화 흑백 대작. 전쟁과 기아, 인종차별과 독가스를 뛰어넘어 피어난 휴머니즘이 감동의 파도를 몰아친다는 평이다.
300명의 여자 엑스트라들이 나체로 출연해 가스실에서 아이를 안고 몸서리치는 아우슈비츠의 생생한 장면은 '지옥'을 재현하는 듯 하다. 마지막 장면에는 '쉰들러주덴(Schindlerjuden)'이라고 불리는 실제 128명의 생존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날아가 '쉰들러의 무덤'에 돌을 놓는 모습을 담아 리얼 리즘을 부각시켰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1994년도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쉰들러 리스트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7개 부문 상을 수상함으로써 흥행성은 높지만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들지는 못한다는 그에 대한 평가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영화를 보고...
학기가 끝나고 평소에 보고 싶었던 쉰들러 리스트를 여러 군데 비디오 가게를 돌아다니며 어렵게 구했다. 꼭 보고 싶었기에 비디오를 손에 쥔 순간 한걸음에 집으로 가서 비디오를 켰다. 첫 장면의 촛불이 타오르는 장면과 끝 장면의 유태인 생존자들이 출연하여 영화의 리얼리즘을 높여준 장면을 제외하고는 흑백으로 영사되었다. 이상하게도 흑백필름에서 왠지 모를 향수가 느껴졌다. 영화의 이해란 과목을 수강하면서 배웠던 여러 가지 영상기법을 상기시키며 영화에 몰입되어 갔다. 나치당으로부터 자행되었던 끔찍한 유대인 학살 장면을 리얼리틱하게 묘사한 스필버그와 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영화는 저널리스트인 ‘토마스 케넬리’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쓴 소설 ‘쉰들러 리스트’를 우연히 건네받은 스필버그가 후일 영화화 할 것을 다짐하며 기획이 진행되었는데, 제작사와 스필버그간의 필름논쟁으로 인해 93년에야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반드시 흑백이어야 한다는 스필버그의 단호한 고집으로 결국 쥬라기 공원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겠다는 스필버그의 약속을 받고서야 영화 전체의 흑백처리를 허락했다고 한다. 만약 이 영화가 칼라화 됐다면 다소 작품성이 떨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안네의 일기를 떠올랐고 유태인 학살과 마루타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 민족이 동일시 되어 보였다. 나는 일본의 지배를 받은 세대도 전쟁의 피해자도 아닌데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실에 분노를 느끼듯 스필버그도 그가 유대인이라는 자기 정체성과 민족성으로 이 가슴 아프게 영화를 찍었을 거라 생각된다. 그는 유태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학살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자기민족의 과거를 생생히 그려냈다. 영화 속에 교수님께서 즐겨 말씀하시던 흑백으로 일관되다 그 특정부분만을 덧칠한 나찌들을 피해 숨는 꼬마 아이의 옷이 붉은색으로 처리 된 것이 묘하게 인상스럽게 보였다. 3시간 15분의 긴 영화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실존인물인 오스카 쉰들러의 인도주의적 행동에 존경이 들고 너무나 참혹하고 비참했던 유태인 학살로 희생된 유태인들이 가슴 아펐다. 영화의 후반부에 독일의 후퇴로 오스카 쉰들러가 공장을 떠날 때 살아남은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금이빨을 뽑아 만든 금반지에 새겨 넣었던 ‘한 생명을 구한 것이 전세계를 구한 것이다’라는 탈무드에 나오는 인용구가 가슴에 새겨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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