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식 시니컬함으로 들여다 본 과거의 흔적들...
예전 박노해 시인이 감옥 생활을 마치고 나왔을 때, 생수통과 핸드폰이 가장 놀라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여기 사랑마저도 미안한 감정에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17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온 한 남자가 있다. 그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 무엇이 가장 놀라웠을까? 절대 변치 않을 것 같았던 평생 동지들은 세월의 때가 묻은 채 술에 취해 주먹다짐이고, 어머니는 거액의 돈을 굴리는 복부인이 되어 감옥에서 나온 사회주의자 아들에게 수백만원 어치의 옷을 안겨준다. 그런 어머니를 통해 들은 소식, "한 선생, 죽었어"
현우는 감옥에서 나와 변해버린 많은 것들을 보며,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윤희의 체온이 살아 숨쉬는 갈뫼로 향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현우와 윤희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5월 광주, 건대 애학투련 사건, 노동사 분신 등 시대의 아픈 과거들과 현재의 현우의 행적을 교차하며 더듬어 나간다.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의 경우 원작 소설과 영화의 비교는 천형일 것이다.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그려졌던 황석영 소설에서의 장면들은 영화에서는 담담하게 또는 냉소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를 두고 어디선가는 그 시대를 경험한 자의 언어와 바라보고 전해들은 자의 언어의 차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임상수 감독은 전작인 [그 때 그 사람들]을 통해 과거의 절대 권력자들을 냉소적으로 씹었다면, [오래된 정원]에서는 현재의 권력을 장악한 것으로 보이는 과거 운동권들을 향해서도 슬그머니 냉소적 웃음을 흘리고 있다. 물론 임 감독이 둘을 똑같은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건 아니다. [오래된 정원]이 상대적으로 따뜻한 냉소(?)라고나 할까.
임 감독의 의도는 몇몇 장면과 대사들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현우의 출소 축하 술자리에 모인 과거의 동지들의 얼굴을 보면, 다른 영화에서 악역을 주로 맡았던 얼굴들이다. 아마 임감독의 의도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혁명은 짧고 인생은 길다'며 너스레를 떨다 주먹다짐까지 벌인다. 현실은 좀 더 노골적이다. 민주동문회에 모인 과거의 동지들은 이제 누구 집 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주식으로 누가 돈을 벌었는지 얘기하느라 정신 없다.
현우는 윤희에게 "저 사회주의잡니다."라고 심각하게 말하지만, 윤희의 대답은 심드렁하다. "아. 그러세요. 이미 그렇게 정하셨나봐요" 지금에 와서 보면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하는게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겠지만, 80년대에 사회주의자라고 함은 엄청난 역사적 무게를 져야 함을 의미했다.
임상수의 시니컬함이 노골적이면서 가장 파괴적으로 등장하는 건 윤희가 영작과 하룻밤을 지내고 걸어 나오면서 갑자기 관객을 보며 말하는 장면이었다. "지금 영작은 유명한 인권 변호사가 되었어요. 선거에도 출마한다고 하죠" 윤희는 아주 냉소적으로 이 대사를 되뇌고 있는데, 이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386 출신 정치인에 대한 임 감독의 평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디선가 이 영화는 원작이 주는 강렬한 울림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했든데, 내가 보기엔 임감독은 처음부터 그럴 의도 자체가 없었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강렬한 울림과 시니컬함은 동시에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렬한 울림이 없었다는 식의 비판은 임감독에겐 전혀 아픈 지적이 아닐 것이다. 그런 시니컬함을 인정할 것이냐, 무시할 것이냐의 선호의 차이일 뿐.
개인적으로는 임상수식의 시니컬함이 참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때 그 사람들]은 일종의 블랙 코미디다. 그런 상황을 코미디로 표현했다는 점을 우파나 좌파나 모두 못마땅하게 반응했는데, 과거와 역사에 대해 모든 사람이, 모든 영화가 다 진지하게만 표현한다고 하면 그건 또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임상수식의 시니컬함은 그 자체로 평가해주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전문가 100자평]
황석영의 소설이 섬세하고 끈질긴 묘사의 물질성으로 어렵사리 넘어선 그 '회고주의'를, 임상수는 특유의 쿨한 화법으로 가볍게 넘어선다. 임상수식 쿨한 화법, 그것은 여성적 발화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사랑에 대한 임상수의 시점과 태도는, 정확히 한윤희의 오현우에 대한 그것이다. 경의를 표하지만, 권위로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그 시선과 태도는, 충분히 긍정할만한 것이다. 변성찬/영화평론가
<오래된 정원>은 멜로영화의 지평 안에서 모성성에 대한 예찬으로 귀결되는 임상수식 역사읽기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와 대화하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시대가 아니라 여성을 만나게 된다(인생은 길고 역사는 더 길다는 것을 간파하는 여자와 엄마들). 오래된 이야기를 낡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임상수의 장점도, 시간이 무중력 공간으로 흡수되는 부작용도 여전한 것 같다. 이현경/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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