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WAR>
디워를 보고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했기에 디워에 대한 감상평을 쓰려니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난 보통 몇백만 관객 돌파를 한 영화는 내가 봐야 할 영화리스트에서 제외시킨다. 난 아주 이상한 사고방식을 하나 갖고 있는데 대박날 정도의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영화는 나중에 봐도 되고, 굳이 나까지 봐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안 봐도 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난 '올드보이'나 '타짜와 같은 영화는 나중에 다운을 받아서 봤다. 물론 '웰컴 투 동막골', '왕의 남자', '괴물'과 같은 영화는 상영관에서 돈을 주고 보긴 했지만 말이다. 관객 톱 10 안에 드는 영화 중 최고의 영화는 '왕의 남자'라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이번엔 D-WAR다. 솔직히 2년 전 메이킹 필름 몇 분짜리를 감상하고 많이 보완돼야 할 점들을 발견했다. 일년이 가고, 이년이 가도 디워의 개봉이 깜깜 무소식이길래 '어떻게 된거야, 심형래 감독. 이대로 포기한건가?'하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심난햇었다. 일상생활 속에 파묻혀 '디워'의 존재가 점점 잊혀갈 즈음 드디어 8월에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꼭 보러가야지" 결심했었다.
개봉 첫 날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는 못하고 개봉하기 전에 무릎팍 도사 '심형래 편'을 보았다. 영화 찍느라 좀처럼 T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익살맞은 유머와 진솔한 영화얘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를 찍을 때 딱 2번을 울었다고 한다. 한번은 배우가 그림을 펼치면서 "디스 이즈 코리아 레전드"라고 이야기를 시작할 때 눈물이 핑 돌았고, 다른 한번은 엔딩곡을 '아리랑'을 채택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그동안 세계적으로 비평가들과 네티즌들에게 혹독하게 시달린 자신과 영화에 대한 한이 아리랑 곡조에 실려 갑자기 맥 풀리듯 탁 풀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부분의 SF 영화를 비롯, 재밌는 영화의 공통점은 초반부가 조금 지루하다가 사건이 전개되면서 중반 이후부터 재미가 갑자기 롤러코스터 타듯 급상승 하는 반면, <디워>는 초반, 그리고 후반부에 엄청난 공을 들인 티가 난다. 따라서 중간 부분이 재미가 없다.
가장 재밌고 잘된 영화는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일 없이 눈의 촛점이 오로지 스크린에 꽂히는 영화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디워>는 잘 만든 영화라고 볼 수 없다. 꼬마 아이들까지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정신 산만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영화의 도입부는 정신을 쏙 빼버릴만큼 매력적이었고 굉장했다.
미국 LA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 이든은 어린 시절의 한국의 전설을 떠올린다. 이무기에 관한 것. 착한 이무기와 나쁜 이무기인 부라퀴가 있는데 부라퀴에게 여의주를 뺏기면 안된다는 설정. 부라퀴는 이잡듯이 여의주를 간직한 세라를 찾아다닌다.
미국(현재) - 한국 조선(과거) - 미국(현재)로 역사적 배경이 바뀌는데 정말 놀랍고 흥미로왔던 장면이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나 등장할 법한 코뿔소 체격의 괴물과 병사들이 나와서 기와집을 부수며 초토화 시키는 것이었다. 놀라웠다. 우리나라 사극 영화는 많았지만 보통 남녀관계에 얽힌 것들 '스캔들'이나 '음란서생'과 같은 특수효과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스토리에 충실한 사극들이었다. 이 틀을 약간 벗어난 것이라면 '혈의 누'와 '왕의 남자'가 있지만 조선시대와 '반지의 제왕'의 괴물을 결합한 영화는 없었다. 공룡이 불을 뿜고 놀란 포졸들이 달아나는 광경을 보면서 어찌나 우스꽝스럽고 신선한지 "초반부터 사람잡네."이런 생각에 즐거워하며 영화를 감상했다.
<디워>를 보면 장, 단점이 눈에 띄게 드러난다. 어린아이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러한 장, 단점들을 어떤 이는 자신이 무슨 대단한 영화 평론가라도 되는 냥, 이건 이래서 안 좋다, 자긴 저 장면을 예상했었다, 기가 막히다며 마구 떠들어가면서 보기도 하는데 상당히 몰상식하게 보인다. 제발 입 좀 닥치고 영화 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발견한 단점을 몇 가지 짚어보려고 한다.
보통 <디워>를 감상한 사람들에게 "어땠어?" 물으면 "응...CG는 괜찮았는데 스토리가 좀 엉성했어."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신문기사에서 읽은 것일까, 다른 사람의 평가를 그대로 말한 걸까, 아니면 본인만의 생각인걸까. 왜 다들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스토리가 약했던 것은 그 모든 단점들을 하나로 축약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매력없는 캐릭터에 가장 큰 문제점이 있진 않을까? 가장 큰 문제가 제이슨 베어.신인일까? 생각했지만 공포영화 '그루지'에도 출현했고 '도슨의 청춘 일기'로 꽃미남 스타가 된 배우다.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배우를 바꾸고 싶다는 거였는데, 배우가 연기를 못하는 건지 아니면 설정 자체가 소심하고 무력한 성격으로 그렸는지 잘은 모르겠다. 미국영화와 완벽히 차별화되는 것이 있다면 '트랜스 포머', '스파이더 맨'과 같은 슈퍼 SF 영화 주인공들과 비교했을 때 이든 역할의 제이슨 베어는 대단히 샌님 같다는 것이다. 싸움도 못하며 용기도 없고 말할 땐 조용조용히 말한다. 여배우 아만다 브룩은 제이슨 보다 조금은 더 매력적이긴 하지만 성격 자체가 무기력해 보인다.
