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이영화는 비록 실미도나 태극기휘날리며 처럼 천만관객에 이르진 못했지만, 작가적 상상력과 우리 영화기술이 반열에 올라섰음을 확인시켜준 영화임에 분명하다. (아마 실미도, 태극기...이후에 개봉했더라면 그 이상의 관객동원이 가능했을 것이다.)
살인의 추억이 던져준 강렬한 메세지와 감흥은 나의 영화적 취향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평소 스릴러나 추리물을 탐닉하며 반전의 요소를 찾아가는데 가장 매력을 느끼던 바로 그 취향...(흐흐~ 엽기적이고 폐쇄적인 나의 본성이 나온 것일까)
살인의 추억은 대충 한 3번 본 것 같다. 3번다 우연히 유선방송과 주말의 명화같은 TV를 통해서 였는데 첫번째 떠오르는 기억은 용의자의 곱상하고도 창백한 이미지 다. 마치 둔기로 얻어 맞은 듯 우리 사회의 먹물이나 화이트 칼라들을 겨냥한 듯한 설정이 이채롭다. 소위 대학물 먹고 점잖떠는 이중성을 가진 회색무리를 겨냥한 듯 했는데, 용의자에게 동류의식을 느끼는 외모와 의식의 소유자들이 가장 저주했을 성 싶다. 연출자는 탄광촌의 광부들과 대비되는 곱상하고 가여린 손을 가진 용의자의 심성에 깃들은 극단적 이중성을 암시하며, 용의자의 빈틈없는 일처리과정을 오버랩해 들어갔다. 마치 80년대 초반 수많은 먹물들이 젊은 시절 탐닉했던 완벽한 이중성과 사악함을 비웃듯이...
살인의 추억이 던지는 두번째 시사점은 먹물형사와 촌넘형사의 동질화 과정이다. 마치 운동권형사처럼 보이는 먹물형사는 과학적 기법을 추종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엔 촌넘형사와 같은 무대포 기질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아냄으로서 폭압적인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함께 관객들과의 동질화를 이뤄내는데 성공한다. 어떤 관객은 먹물형사와 동질화하고 또다른 관객은 촌넘형사에 동질화함으로서 공감의 계기를 포착해 들어간다. 아니 한사람내에 깃들은 이중적인 두개체, 즉 우리 자아내에 깃들은 촌넘기질과 먹물성향이 좌충우돌하면서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고 동화의 과정을 밣아 가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안의 대립과 갈등이 화해하고 시대적 배경까지 적절히 가미하니 그맛이 간단치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인의 추억이 던져주는 또다는 의미는 한국 영화의 스릴러나 추리물이라는 카테고리의 완성이다. 한국에도 이제사 미저리나 양들의 침묵과 같은 반열의 영화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지나친 것일까. 살인의 추억, 몇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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