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각고의 노력끝에 당첨된 시사회라 감개무량함도 잠시.... 약속이 겹쳐 부득이 양도를 해야할 눈물겨운 상황에서 극적으로 약속취소를 통보하는 오늘 아침의 전화. 그리고 10년도 넘게 정말 오랜만에 오게된 드림 시네마.... 옛날엔 화양극장이라 불리며 항상 이 극장을 지나칠 때마다 건대입구 근처의 불을 환하게 밝힌 어느 동네(!)를 떠올리게 했던 약간은 안좋은 어감의 그 극장명이 바뀐지도 벌써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탓하기 전에 이미 늙어버린 몸이 약간은 딱딱한 옛날 극장식 좌석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리가 아프기 전에 등이 쑤시고 아픈 초유의 사태를 몹시도 낯설어하며 영화를 응시한 시간 1시간 30분.
<디 아이>가 2002년 팽 브라더스의 이름을 제대로 알렸을 때 그 형제가 이렇게 헐리웃까지 진출해서 공포영화를 찍게되리라곤 상상도 하지못했다. 그런데 그게 <샘 레이미>에 의해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가 헐리웃에 진출하여 리메이크 작품 <The Grudge>를 시리즈로 만들고, 그 중간에 <나카타 히데오>까지 미국에 건너가서 친히 <Ring USA 2>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단지 소재의 고갈로 인한 리메이크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도 바로 "그 감독들이 가지고있는 공포영화에 대한 역량을 필요로 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헐리웃이라는 환경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과연 어떨까? 라는 일말의 기대를 갖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헐리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그 감독들이 미국 영화판을 난도질(?)하게 놔두질 않았고 오히려 전형적인 틀거리를 가진 헐리웃 공포영화의 문법속에 그들의 시각과 재능을 가두어버림으로써 "그냥 미국 감독들 시켜서 만들어도 되는 범작만을 양산하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만 양산했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지금도 지우질 못하고 있다.
이러한 그간의 우려와 실망속에서 리메이크 작품이 아닌 <메신져>를 접하게 된 나는 <디 아이>에서 그 형제가 보여주었던 동양적 정서에 젖은 공포영화의 미학(!)을 - 나의 생각이다 - 창조적으로 적용한 새로운 문법과 틀거리를 지닌 그러한 공포영화를 보게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의 추세에 맞지않게 짧기만 한 90분이 채 안되는 런닝타임을 가진 이 영화는 이러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오프닝 때부터였다. 이 영화는 팽 브라더스가 스토리를 만들지도, 각본을 쓰지도 않았다. 그러니 소재와 플롯에 있어서 그 형제가 보여줄 수 있는 창조성이란 건 물건너 간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영화감독으로서 새로운 문법과 스타일링을 시도하여 전혀 다른 이미지의 공포영화를 만드는 것 정도? 그러나 이것은 쉬울까?
내 생각엔 제작을 담당한 <샘 레이미>는 <부기맨>때처럼 이번에도 기자 시사회를 하지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개봉 첫주에 1위라도 했지.... 사서 욕먹을 일을 만들지 말아야할 만큼 이 영화의 스토리는 전형적이고 진부하다. 그냥 딱 봐도 샘 레이미가 제작했던 <부기맨>과 최근에 리메이크된 적도 있는 <아미티빌 호러>를 섞어서 만들어놓은 듯한 짜깁기 위주의 새로운 구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구성을 가진 스토리였다는 거....
동양적 무드의 공포전달을 주로 하는 영화들을 만들어왔던 팽 브라더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쓰지도않은 각본을 가지고 그다지 익숙하지도않은 귀신들린 집(그것도 완전히 그 정서가 다른 서양식 공포영화로서 말이지~)을 소재로 한 <아미티빌> 류의 영화를 만들자니 고생을 무지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생의 흔적이 영화 곳곳에 역력히 드러난다. 우선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귀신들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지적하고 싶다.
자세히 쓰고싶지는 않은데, 이 영화에서 귀신들이 보여주는 행동들은 최소한의 - 상식선의 - 논리성도 없이 영화의 초/중반에는 단지 관객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종반부를 위한 긴장감을 유지시키기 위한 장치로서만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영화 종반부에서 귀신들은 정신을 차린다. "아~참~ 우리들도 피해자지.... 그러면 이렇고 있으면 안되지"라고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귀신들의 각성은 팽 브라더스가 울며 겨자먹기로 했음에 틀림없는 불신과 슬픔만이 가득했던 한 가족의 눈물겨운 화해의 해피엔딩을 위한 작위적인 후반부 구성과 궤를 같이 하고있다. 그래서 짜깁기 위주의 진부한 스토리는 그러한 전형적 공식을 답습하며 역시나 작위적인 진부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최근에 보았던 다양한 하위 장르를 가진 헐리웃 공포영화들에서도 단 한번도 나오지않은 가족간에 따뜻한 정감이 흐르고 웃음이 넘치는 그리고 실제로 관객을 웃게 만드는 상황설정을 가진 결말앞에 난 아연실색했다. 뭔가.... 아직 악의 찌꺼기가 남아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전형적인 공포영화적 결말도 시도하지않은 채 말이다.
과연 팽 브라더스는 <디 아이>의 엘리베이터 귀신씬을 연상시키는 그 패러디 장면 -제쓰가 동생 벤을 안고 거실앞에 서있을 때 뒤에서 귀신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씬- 만으로 만족했을까? 이 영화에서 형제가 부릴 수 있는 신묘한 재주는 이게 다였던 것 같다. 그 외에는 이 형제의 것이 없는 평범한 헐리웃 공포영화였다. 솔직히 왜 제목이 <메신져>인지조차도 알 수 없을 정도의 귀신들의 황당무계한 설정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20자평에서 누군가는 이게 <부기맨>보다는 낫다고 썼지만 그래도 그 영화는 먹히는 잔재주라도 부렸지, 이 영화는 효과음과 사운드말고는 신경쓴 것이 없지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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