무기력해 보인다라는 것은, 괴물에 맞서 조금의 대항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자배우의 손에 이끌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계속해서 피해 다닌다. 마치 피구할 때 수비수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거 외에는 딱히 두드러진 행동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배우에게 감정몰입을 해서 영화를 즐겨야 하는 관객 입장에선 따분해지기가 쉽고 배우의 무기력함에 영화마저 힘이 빠지는 경향이 있다. 조선시대의 보수적이고 소심한 20대 청춘남녀가 환생해서 미국의 이든과 메리로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햄버거를 먹고 16세에 차를 끌고 다니는 자유분방한 미국 캐릭터에게는 좀더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가장 큰 문제점을 캐릭터에서 찾고 싶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NG 스토리를 찾으라면 개연성 떨어지는 상황 설정에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들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든과 메리가 뛰어가는 속도보다 이무기의 속도가 느린 것이나, 바로 앞에서 집어 삼킬듯이 주인공들을 노리고 있는 이무기가 계속되는 경찰의 총탄공격에 먹잇감을 쉽게 포기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주인공이 탄 차를 마구 따라오다가 중간에 갑자기 멈춰 서는 장면에선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끊임없이 긴장감을 갖게 하는 트랜스포머보다 한참 부족한 느낌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개연성은 인물 설정에도 나타나는데 부라퀴에 가려져 존재감마저도 까먹고 있었던 착한 이무기가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등장한다거나, 적이라고 생각했던 경찰 요원이 갑자기 어떻게 알았는지 이무기 전설을 나열하며 우리를 구할 사람은 세라 밖에 없다고 말한 대사는 정말 어의 상실이었다. 시나리오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쓴 시나리오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작법 공부를 좀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템포 조절을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눈 아프지 않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밌을 때는 화면에 속도감과 액션을. 부수고 꺠지고 날라가고 폭발하고.. 이런 것들을 한참 집어넣다가 조용할 때는 코믹하면서도 애정 또는 따뜻한 우정등을 보여주는 것을 집어넣으면 좋다. <디워>는 적절한 영화의 템포와 빠르기에 실패했다. 이무기가 등장하고 시조새가 등장하고 헬리곱터가 날아다니고 탱크에서 포탄이 발사되는 건 아주 좋다. 문제는 이렇게 재밌는 요소가 있으면서도 조용할 때가 되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는 것이다. 미국영화엔 템포를 늦출 때 꼭 유머를 섞는다. <트랜스포머>에서는 로버트의 인간애를 보여주거나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그린다. <디워>를 보면서 웃은 적이 거의 없는데, 바로 이게 문제였다. 코믹한 무드를 만들었어야 한다. 섹시, 코믹, 우호적, 인간미를 영화 속에 보이지 않게 포함시켜야 했다. 아무래도 시나리오의 짜임새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디워>에 대해 나름대로의 솔직한 비평을 했다.
그럼 이제부턴 <디워>를 위해 변호를 해주고 싶다.
시나리오에 문제점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심감독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 감독의 뜻대로 시나리오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영화화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워낙에 영화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성에 안 찼으리라.
시나리오가 영화화 되고 그것이 편집을 거쳐갈 때 영화를 찍었던 사람, 그 근처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한 씬, 한 씬 당 얼마나 힘들여서 영화를 촬영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버려야 할 씬인지언 정 선뜻 가위질을 하지 못한다. 수많은 엑스트라와 배우, 스탭들이 한 씬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만들어 놓고 나면 수정을 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진다. 한 군데 수정을 봐야 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조금씩 고치고 편집을 해야 한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찍으면 그 영화 현장에 있지 않은 객관적이고도 예리한 분석력을 가진 전문가가 그 영화의 고쳐야 할 점을 집어주고 편집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아니면 영화가 개봉하기 전 블라인드 시사회를 가져서 예비 관객들의 평가를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처음 메이킹을 만들고 편집을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시사회를 갖고 약간의 수정작업을 거쳤으면 좀더 완벽해질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려서부터 심형래 감독 영화를 몹시도 보고 싶어했다. 어른들은 유치하다고 할 영화 <영구와 땡칠이>영화감상은 그 당시 부시맨 시리즈와 함께 어린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축제와 같은 것이었다.
심형래는 한국의 SF 거장이기에 앞서 한국의 월트 디즈니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도 극장에는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이 이무기와 용을 보기 위해 극장 안으로 몰려들었고, 어른인 나마저도 영화 속에서 이무기와 용이 실제로 살아있는듯 꿈틀대는 것을 느끼며 한국의 전설이 영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짜릿한 흥분을 맛보았다.
심형래는 한국의 전설을 영화화 했으며 그것을 영화의 나라 헐리우드에 자랑스럽게 펼쳐놓았다. 그 누가 심형래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난 심형래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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