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왕과 관련 없는 사람 중에 "황진이"만큼 이름이 많이 오르고 내린 인물이 있을까? 사극 열풍이 불어 드라마로도 제작이 됐고, 소설로도 몇 분이 쓰고, 그 중에서 "김탁환"의 황진이는 드라마로, "홍석중"의 황진이는 영화로 제작이 되었다. 영화 자체는 2월 정도에 완성이 되었다 들었고, 그 뒤는 아마 편집에 집중을 한 거 같은데, 꽤 오래 전에 완성이 되었어도 제작진의 자신감으로 6월에 내놓는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는 자신있어 할만한 화면을 연출한다. "장윤현" 감독과 "송혜교" 둘이서 이끌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영화는 두 사람의 호흡이 딱 맞아 관객들도 영화 속 재미를 느끼며, 충분히 2시간 20분이 길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드라마 "황진이"를 생각하며 송혜교과 하지원을 비교하는 사람, 100억 들였으니 어디 한 번 영화 봐보자 하는 사람은 절대 금물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은 사람은 더욱 영화가 재미있을 것이며,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 장면 때문에 중간중간 끊어지는 느낌이 들 수 있는데 황진이에 관련된 어느 정도의 얘기를 아는 사람은 지루하지 않게 중간을 채워가며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홍석중"의 소설 황진이에서 "놈이"라는 인물을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소설속에서 만들어진 인물이며, 실제로 없는 인물이다. 뭐 겨우 황진이 기둥서방 정도의 존재라 찾기도 힘들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비중이 꽤 높게 나온다. 영화는 처음에 황진이 아역때부터 "놈이"와 친했음을 강조하며 시작한다. "놈이"는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이미 황진이도 결혼을 앞둔 어엿한 처자가 되었다. 그러나 황진이의 결혼을 파하게 되고, 과거를 알게 되면서 기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놈이"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황진이가 저렇게 된 것을 참지 못하고 떠나게 되고, 황진이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기생이면서도 아씨의 호칭을 계속 들으며 이름을 알리게 되고, "놈이"는 화적패로 다시 돌아오게 되고, 사또가 그를 잡을 것을 명하면서 일이 꼬이게 된다...
황진이와 관련된 어록 중에 가장 유명한 어록을 여기서 그 당사자가 다시 한 번 얘기해준다.^^ "송도에서 꺾을 수 없는 것이 3가지 있는데, 하나는 박연폭포요, 또 하나는 서화담(서경덕)이요, 나머지 하나는 이 황진입니다." 라는 명언을 남긴다. 그 밖에도 "사또가 저한테 의사를 물으신다면 '싫습니다'" 이런 대사라든지, 놈이가 황진이한테 황진이 눈에서 사랑을 읽을 수 있다는 이런 닭살돋는 대사라든지 참 멋진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벽계수"를 천당과 지옥으로 오가게 한 그 대목이 절정이었는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로 시작한 시를 읊으며 그 앞에서 벽계수를 농락할 때 조선시대에 서생이라 불렀던 그 사람을 한방에 눕히는 꼴이라니.^^ 또한 "개똥이"를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하면서도 "기생년을 이토록 어렵게 품는 사내가 어딨답니까?!" 라며 한 방을 먹이는데 사또는 K.O 패!!
