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도 이 영화(?)는 Pink Floyd, 그 중에서도 Roger Waters를 빼 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인간 내면의 의식 세계를 깊이 파고들어 음악으로 표출하기 위해 노력하던 대표적인 Progressive Rock Group, 핑크 플로이드는 완성도 높은 사운드와 환상적인 스테이지를 통해 대중 음악계에 충격을 던졌고, 언더 그라운드에 머물기 쉬운 음악 장르였음에도 수 천 만장의 앨범을 판매한, 한 마디로 대중 음악계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가장 최고에서 결합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79년 12월 통산 12번째 정규 앨범으로 발표한 <The Wall>은 소통을 가로 막는 벽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역설한 반전과 저항으로 채색된 걸작 앨범이다. 특히 이 앨범에 수록된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2>는 획일성을 강조하는 교육 제도를 정면으로 비판한 노래로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4주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어쩌면 당시 한국사회에서는 당연하게도 앨범 전체가 금지 앨범이 되어 소위 '빽판'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알란 파커가 감독한 영화에서 학생들이 순서대로 기계에 들어가 소시지가 되어 나오는 장면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으며, 여러 사람 손을 거치느라 지직대는 비디오 테잎을 구해 숨죽여 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룹 최고의 히트 앨범이었던 <The Wall>은 그러나 그룹 전체의 역량이 투입됐다기보다는 Roger Waters의 개인사가 반영된 사실상의 솔로 앨범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이 앨범을 기점으로 Roger Waters와 David Gilmour의 갈등은 표면화되었고, 그 와중에 Rick Wright가 탈퇴, 3인조로 1983년 <The Final Cut>을 마지막으로 그룹은 해체된다.(나중에 Roger Waters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가 재결성)
어쨌든 80년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한 Pink Floyd의 앨범 전체를 영상으로 표현한 이 영화는 미국 LA의 한 호텔방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탈진한 채 세상에서 고립된 록스타 핑크의 기억과 무의식을 파고 들어가며 시작한다. 핑크는 전사한 아버지, 획일적인 인간형을 찍어내는 숨막히는 학교, 결혼 실패 등 현실의 악몽에 짓눌린 내면에 숨겨진 광기를 발견하고 환상 속에 파시스트의 우두머리가 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스토리는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영국 록뮤지컬 전통에서 보여주기 시작한 MTV 스타일의 감각적인 영상과 제럴드 스카프의 애니메이션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영상 실험을 선보인 이 영화에서 망치와 성적 상징을 담은 생물의 싸움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장면, 똑같은 가면을 쓴 학생들이 단체로 기계 속으로 밀려들어가 소시지가 되는 장면은 너무나 잘 알려진 명장면이다.
한편, 주인공인 Pink 역을 맡은 Bob Geldof는 자신 스스로가 뮤지션이었지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명에 머물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에티오피아의 기근을 다룬 BBC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감을 얻어 <Band Aid>를 조직, 아프리카를 돕자는 운동을 전개하여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오르며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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