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변신의 귀재라지만 정말 놀라웠다. 이제까지 순풍산부인과, 가을동화, 수호천사에서 나온 송혜교의 수수한 모습과는 다른 '황진이'로써의 모습이 나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처음에 송혜교가 '황진이' 영화를 찍는다 했을 때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황진이를 연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황진이를 연기하는 자태 하나하나에 집중이 되었다.
수수한 모습의 별당 아씨에서 기생이 되기까지 황진이는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고 아버지,어머니,생모를 원망하며 기생의 길을 선택한 황진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을 것이다.
황진이는 놈이가 한양에 출생 비밀을 넘긴 것은 자신이니 용서해달라고 했을 때 '너를 용서할 수 있는 별당 아씨는 이제 없다.' 라고 말했다. 그 때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던지..
20년을 가까이 별당 아씨로 살아왔는데, 그 모습을 버리려면 자기 자신과 얼마나 많이 싸워야 하는지.. 나같았으면 앞으로 가야할 길을 선택할 엄두도 못내고 평생을 방황할지도 모른다.
기생이 되어서 온갖 수모를 당하는 황진이를 보고 같은 여자로써 처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 놈의 남자들은 마누라한테나 잘하지 자기보다 열댓살은 어려 보이는 애들을 가지고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특한 기생으로서 자리매김하는 황진이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높은 직급을 가졌는데도 기생 '황진이'에게 당하고 꼼짝 못하는 남자들이 너무 고소했다.
그 남자들은 그럴 때마다 '이 년, 저 년' 하고 욕하지만 그 욕을 듣는 황진이보다 훨씬 기분 나쁘고 분노가 치밀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황진이도 불쌍했지만 그보다 더 불쌍했던건 바로 놈이였다. 놈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으니까 ..
어릴 때는 황진이를 저잣 거리로 데리고 나갔다고 대감에게 채찍으로 맞고, 커서는 화적패의 두목이 되어 여러 사람들과 싸우고, 나중에는 개똥이를 구하기 위해 자수하고 목이 잘린 채 잔인하게 죽고..
놈이의 삶에서 황진이를 뺀다면 아마 칠흙같은 어둠이 아닐까? 놈이에게 있어서 황진이는 광명이자, 행복이자 여자였다.
이처럼 둘의 삶은 남들보다 힘들고 순탄치 않았지만 끝까지 진심으로 사랑을 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놈이'가 옥에 갇히고 황진이가 옥 밖에서 '놈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술잔을 줬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요즘은 진심으로 사랑한다해도 빨리 깨지기 십상인데 그것보다는 황진이와 놈이처럼 비록 슬플지라도 영원한 사랑을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얘기를 하면 둘이 기분 나빠할까?
팔자 좋은 소리 한다고 욕이라도 먹을까?
솔직히 말해서 2시간 21분의 사극은 지겨웠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영화가 괜찮았고, 황진이를 연기한 송혜교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놈이와 황진이의 사랑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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