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호러영화의 힘..
영화는 스코틀랜드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한 무리의 여자들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들은 여성이지만 대담하고 모험을 즐기는 친구들이다. 사라의 남편과 사라 친구 주노의 의미심장한 눈길을 뒤로 한 채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사라의 남편과 딸이 목숨을 잃는다. 그로부터 1년 뒤, 사라를 위로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은 광활한 애팔래치아 산맥의 동굴 탐험에 나선다. 그러나 이 모험을 기획한 주노는 친구들에게 지도에도 없는 새로운 동굴로 안내한다. 제발 내 주위에 이런 친구 없기를~~~.
이제 본격적인 비명의 롤러코스터가 시작된다. 먼저 이들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동굴 입구가 무너져 내림으로서 후퇴로를 차단한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은 미로처럼 얽혀 있는 좁은 동굴을 헤쳐 나가 다른 입구를 찾아야만 한다. 물론 동굴 속에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동굴 속에서 살도록 진화해 온 인간형 포식자들이 신선한 날고기를 찾아 사냥에 나선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케이브>나 <디센트>와 같이 어둡고 좁은 돌굴 속에서 벌어지는 공포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그저 갑갑하고 답답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에게 약간의 폐쇄공포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포영화든 액션영화든 장르를 떠나 갑갑한 건 일단 기피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공포 장치는 꽤나 으스스하고 소름끼친다. 특히 캠코더 화면으로 동굴 속 괴물이 쓱 지나가는 장면 등은 오싹함을 선사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 영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을 보자. “모든 폐소공포증 환자들은 이 영화를 보지 말라는 엄마들의 충고를 듣는 게 좋을 것이다.”(<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 “놀라서 좌석에서 뛰어올랐고, 질렸고,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영화 보는 내내 나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옵저버>의 마크 게모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쪽 손을 귀에다 대고 다른 손은 눈앞에 대고 있었다.”(<타임스>의 제임스 크리스토퍼).
감독인 닐 마샬은 "직설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오멘> <샤이닝> <엑소시스트> <죠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스스로를 심각하게 믿고 앞으로만 달려가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특별한 CG없이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다는 <디센트>는 감독의 말처럼 시종일관 밀어 붙이는 힘이 대단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이 영화는 인간과 인간형 포식자와의 대결 장면이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28일후>처럼 인간 내부의 갈등, 이 영화에서는 여성들의 우정이 생존 본능과 과거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아주 매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스럽던 사라는 강인하고 잔인하고 냉혹한 전사로 자리 이동하고, 남성적 전사의 느낌이었던 주노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듯 보인다.(사라나 주노나 둘 다 무섭다)
2002년도에 킬리언 머피를 주인공으로 제작된 <28일후>는 기존의 좀비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살짝 비틀어 빠르게 뛰어다니는 좀비의 존재만으로 그 독창성을 인정 받은 바 있다. 어떻게 보면, 바로 그 좀비가 지하철역(<크립>)을 통해 동굴 속으로 들어간 영화가 <디센트>가 아닐까 싶은데, <28일후>와 <크립>을 거쳐 <디센트>까지, 자주 접하지는 못하지만 독특한 영국 호러의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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