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둘다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네요.
그리고 [몬스터스 볼]을 보실 거라면 '격렬한 5분간의 어쩌구 하는' 카피는 관심갖지 마시길..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있는 영화로 보여집니다.
[아이 엠 샘]은 동화스럽긴 하지만, 당신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줄수 있는 영화라고 보여지네요.
하지만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시라면 후회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 있군요.
이상은 이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께 추천하는 안내문(?) 입니다.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이시라면 다음 글은 나중에 읽어주시길......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잃고 절망에 빠진 이들[몬스터스 볼]과 그 중요한 것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아이 엠 샘]이 있습니다. 표현방식과 대상은 다른 층을 이루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너무나도 같은 (내 삶의 의미찾기)영화입니다.
첸 카이거의 [현위의 인생] 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60년이나 되는 오랜 생활동안 단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구도자가 결국, 스승의 거짓을 알고 괴로워 하지만, 무엇이 그 동안 나를 바르게 살게 했고, 베풀게 했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했는지를 깨닫고 느낀다는 영화입니다.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사람에게서 내일 저녁 만나자는 전화가 온다면,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의 나는 어떤 생각으로 지내게 될까요? 동생이 그렇게 갖고 싶어했던 내 물건을 선뜻 건네줄수도 있는 아량이 생기고, 부모님에게 칭찬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아볼 수도 있는 마음의 선행이 용솟음치는 여유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만약에 내 인생전체의 일이라면 어떨까요? 너무나도 당연하고 두번 적기엔 손가락이 아픈, 그 영화의 주제는, 당신이 가지는 삶의 의미에 따라 당신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다소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 이 두 영화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어린 딸을 두고 자신의 부족함때문에 아비가 가질수 있는 권리의 대부분을 박탈당할 위기해 처한 아빠의 이야기를 그린 [아이 엠 샘]은 미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그 것에 앞서 자격을 갖추고 있어도, '샘'과 같은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영화입니다. 눈꽃같이 맑은 그의 심성으로 인해, 승승장구 하던 변호사가 눈을 돌려 아들에게 관심을 더 쏟게 되고, 어느 누구도 그의 딸에게 샘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는 결론을 주면서 끝을 맺습니다. 비슷한 느낌으로 [존 큐]라는 영화도 있었지요.
[몬스터스 볼]의 두 인물은 각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이 사형당하고, 아들이 차에 치여 죽은 상황의 여인과, 자신의 강압적인 태도에 못 이겨 눈 앞에서 자살해버리는 아들을 둔 남자...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잃고, 숨쉬는 의미조차 잃어버려 죽지 못해 사는 듯한 이 두사람은, 울고 난 뒤, 마음이 진정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 처럼, 그 절망의 기로에서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느낍니다. 하지만 잊어버려야 할 과거의 인연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알게된 여인이, 힘겹지만 그것을 극복하리라 다짐하면서 위태롭게 보여지던 전개의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끝을 냅니다. 이것도 비슷한 느낌으로 [파리 텍사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가 있습니다.
최고의 연기자들, 착한 등장인물들,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 등의 공통점을 뺀다면, 이 두 영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먼저 이 영화를 보는 대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관람가, 관람불가 하는 대상 연령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30여명의 학생이 앉은 교실에서, 다른 학생은 듣건 말건, 진도에 따라갈 수 있는 관심있는 학생만을 위주로 강의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중위권이나 하위권 성적의 학생들도 이해 할 수 있을 만큼 재미있는 예를 들어가며 지루하지 않게 강의를 하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영화관을 연인과 함께 시간보내기 위해서 찾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좋은 책을 읽는다는 진지한 태도로 관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한 다른 관객의 대상층을 위해 전개방식을 펼쳐가는 연출 방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샘과 그의 딸 루시는 관객이 같이 아파해주고 힘들어 해주기를 바라지만, 행크와 레티샤는 다릅니다. 어쩌면 내 고통이 내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듯, 마치 입김만 불어도 한웅큼의 먼지가 일어날 만큼, 건조한 일상으로 표현됩니다. 모든 것을 잃은 뒤의 슬픔과 괴로움도, 서로에게 느끼는 관심과 사랑의 두근거림도 역시 남의 일처럼 보여지게 합니다.
너무나도 깜찍하고 어른스럽고 누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딸 루시나, 역시 누가 보아도 맑고 착한 심성의 샘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합니다. 가족이 함께 살게 해 달라고... 하지만 행크와 레티샤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마치 잘 차려진 밥상에 앉게하고 이것이 맛있고 이것은 별로고.. 하듯이 일러주는 영화감독이 있는가 하면, 요리 재료만 소개해주고 직접 차려먹게 만드는 영화감독이 있습니다.
출연자의 대사로 주제를 전달하려는 영화가 있고, 출연자의 행동으로 때로는 왜곡된 심리묘사로 주제를 직접 찾게 만드는 영화... 10사람이 보았을때 대부분이 같은 감정을 가지게 되는 영화와, 10사람 각자 다른 생각과 의미를 두게 되는 영화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영화가 당신의 취향에 맞는지는 당신이 결정할 일입니다. 어떤 영화가 더 흥행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는지도 역시, 당신의 판단으로 돌립니다. 하지만 어떤 영화가 당신의 삶에 대해, 보다 진지한 자세로 돌아볼 수 있게 하는지는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002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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