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픔이 낳은 슬픈 사랑...
아직도 진위 논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류가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긴 1969년(사실은 인류가 아니라 미국이지만).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삼선개헌을 시도하는 중이다. 주인공 석영은 이를 반대하는 집회장에도 나가보고, 미팅에도 나가보지만 도통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한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농활의 첫날 밤, 모기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석영은 바로 다음 날 서울로 돌아가고자 마음 먹지만, 어딘지 비밀이 많아 보이는 정인이 그의 발을 잡는다.
석영은 우연히 한 폐가에서 엉터리 같은 노래를 크게 부르고 어설픈 국민체조로 하얀 허벅지를 드러내며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정인을 목도한다. 석영에게 환한 미소를 선사하는, 운명적인 마주침이다. 정인은 당당하고 순백하다. 서울서 온 대학생들 앞에서 어설픈 노래와 춤을 당당히 내지르고, 도서관 사서임에도 ‘빨간 이야기책’을 마을 어른들에게 서슴없이 낭독해준다. 게다가 그녀는 가족도 없다. 정확히는 부모가 월북해버렸다.
자유로운 영혼의 대학생과 산골의 신비스런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대단히 진부한 구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모두 사투리를 사용하고, 촌스런 복장의 시골마을에서 그 여자만은 예외로 그려지는 부분도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그 가난하던 시대의 시골, 그것도 부모가 모두 월북해서 주요 감시 대상으로 살고 있는 정인의 맵시 넘치는 옷차림, 그래서 시골 마을의 풍경과 정인의 모습은 마치 석영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판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석영과 정인의 짧은 사랑이 두 사람의 나머지 삶을 규정지은 건 사랑의 파국이 둘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외부의 힘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는 상관 없을 것 같은 권력의 속성이 어쩌면 모든 개인들의 삶을 강제하는 가장 큰 힘일 수도 있다. 영화는 이 점을 그리고는 있지만 그렇게 짜임새 있고 납득 가능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납득 가능하지 않다는 건 이 영화가 노리는 주요 관객층이 모호하다는 점인데, 20대 이하의 젊은 관객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느리고 지루하며, 이 시대를 경험한 세대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너무 평이하거나 산뜻하다.
어쨌거나 주연을 맡은 이병헌과 수애가 그리는 풍경, 그 자체로만 보면 화사하고 아름다운 건 분명하며 둘의 조화도 꽤 잘 어울린다. 그래서 둘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그럭저럭 평균은 했다고 보인다. 거기에 깍쟁이 같은 도시 여인을 주로 연기해왔던 이세은의 어리벙벙한 모습도 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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