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오랜만에 홍상수 감독 영화를 또 보게 되는군.
한국 영화계의 이단아 홍상수.
이런 영화를 만들면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홍상수 감독의 영화
1996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8 강원도의 힘
2000 오! 수정
2001 생활의 발견
2004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5 극장전
이중에서 내가 본 영화는 '강원도의 힘','생활의 발견' 이다.
내가 예전에 봣던 그 영화 그대로이다.
불쾌스러우면서도 정콕을 찌르는.
특징적으로, 배우들의 뻘쭘한 연기(?) 이다.
기존의 잘 꾸며진 영화들에서 배우들은 어찌 그리도 유식한지 어려운 문맥이 잘 조합된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만큼은 일상속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극단적 리얼리즘 이라고나 할까?
겉으로 드러내 놓고 어떤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생활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리얼하게 보여주며, 그런 실제와 같은 상황속에서 은유적으로 던져지는 메세지들.
어쩌면, 굳이 딱히 정해진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딱히 정해진 어떤 주제나, 메세지나, 도덕관념이 있는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입장과 내가 그 사람을 보는 입장이 서로 틀리듯이, 어떤 메세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리얼한 상황속에서 던져지는 메세지들을 나름대로 받아들이기 하는듯 하다.
그런 면에서, 이러한 리얼리즘 적인 묘사방식은 기존의 영화들에서 권선징악, 윤리도덕, 주제의식을 강하게 어필하는 2차원적인 표현 방식보다는 한단계 위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너무 솔직(?)하기 때문인가. 주로 '섹스' 가 많이 다루어지기 때문에 더 불쾌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하나같이 '섹스' 에 대한 도덕관념 자체가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니, 모호하기 보다는, 이 영화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것이 도덕이고, 어떤것이 기준인지 알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남자들이 집창촌은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술자리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그곳에 가듯이.
도대체 뭐가 '여자는 남자의 미래' 라는 것인가.
좀 모호한 제목이지만, 웹서핑에서 누군가의 글을 읽어보니 대충 감은 잡히는듯도 하다.
이 영화에서 유지태와 김태우가 만나 술을 마시는 장면과 둘이 나누는 대화들, 그리고, 유지태가 극중의 제자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 분위기를 통해 약간은 감을 잡을 수 있다.
물어보자.
당신은 남자끼리 술마실때와 여자가 껴서 술을 마실때 기분이 어떻게 다른가?
(물론, 당신이 여자라면 거꾸로 생각해보자, 여자끼리 술마실때와 남자가 껴서 술을 마실때 기분이 어떻게 다른지.)
채팅하면서 어떤 여자에게 물어보니, 여자의 경우도 남자가 껴서 마시는게 더 분위기가 좋다고 하더라.
극중, 문호(유지태)와 헌준(김태우)은 친한 선후배 사이이지만, 둘이 술을 마실때면 별로 할말도 없고, 서로에 대해 묻는 안부조차도 형식적이다.
친한듯도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별 흥미도 관심도 없다.
하지만, 선화(성현아)와 만나면서 그들은 서로 선화에게 관심을 보이며 이런 저런 할얘기도 많다.
문호가 우연히 학교 제자들을 만나 갖게된 술자리에 이런 상황을 암시하는듯한 대사가 나온다.
여제자중 한명이 '선생님은 왜 여자후배들 앞에서 목소리를 깔고 그러세요~' 하는 대사다.
여자가 껴있으면 남자는 변하게 된다. 그런점은 역시 여자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자끼리 있을때와 남자가 있을때 여자의 행동은 변하니까.
또한, 여제자중 한명이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며 문호를 따라가는데 이를 같이 술을 마셨던 남학생이 미행을 해서 둘이 여인숙에 들어가는것을 목격하고, 이런 사실을 문호와 그 여학생은 알게된다.
큰일이다. 선생과 여제자가 같이 여인숙에 들어갔으니,.. 어쩌면 선생으로서의 생명도 다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암울한 상황은 문호,선화,헌준의 삼각관계에서도 발생했다.
어려서부터 남자들에게 인기많던 선화는 헌준을 사귀면서도 중도에 옛날에 사귀던 오빠에게 끌려가서 강간을 당한다.
그런 사실을 헌준에게 고백하지만 헌준은 자기와 섹스를 하면 다시 깨끗해진다며 아무렇지 않은듯 섹스를 즐긴다.
그러던 어느날, 헌준은 도망가듯이 선화를 버리고 미국유학을 떠난다.
헌준이 떠나가버린후, 문호는 선화에게 접근하여 섹스를 나눈다.
문호가 제자들과 술을 마시러 가기전날, 세명이 선화의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선화를 버리고 미국으로 도망가듯 유학간것을 사과하며 헌준은 선화와 섹스를 하지만, 섹스후 방을 나온 선화와 문호가 다시 다른 방에 들어가 섹스를 한다.
다음날, 헌준은 이상하게 문호에게 퉁명스럽게 대한다.
그런 헌준을 선화가 나무라지만, 만취해서 몰랐을줄 알았던 헌준이 둘사이에 섹스를 나눈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며 소리치며 떠나 버린다.
선화로 인해 두 남자의 관계는 영원히 쫑~.
모든 사건들은 '여자' 로 인해서 발생한다.
남자들이 여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미래도 모두 암울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여자' 다.
그런 점에서 여자가 남자의 미래일까?
하지만, 예측한대로 단순히 이런 의미에서 여자가 남자의 미래라는 것은 굉장히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왜냐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로,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
단순히 여자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남자들의 미래가 좌지우지 된다면, 그와 반대로 남자들과 관계를 맺은 여자들의 미래도 좌지우지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학교 급훈에 그런것도 있다지?(유머) "한시간 더 공부하면 남편이 바뀐다" 고..
이런 급훈은, "한시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와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반대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굉장히 편협한 주제가 아닐수 없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굉장히 '남성본위' 의 제목이 아닐수 없다.
이런 언쟁이야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말과 같으니 이쯤에서 접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내 기호에도 잘 맞는다.
나는 꾸며진것 보다는 사실적이고 리얼한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굉장히 불편하고 불쾌하다.
모두들 알지만, 말하기를 꺼려하는 치부를 드러내 보이는것 같아서.
그래도,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한국영화에 있어 큰 이득이고, 관객들에게도 신선한 재미를 주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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