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줄 아는 영웅이 진정한 영웅이다.
올 초부터인가 검은색 슈트의 강렬한 이미지를 앞세워 차츰 모습을 드러내던 [스파이더맨 3]가 어느덧 개봉을 했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놀랄만큼의 흥행 성적을 올리고 있다. 한국만 해도 그 동안 각종 기록을 가지고 있던 [괴물]을 뛰어 넘어 개봉 첫날, 개봉 첫주, 휴일 최고 흥행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고, 600여 개에서 시작한 개봉관이 800개를 넘어서서 개봉관 편중에 대한 논쟁이 다시금 벌어지게 된 계기가 되고 있다. [괴물]이 엄청난 흥행을 올리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괴물]이 단순한 괴수 영화에 그쳤던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무거운 사회적·정치적 주제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봤다면 [스파이더맨 3] 역시 비슷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슈퍼 히어로 영화 중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문제 의식을 담고 있는 [엑스맨]이나 성장 드라마와 완벽하지 않은 슈퍼 히어로의 모습을 담은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다른 블록버스터 영웅물과 확실히 차별되는 지점이 있으며, 이것이 두 시리즈가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나름의 성과를 올리게 된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파이더맨 1]의 주제는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선언이며 이는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불행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는 제대로 된 책임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무소불능의 영웅에게도 누군가 돌보아주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아련한 정서를 보여준 [스파이더맨 2]를 지나 [스파이더맨 3]의 주제는 '용서'로 집약된다.
주연을 맡은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틴 던스트가 더 이상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비쳐 어쩌면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지도 모를 [스파이더맨 3]는 정말 마지막 시리즈인 것 처럼 온갖 요소들을 영화 속에 비빔밥 처럼 쏟아 붓고 있다. 거미줄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의 모습처럼 멜로영화로서, 친구와 연인에 대한 질투와 그것을 극복하는 성장 영화 또는 청춘 영화로서, 악한(?)과 맞서 싸우는 블록버스터 영웅 영화로서 등등. 이 때문에 상영 시간은 2시간 20분에 달하며 방대한 분량을 담다보니 확실히 짜임새나 캐릭터의 특징은 2편에 비해선 떨어지는 감이 있다.
어쨌든 이번 시리즈에선 스파이더맨에 대항하는 상대들이 다량으로 등장한다. 우선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삼촌의 살인범 '샌드맨',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베스트 프렌드 '해리'(뉴고블린), 직장의 라이벌로 등장한 '베놈' 거기에 피터 파커의 어두운 면인 '블랙 스파이더맨'까지. 그런데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인 스파이더맨부터 시작해서 그 상대들까지 스스로 원하지 않은 능력을 소유하게 되며, 피터 파커와 개인적으로 이러저리 얽혀 있는 존재들이다. 이는 죽여야 될 만큼 정말 나쁜 놈들(?)은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용서'라는 주제만을 놓고 본다면, 감독이 진정 하고 싶은 말은 바로 피커 파커와 숙모와의 대화일 것이다. 피터 파커는 샌드맨을 처치한 후(그렇게 믿은 후) 숙모에게 가서 스파이더 맨이 샌드맨을 죽였다고 얘길하자 숙모는 스파이더맨이 살인을 할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복수에 성공해 기뻐할 줄 알았던 숙모의 의외의 반응에 당황하는 피터 파커에게 숙모는 말한다. "삼촌은 우리가 복수심을 품고 살아가길 원하지 않을 게다. 복수심은 독약같아서 사람을 괴물로 만든단다"
이 말은 911 테러 후 복수를 외치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정권 및 그런 복수를 위한 전쟁을 승인해 준 미국 국민들을 향한 외침으로 해석된다. 아무리 정의로 포장된 복수라고 할지라도 그건 살인이라는 범죄에 불과하다. 즉, 이 영화는 상당히 진지한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외계물질 심비오트에 감염되어 우쭐거리고, 폭력을 행사하며, 막강한 힘을 책임감 없이 사용하는 블랙 스파이더맨의 모습 = 현재의 미국이며 이는 미국의 본모습이 아니므로 마지막 스파이더맨처럼 자신을 거의 죽일 수도 있었던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야 진정한 영웅이라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스파이더맨이 결국 용서하게 되는 삼촌의 살인범을 모래로 된 '샌드맨'으로 만든 것이 중동을 의미한다는 지적은 꽤 그럴싸하다. 또한 마지막에 '옳은 선택'을 강조하는 메시지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의 상황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 영화가 이러한 정치적 주제만을 담고 있다면 그것이 슈퍼 히어로 블록버스터 영화는 아닐 것이다. 거대한 빌딩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추격전을 벌이는 스파이더맨과 뉴고블린, 건물을 두부자르 듯 썰어대는 거대한 크레인, 엄청난 속도로 운행하는 지하철 사이에서 벌이는 스파이더맨과 샌드맨의 대결, 마지막 2:2로 벌이는 태그매치 등 마치 모든 액션을 총망라해서 보여주는 듯한 거대한 액션신들은 '역시!'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영화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만큼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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