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보다 위대하고 감동적인 번트...
11살 소년 동구는 지능지수가 낮은 반면, 집중력과 끈기 하나만큼은 대단하다. 동구 집중력의 대상은 바로 주전자.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아이들에게 물을 따라주는 일이 너무나 즐거운 동구는 이른 새벽부터 해가 뜨기를 기다려 학교에 가고, 물을 채워 놓는다. 그런 동구를 자존심 없다고 미워하는 짝 준태는 심장이 좋지 않아 달리기를 할 수 없다. 그런 준태를 위해 동구는 한 바퀴만 도는 운동장을 준태 몫으로 한 바퀴 더 돌고, 또 준태는 동구를 주전자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주전자 안에 개구리를 넣어 놓는다. 하지만 준태의 그런 행동은 동구가 학교에 다닐 기회마저도 차단하는 위기로 발전하게 되는데.
영화의 영어 제목이 Bunt인데서 보듯이 이 영화가 소중하게 여기는 건 홈런이나 안타 같은 화려함이 아니다. 너무도 쉬워 보이는 번트가 누군가에게는 고난과 역경의 산물이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번트가 홈런보다 더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기도 한다. 당연하게도 이는 현실을 반영한다. 숨쉬거나 걷거나 앉는 것과 같은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성취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아이들의 동심을 이용해 감동을 강요하거나 애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쉬운 것 같지만 어린 아이들이 중심인 영화에서 놓치기 쉬운 지점이기도 하다. <마음이>에서 감동을 만들기 위해 폭력과 구타가 동원되고 누군가를 죽이고, 울부 짖는 과정을 거친다는 걸 상기시켜 보면 이 영화가 택한 길은 더 빛나 보인다. 또 이 영화가 나보다 약한 상대, 또는 불완전한 상대를 돕는다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도 영화가 주는 아름다움이다. 준태는 달리지 못하지만 야구의 룰을 이해하고, 동구는 잘 달리지만 룰을 모른다. 서로 불완전하고 부족한 이 둘은 서로 기대며 준태는 동구에게 주전자의 물을 따라주고, 동구는 번트를 대고 1루, 2루, 3루를 거쳐 집으로 살아서 들어온다. 역시 준태 몫으로 한 바퀴 더 돈다.
동구는 살아 돌아오는 야구 규칙으로 인해 이사간 집을 쉽게 찾아온다. 아마 야구란 경기의 룰이 가장 아름답게 적용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까 한다. 사실 <허브>나 <날아라 허동구>와 같은 영화를 보며 실제 장애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 그들 눈으로 보기엔 부족할지도 모르고 현실과 다른 측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영화가 주는 감동과 그로 인해 비장애인들이 느낄만한 여러가지 교훈들이 아무 의미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가끔은 장애인 영화에 대한 장애인들의 부정적 의견이 오히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만 강화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