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형 미스테리 스릴러물이 선보였다. 아니 정확하게 따지자면 미스테리 추리극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리겠다. 제목부터 어딘지 모르게 섬뜩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은 그 심상치 않은 제목부터 관객들의 구미를 땡기게 한다. 더군다나 헐리웃 영화들의 선전 속에서 기를 못 펴고 있는 요즘 한국영화들에 또하나의 기대작이라는 점은 더더욱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에 시선을 가게 만든다. ‘극락도’라는 고립된 섬, 그리고 그 곳에 사는 17명의 주민, 제목 그대로의 살인사건과 그 속에 얽힌 미스테리한 일들...요소요소가 호기심을 가지게 만들고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 하다. 더군다나 출연작마다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있는 연기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편안한 배우 박해일과 감칠맛나는 연기로 여러 영화들 속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많은 베테랑 조연배우들까지 참으로 맛깔스러운 요소들을 많이 가진 영화임에 분명하다.
때는 1986년, 어느 외딴 섬 ‘극락도’라는 곳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를 타고 들어가서 나오는 극락도라는 섬은 어딘지 모르게 음흉한 기운이 맴도는 곳이다. 고립된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여느 영화들이 다 그렇지만 [극락도 살인사건] 역시 외딴 섬이라는 고립된 장소의 설정과 촌스럽기에 더욱 음습해 보이는 시대설정까지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어떤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든지 시종일관 긴장을 놓칠 수 없게끔 해주는 강렬한 스토리 전개와 더불어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건의 동기나 상황 배경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은 처음부터 점수를 받고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외딴 섬이라는 낯선 배경설정은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되기 이전부터 관객들로 하여금 빠져나올 수 없다는 두려움과 갇혀있다는 공포감마저 주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관객들은 ‘극락도’라는 섬 안으로 자신들도 모르게 들어가게 되고, 그 속에서 캐릭터들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게 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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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김노인의 칠순잔치가 열리고 17명밖에 안되는 조촐한 마을주민들이지만 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날 밤, 모두가 잠든 시각에 열린 화투판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영화는 이 시점부터 미스테리와 스릴러적인 분위기로 돌변하게 된다. 목격자라고는 화투를 치러 가던 피해자들의 모습을 본 동네 꼬마 태기뿐이고 명확한 단서도 없는 시점에서 마을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기 시작한다. ‘살인사건’이라는 소재는 어떤 영화 속에서든 참 흥미로운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 역시 그 제목부터가 사람들의 이목을 확실히 끌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인사건이 등장하면 그 속에 범인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생기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주인공과 그보다 더 지능적인 범죄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숨막히는 에피소드들과 마지막의 반전까지 결합되면 일반적인 미스테리 영화 한편은 간단하게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 역시 그 틀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한가지 독특한 것은 바로 다수의 용의자와 다수의 피해자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누가 범인일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면서 캐릭터가 단정적으로 만들어 지도록 복선을 깔기 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드라마를 진행시키면서 지속적으로 관객 스스로 두뇌싸움을 하게 만드는 재미를 준다. 빠른 이야기 전개와 그 속에 다양한 캐릭터들의 활약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잠깐의 빈 공간을 주지 않는것 역시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이 단순밋밋한 미스테리 영화에 그치지 않도록 해준 힘이기도 할 것이다.
