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갖지 못한자의 집착이 부른 파국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스스로는 향을 갖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발달한 후각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받아 들이는 한 남자의 집착에 관한 이야기다. 원작소설을 읽지 못했는데, 영화에서 가냘프고 고운 선을 가진 남자로 등장하는 장 바티스트는 소설에선 못생긴 꼽추로 나온다고 한다. 그 부분만 빼면 영화는 원작 소설을 거의 그대로 영화화했다고 하는데, 소설처럼 '못생긴 곱추'가 주인공이었다면 맨 마지막 부분인 군중들이 장 바티스트를 우러러보며 집단 섹스 신을 하는 장면이 좀 더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장 바티스트는 더러운 유럽에서도 가장 더럽고 악취가 심한 프랑스 파리의 한 생선가게에서 태어나지만 그 어머니는 탯줄을 스스로 끊고 아기를 한 쪽에 버린채 계속 생선을 판다. 장 바티스트는 울음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되고 이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스스로는 향기가 없는 장 바티스트는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코로 받아 들인다. 이는 단지 냄새 맡는다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물의 향을 통해 그 사물을 인지하고, 속성을 파악하며, 관계를 맺는다. 우리 주위에 이와 비슷한 동물로는 개가 있는데, 대신에 개는 시각이 아주 안 좋다는 걸 고려해 보면, 장 바티스트는 개보다 훨씬 훌륭한 조건을 가진 셈이다.
영화에서는 왜 프랑스에서 향수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데, 첫째는 목욕을 금지시킨 정책 때문이었고, 둘째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가죽 제품의 유행이었다. 고아원에서 가죽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팔아 넘겨진 장 바티스트는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아주 매혹적인 향기를 맡게 된다. 과일을 파는 소녀의 향기에 취한 그는 실수로 그녀를 죽이게 되는데, 그녀의 향기를 보관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가죽제품 거래처인 향수가게 주인 주세페 발디니(더스틴 호프만)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향수가게에서 일하게 된 장 바티스트가 추구했던 건 오직 하나, 향기의 보관이었다. 바로 인간의 향기. 그는 드디어 그 비법을 알게되고 그라스에서 다양한 직업의 아름다운 처녀들을 죽여, 그녀들의 향기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전설 속의 파라오 향수에 버금가는 향수를 만들기 위해 그는 13명의 쳐녀를 살해하고, 드디어 세계를 자신의 발 아래 굴복시킬 수도 있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지만, 바로 그 순간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이제 영화는 처음 부분으로 돌아간다. 연쇄 살인으로 흥분했던 많은 군중들은 그의 사형 집행을 보기 위해 광장에 모여들어 소리를 질러댄다. 그를 태운 마차가 서서히 광장에 도착하고, 마차에선 더럽고 꾀죄죄한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광채를 뿜는 아름다운 귀공자가 조용히 내린다. 소리를 질러대며 흥분하던 군중들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사형대에 올라간 그가 향수를 살짝 뿌린 손수건을 흔들자 그 향기에 도취된 군중들은 너나 할 것없이 옷을 벗고 집단 성교에 돌입한다.
원작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이 마지막 장면이 생각보다 별로 였다는 반응이었는데, 소설을 읽지 않은 나로선 수백의 남녀가 전라로 집단 성교를 하는 장면은(그것도 꽤 아름답게 표현된) 꽤 신선한 시각적 자극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흘린 장 바티스트의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영화를 보면서는 자신이 원했던 모습이 아니었다는 느낌이 아닐까 했는데, 잘 모르겠다. 원작 소설을 한 번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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