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배 한척 값을 벌기 위해 낯선 땅 인천의 삭막한 뒷골목에 버려진 삼류깡패 이강재. 중국에서 고아가 되어 한국으로 정처 없이 흘러들어 온 파이란. 이 둘은 말 그대로 희망이 없는. 세상에 어디 기댈 곳이라고는 없는 세상이 늘 낯선 곳인 인간들이다. 깡패는 깡패다. 깡패는 직업이 아니다. 벌건 대낮 환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범죄자들이다. 깡패는 사회의 습한 그늘에서 기생할 수밖에 없는 비극의 주인공들인것이다 .그들의 삶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신나는 오락거리가 될수 있는것은 세상이 아니러니이다. 비정하고, 비참하고, 어두운 곳에서만 가능한 삶.... 이 세상에 가장 화려함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사회의 부정 부패와 맞몰려 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예술도, 다 깡패짓과 다를게 뭐 있는냐는 대중들의 불만과 은근한 지지가 깡패 영화를 아름답게 가꾸어 준것 같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끈임없이 지향만 하다 불행해지는 깡패들의 삶은 늘 긴장과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의 역속이다. 영화 속 깡패들은 권력도 화려하다. 산뜻하기까지 한 그들의 권력은 가장 비극적이고 깨끗하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비수 날같이 비장해 보이고 깨끗한 권력의 행산는 우리들이 비리 비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꿈인 것이다. 깡패가 되기까지 한 인간이 걸어왔을 삶의 저쪽은 어둠의 질곡이 있었을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당하고, 상처받아 어디 따듯한 곳에 발 디딜 수 없는 사람들이 갈곳은 뻔하다. 그들이 숨쉴수 곳은 바로 뒷골목이다. 그러나 깡패 영화는 깡패들의 진짜 삶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삶의 내용이 빠진 형식만이 화려하게 스큰린을 장악하고 있었다. 삶이 지워진 밋밋한 껍데기들이 배우라는 옷을 걸치고 화렬하게 허깨비 춤을 추는 것이다. 깡패가 영화속에서 우리들의 삶 곁으로 걸어나와 치사하고 더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환생한 모습은 영화 파이란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드러나있다 파이란 영화 속에서 이강재라는 불쌍한 삼류깡패의 삶. 이것은 우리의 또다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