화투판 살인사건과 함께 마을에서는 점차 안좋은 기운이 겉돌게 되고, 사라졌던 덕수의 시체가 발견되고, 학교소사인 춘배가 발견한 이상한 쪽지와 함께 또다시 극락도 주민들은 새로운 공포감에 휩싸이게 된다. 어느하나 뚜렷한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직감과 예상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다보니 점차 마을 주민들 사이의 신뢰마저도 사라지게 되고, 그와 더불어 생존해 있던 주민들도 하나둘씩 죽어 나가게 된다.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강하게 부각되는 것은 바로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들이다. 특정 몇몇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17명의 캐릭터를 단 하나도 무관심하게 버려두지 않는 것이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며, 관전 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다. 대사한마디 없지만 후반으로 가서는 또다른 의혹을 낳게 하는 김노인, 이런저런 아리송한 추측들만 제공하는 이장과 다혈질적이고 감정적인 상구, 무엇보다 영화의 또다른 백미 중에 하나인 두 아역 캐릭터까지 어떤 캐릭터도 놓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극락도 살인사건]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주인공에 대한 부각으로 인해 생기는 지루함을 철저하게 없애 주면서 오히려 미스테리 추리극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확실하게 부합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은 자칫 산만해 보일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스릴러 영화 특유의 결말이나 이른바 범인에 대한 추측을 섣불리 하지 않도록 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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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은 지금껏 흔히 생각해 온 미스테리 영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칙칙하게 전개되는 분위기 보다는 곳곳에서 실소를 자아냄으로써 관객들의 심리를 조였다가 풀어주는 영리한 실력을 보여준다. 심각한 상황에서 엉뚱한 모습을 보이는 마을 주민들의 행동이나 구수한 사투리로 천진난만한 대사들로 웃음을 주는 두 아역 캐릭터와 살인사건이라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주민들의 순진무구함은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 아프게 긴장하기 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스토리 전개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개성있는 화면편집이다. 눈썰미있는 관객이라면 왠지 익숙한 영화들과 비슷한 편집기술임을 느꼈을 것이다. 바로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를 통해 다양하고 감각있는 편집기술들로 영화의 재미를 한층 더 살려 준 신민경 편집감독이 이번 영화의 편집을 맡았다. 개성있는 화면과 미스테리한 스토리 전개, 약간의 코미디, 그리고 때론 귀신의 등장과 함께 공포적인 요소까지 오가는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는 [극락도 살인사건]이 가진 또 하나의 개성인 동시에 어떤 관객들에겐 다양한 캐릭터들과 더불어 시종일관 변해가는 영화의 분위기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것이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뚜렷한 개성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기에 어떤 것보다 배우들이 보여주는 감칠맛나는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주연과 조연을 가려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영화 속에서 저마다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배우들의 연기는 [극락도 살인사건]이라는 영화를 미스테리 추리극이라는 단정적인 장르에 머물러 관객들에게 틀에 박힌 이미지를 주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캐릭터들의 모습을 통해 영화가 진정 보여주려 했던 다양한 이미지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한다고 할 수 있다. [연애의 목적]의 능청스러움, [괴물]의 껄렁거림의 분위기를 멋고 사뭇 날카롭고 진지한 느낌으로 다가온 박해일을 비롯 기존의 드라마들로 주로 도시적이고 차가운 이미지에서 풋풋하면서도 이성적인 시골 여선생을 연기한 박솔미, 모자란듯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응큼한 속내를 지닌 듯한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는 춘배를 연기한 개성있는 연기자 성지루, 표정연기만으로도 독특한 늬앙스를 풍겨주는 베테랑 배우 최주봉과 김인문, 영화 속에서 때론 실소를, 때론 강한 이미지를 풍겨주는 안내상과 박원상, 유혜정 등은 이미 여러 영화를 통해 보여준 맛깔스런 연기를 유감없이 발휘해준다. 무엇보다 어른보다 더 어른같은 직설적인 말투와 구수한 사투리 연기를 보여주는 두 아역배우 이다윗군과 정예린양의 연기는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백미이기도 하다.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은 “미스테리 추리극”이라는 단정적인 장르로만 보아 넘기기엔 밋밋한 감이 있다. 물론 영화의 스토리는 살인사건과 범인의 추측이라는 미스테리극의 설정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그것을 이끌어 나가는 다양하고 개성있는 캐릭터들과 시종일관 미스테리와 공포를 넘나드는 독특한 분위기의 전환과 곳곳에서 실소를 자아내는 코믹적인 요소까지 가미되어 기존의 미스테리 추리극과는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음은 물론 여러 연기자들이 보여주는 개성있는 연기가 더불어져 더욱 감칠맛나는 영화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한국영화에 고배를 마시게 한 헐리웃 영화들에게 크게 한방 먹일 수 있는 영화가 되어주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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