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로 나온 똑같은 이미지의 포스터가 있었으면 더 좋을 뻔했습니다. <타인의 삶>이 독일하면 느껴지는 진중한 이미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살가운 이야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려깊은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1984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의뢰를 받은 도청전문가(비즐러)가 시인이자 극작가(라즐로 드라이만) 그리고 그의 연인인 여배우(크리스타)를 도청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실은 이번 도청 작전이 문화부장관이 크리스타를 욕심내어 라즐로에게서 흠을 찾아내어 창작활동을 막고 그녀를 빼앗아오기 위한 목적에 더 중점이 두어져 있음을 비즐러는 이내 알게 됩니다.
영화의 시작에서 도청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등장하는 비즐러는 경력이 많은 도청 전문가입니다. 현업을 떠나있었던 그에게 슈타지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찾아와서 연극 무대, 극장으로 초대합니다. 거기서 라즐로 커플을 보게 된 비즐러는 덥석 그들을 도청하는 일을 맡겠다고 스스로 나섭니다. 기계 인간 같아보이던 그의 눈이 탐스런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의 그것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내 그 눈은 라즐로 커플의 사랑과 예술에 대한 열정, 그리고 브레히트의 시와 베토벤의 "착한 영혼의 소나타"를 들으며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젖어듭니다.
캐릭터의 변화가 이루어지며 영화는 새로운 상황으로 비약합니다. 허구와 실제, 픽션과 논픽션이 다층적으로 맞물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참과 거짓, 진짜와 가짜의 대립까지 섞여듭니다. 크리스타가 라즐로와 그의 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장관에게 다시 몸을 바치러 가며 괴로워 할 때 비즐러가 나타나 그녀를 막습니다.
- 동창을 만나러 가야겠어요.
- 거짓말하니까 딴 사람처럼 보이는군요.
-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나요?
- 난 당신의 관객입니다. 당신의 진실된 모습을 무대에서 보았어요.
- 제가 아직도 당신이 아는 크리스타인가요? 당신이라면 예술을 위해 몸을 버리겠어요?
- 별로 좋은 거래는 아니군요. 당신은 최고의 배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 당신은 참으로 착한 사람이군요...
"당신은 진짜이니까. 나같은 가짜, 거짓 허깨비와는 다른 진실을 안고 살아가야 마땅한 사람이니까..."
객석에 앉아있던 관객이 무대에 뛰어올라가 연극 속으로 뒤섞이는 장면을 방불케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저는 이후의 일련의 스릴러적인 사건들보다 이 대목에서 한층 더 조마조마함을 느꼈습니다. 어쨌든 이 이후로 더 이상 라즐로와 크리스타는 비즐러에게서 타인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비즐러는 이제 적극적으로 그들을 슈타지로부터 보호하려 합니다.
존경하는 선배 작가의 자살을 겪은 라즐로가 체제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하자 비즐러는 자신의 보고서에 라즐로가 새 희곡을 쓰는 것으로 기록합니다. 말 그대로 비즐러가 스스로 허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이제 드디어 비즐러의 삶은 예술을 모방합니다. 그의 실제 삶이 허구에 의해 휘둘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윽고 비즐러는 크리스티나를 취조하게 됩니다. 당연히 요원들의 감시 하에서말입니다. 그녀는 비즐러의 앞이므로 참말을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일은 마침내 어김없이 일어나고야맙니다. 진실을 얻고자 남을 독려한 것이 남은 물론 자신을 찌르는 창이 되었고 비즐러는 모든 것을 잃고 남루한 우편 검열의 한직으로 떨려나가고 맙니다. 라즐로가 하고 싶어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금지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움직인 결과로 비즐러는 스스로 가장 잘 하는 일을 금지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또한 아주 짙은 블랙 코미디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권력자들의 눈길이 음란해지면 질수록 그 억압 밑에서 자신의 진실을 지키려는 권력없는 자들의 노력은 희화화되며 조롱당합니다. 그러나 이게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5년 후 베를린 장막이 무너집니다. 그 후일담격인 시퀀스 몇 개가 띄엄띄엄 이어지는데 직접 극장에 가서 느껴보시라고 결말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아끼겠습니다. 다만 비즐러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습니다.
- Nein, das ist fur mich. (No, this is for me. 움라우트를 어떻게 쓰나요? ^^;;;)
이 대사 한 줄을 내뱉는 비즐러의 마지막 표정을 보면서 신음처럼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즐러가 타인의 삶에 뛰어들었던 행동이 실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그리고 그것은 가치있는 예술품으로 빚어지고 있었음을 생생히 증언하는 한마디인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그 결말의 힘이 가장 옹골찬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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