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을 다루지만 그다지 현실적으로 보이지는 않고..
이 영화가 나올 당시의 설경구를 돌이켜 보면, <송어>에서의 탄탄한 연기로 주목을 받긴 했지만, 역시 <박하사탕>의 강렬함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강렬함을 선사한 설경구가 일상을 그린 로맨스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로도 이 영화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상대역이 <접속> <약속> <해피엔드> <내 마음의 풍금>으로 자신의 한계를 계속 넓혀가던 전도연이니 만큼.
그러나 설경구의 일상 연기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다. 영화적으로 그려진 상황도 매우 소소한 일상을 다루고 잔잔하게 진행되고는 있지만 (잔잔함을 넘어 지루하게 느껴지기까지) 그다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전철이 멈춰지고 불이 꺼지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핸드폰을 꺼내서 통화를 시도하는 장면이나 봉수와 원주 둘이 탄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멈추는 장면(대체 영화나 드라마의 엘리베이터는 왜 그리 자주 고장나는지) 등은 너무 작위적이란 느낌이고, 이런 작위적 장면들이 전체적인 영화의 느낌하고는 엇나가 보였다.
설경구에 비해 전도연의 연기는 제격인 듯했는데, 인물의 묘사도 상대적으로 더 풍성하게 보인다. 은행의 화분에 마시던 생수를 붓는 장면이라든지 CCTV를 보며 V자를 그리는 장면 같은 것들. 그런데, 영화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건 마치 처음부터 원주는 봉수를 좋아하고 있는 것처럼 나온다는 것이다. 어떤 사소한 충돌이나 인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치 선험적으로 원주는 봉수를 좋아하게끔 설계되어 있는 듯해서 '사랑의 운명론'을 얘기하고 싶은 것인가란 생각까지 들었다.
거기에 봉수와 새로운 사랑을 열어갈 듯 했던 태란(진희경)의 정리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퇴장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봉수와 원주의 사랑이 마치 완결되지 않고 계속 불안한 기반 위에 있는 듯해서 못내 찜찜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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