황진이의 심경 변화는 마지막에서 알 수 있다. 자기가 종의 딸이라는 것을 안 황진이는 그 에미의 무덤 앞에서 "이 여인네처럼 살지 않을 게다. 이 세상을 내 발 밑에 두고 실컷 비웃으며 살 게다" 얘기를 했었는데, 막상 놈이 유골을 가지고 떠날 때에는 "내가 죽어서 돌아오거든 길가에 뿌려다오, 사람들이 아무나 밟고 다닐 수 있게.." 라고 말하며 변화됨을 보여준다. 아마 자신이 사랑했던 "놈이"의 죽음과 "서경덕"한테 들었던 자연과 하나됨을 죽어서라도 느끼기 위해, "사내나 계집이나 본래는 길가에 잡초나 돌멩이 같으면 어쩌겠습니까?!" 라며 사또앞에서 얘기한 그 생각이 마음에 자리잡아 이 세상에 미련이 별로 없는 듯한 황진이로 바뀌었다. 마지막에 "이금"이와 "개똥이"를 두고 떠날 때가 개인적으로 최고의 명장면이라 꼽을 수 있겠다.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다보니, 할 얘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미 10~12월에 드라마가 한바탕 휩쓸고 간 덕택에, 미적으로 아름다운 황진이만을 강조하면 드라마와 똑같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진이"라는 인물을 보여주는 식이 아닌 느끼는 식의 방식을 택했다. 영화 제목이 "황진이"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그냥 "조선시대의 한 기생의 사랑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한 그런 로맨스인데, "황진이"라는 것을 알고, 양반에서 기생으로 되는 이야기를 덧붙임에 따라 "황진이"와 같은 상황을 느끼게 그녀의 심정을 이해함의 단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황진이"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에서도 "서화가무 황진이"라는 가사가 있을 정도인데, 역시 기생황진이가 아니고 인간황진이를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가 여기서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화(畵),가(歌),무(舞)는 전혀 보여주지 않고, 서(書)에 집중을 한다. 사또도 황진이를 (초반에는) 인간처럼 대하기 위해 탐하거나 하는 추태는 보이지 않고, 화답글을 써서 그녀의 실력을 판가름했고, 서생 벽계수를 한 방 먹이는 것도 글이다. 이런 식의 얘기가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나, "황진이"가 화려한 기생임을 생각지 않는다면 감탄하며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배경묘사나 특히 황진이가 입는 옷은 참 곱게 나온다. 100억이라는 돈이 아마 옷이나 세트장에 주로 들인 거 같다. 황진사댁을 초반에 언덕에서 카메라로 잡는데 진짜 조선시대처럼 잘 만든 정교한 세트가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에 "놈이"의 마을을 습격하는 관군과 싸울 때 한 서민촌을 잘 표현한 그 세트가 눈앞에 없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스틸샷도 아름다운 옷이 많이 있는데 웃옷의 그 수 하나하나가 정교한 것이 공을 많이 들였을 것이다. 어떤 영화를 볼 때 내용 흐름 따라가기에 바쁜 영화도 있겠지만 이 영화가 그런 영화는 아니기에 <장화,홍련>처럼 주변의 미적표현을 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 더욱 영화 감상이 즐겁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서경덕"과의 로맨스다. 소설 속 인물은 "놈이"는 배제를 하더라도 황진이가 평생 존경하고 그리워 했다고 알고 있는 "서경덕"과의 로맨스는 영화 상에서 5분이 채 안 되는 거 같다. 나중에 사또 앞에서 "서경덕은 군자입니다." 하며 사또를 박살내는데 실제 책에서는 황진이가 "서경덕"을 유혹하게 위해 야하게 나온다고 하고, 알고 있던 것도 유혹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단지 좋은 말만 듣고 떠나기엔 실제로 이 두 사람의 사이가 더 애틋했을 것이다. 다만 "놈이"라는 존재 때문에 "서경덕"이 이렇게 묻히기엔 참으로 아쉬운 조연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 한국적으로는 생겼지만 기생처럼 연기가 어려울 거 같았던 송혜교는 기생황진이가 아니라 인간황진이로 참으로 역을 잘 소화했다. 특히 슬프게 우는 면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데 관객들도 같이 슬퍼하게 만드는 그 눈물 똑똑 떨어지는 장면이란.. 게다가 사극 특유의 말투도 꽤 잘 소화했다. 특히 상대방을 K.O 시킬 때의 그 말투는 압권!! 유지태 또한 초반에 사극의 말이 어려웠던지 대사를 읽나 했지만 특히 칼을 쓰고 감옥에서 송혜교와 대화를 주고 받을 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사또로 분했던 류승룡도 카리스마와 황진이와의 대결을 잘 표현해서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마지막 장면이다. 배우 중에서는 "송혜교" 혼자 금강산에 가서 찍었다 한다. 다른 장면은 황진이에 넋을 잃고 봤어도 이 장면만큼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제 금강산을 보여주는 그 아름다운 찰나를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그 눈 쌓인 배경하며, 일만이천봉이 다 보이진 않지만 그 솟은 봉우리. 우리나라에서 찍은 것이 아닌 거 같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배경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이 장면이다. 카메라가 돌아가며 유골을 "놈이"의 유골을 뿌리는데 황진이의 고운 자태와 그 배경에 가장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대미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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