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나쁜 남자] ‘나쁜’이라는 단어의 경계는 어디일까 |
|
나쁜 남자 |
|
|
|
|
이 영화를 보신 분이 계시다면, 아마도 저처럼 부산 국제 영화제때 상영한 것을 보신 분이 아닐까 합니다. 드디어 김기덕 감독님의 7번째 영화가 완성되어, 감독의 말처럼 이제 욕 먹을 일만 남게 되었습니다.
늘 저 예산 작가 주의적인 노선을 잃지 않고, 걸어온 김 감독님은 전작들에 비추어 볼 때.. 이 영화는 조금 파격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우선, 제작비가 두 배 이상 들어간 블록버스터(?)라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 영화가 처해 있는 제작 현실에 비추어보면 껌값(?)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김기덕 감독님의 열혈팬임을 자청하는 영화광들에겐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최근 6년간 7편이라는 제작편수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김기덕 감독님은 참 바쁜 행보를 걸어왔지만, 영화적 성향은 안 바뀌었습니다. 감독님은 늘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고, 이 사회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구성원들을 부각시켰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소개되었고, 이제 이 영화 <나쁜 남자>에도 또 한 부류의 인간 군상들이 관객들에게 찾아옵니다.
홍등가… 좋게 말하면 자리 지킴이, 나쁘게 말하면 한없이 껄렁한 양아치 우두머리 한기 (조재현 분)는 대낮, 인적이 드문 것도 아닌, 북적대는 거리 한복판에서 그날 따라 처음 본 대학생 선화 (서원 분)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고 심한 모욕을 당합니다. 이에 한없는 분노를 느낀 ‘한기’는 계략을 꾸며, ‘선화’를 창녀로 만들어 버리고, 늘 옆에서 선화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조합니다. 이에 ‘선화’는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한기’를 죽도록 저주하지만, 차츰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이 사회를 떠돌아 다닙니다.
간단한 시놉시스를 보더라도, 제목 그대로 참 ‘나쁜 남자’ 이야기입니다. 어찌 그렇게 한 여자의 인생을 몰락시킬 수 있을까. 제가 보더라도, 아니… 광화문 길 지나가는 어느 누구를 붙잡고 물어보더라도, 명백한 인간 말종입니다. 이런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야 될 것이라고 말들을 할 겁니다.
하지만, 전 영화를 다 본 후… 왠지 ‘한기’에게 정이 더 갔습니다. 물론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 자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현실적이었을 수도 있었던 영화내에서도 ‘선화’는 ‘한기’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건 바로 인간은 평등하기 때문이라는 진부한 이론의 입장에서 보여질 수 있는 사실입니다.
처음, ‘한기’와 ‘선화’는 쉽게 말해서 극과 극을 달리는 사람들입니다. ‘한기’는 소수의 ‘어둠의 자식들’을 대변하는 군상이고, ‘선화’는 다수의 시민들을 대변하는 인물 축입니다. ‘한기’는 사회가 정한 규율을 무시하고, 보이지 않는 계급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선화’는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한기’를 경멸하게 되지만, 어느새 자신의 인생이 대낮 같은 밝은 곳에서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한기’와 같은 사람뿐임을 알게 됩니다.
이쯤 되면 글을 읽으시는 분은 눈치를 채실 겁니다. 만약 그들이 동등한 위치였다면, 모든 사람들의 위치가 동등했다면, ‘한기’를 ‘나쁜 남자’라고 몰아붙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나쁜 남자’란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 한가지 단어에 불과하니까요.
또, 하나… ‘성선설(性善說)’이라는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한기’는 ‘나쁜 남자’가 아닙니다. 인간은 학습에 의해 자신을 만들어 나갑니다. 어느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만능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배우며 살아갑니다. 어느 누가 중간에 돈을 많이 벌어서, 또는 사랑스런 누군가와 결혼을 하였다고 해서 인생 다 배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기’도 처음엔 나쁜 일을 하게 되지만, 차츰 또 다른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만약 ‘한기’가 영화 내내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방탕한 일을 벌였다면, 구제불능의 인간이 될 수 있었지만, 한 여자를 통하여 그는 또 다른 세상을 배웁니다. 이는 ‘선화’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지적인 대학생이지만,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될 때, 그녀는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영화 내내 대사가 없던 ‘한기’는 마지막 죽을 힘을 다해 쥐어짜듯이 말 할 때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자신이 처해진 환경에 분노를 폭발할 때와 자신이 나쁜 일을 벌였지만, 누군가 그 보다 더 할 때… 과거를 뉘우치지 못하고 현재도 똑 같은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를 봤을 때입니다.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포효하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겠지만, 적어도 제 가슴속에는 영원히 잊지 못할 한 편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
|
1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