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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짜리 백일몽을 꾼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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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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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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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07 오전 1:5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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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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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보> 는 <정사>를 만든 이재용 감독의 두번째 장편이다.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릴 법도 하건만, <순애보>에선 적어도 그런 기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외려 영화의 연출은 여유를 부린다. 몇몇 눈에 익은 이들이 까메오로 등장한다던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를 패러디한 네마자데(!)의 "리에의 집은 어디인가" 란 대사, 극중 미아를 닮은 인터넷 회사 광고 모델(김민희),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가 우인(이정재 분)의 통신 아이디 인 점(알려진대로 이재용 감독의 출세작? <호모 비디오쿠스>는 <택시 드라이버>의 패러디였다)등.. (제목을 고려했는지 심'순애' 란 이름도 등장한다) 영화는 곳곳에 익살스런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다.
감독의 전작인 <정사>가 관객을 위해 자신의 영화세계를 미뤄놓은 경우라면, <순애보>는 감독이 다시 단편 영화 시절로 돌아간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사적이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고나선 은근히 '관객을 가지고 논 것 같다' 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생각해 보자면, '두 남녀의 국경을 넘은 만남과 인연으로 가기 이전의 상황들', 이다. 물론, 이 영화는 반복/갈등의 내러티브 구조로 인해 이야기의 응집성을 가진다. 또한, 그러한 이야기 구조는 이재용 감독만의 미장센으로 채색되어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러나, 영화의 이야기는 적정선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 느낌이다. 마치 발단 전개 이후 바로 결말로 이어지는듯 하다. 물론 시각적으로 충격적이거나, 거친 설정만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룰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영화에는 큰축을 이루는 사건이 딱히 없기도 하고.) 하지만, <순애보>는 한국과 일본의 두 남녀를 위해 너무 많은 플롯의 군더더기를 남겨두었다. 극 초반 다소 우스꽝스런 분위기의 서울과, 우울함과 슬픔이 어린 동경의 대비는, 점차 서로를 닮아 가면서 흐지부지되어 버리고 만다. 물론, 이런 두 공간의 병치에 이은 '동질화' 가 두남녀의 인연을 서술하는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시간이 길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오래 지속되는 듯한 기분.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편집과 촬영에 부분적인 원인이 있었다. 이 영화는 컷이 자주 쓰이는데, 특히 디졸브와 페이드를 적절히 병행하고, 대신 관습적인 숏의 병치는 자제했다. 또한 카메라와 편집이 동시에 인물의 행동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인지 정적이면서도 유연하게 영화는 이어진다. 카메라는 대부분의 피사체를 그저 응시한다.결국 프레임에는 흔히 말하는 일상의 고즈넉함과 실없음이 배어나온다.
<순애보>의 인물들이 보이는 행동은 간혹 미소를 자아낸다. 이는, 영화의 (특히 우인을 둘러싼 주변) 공간적 배경(크지 않은 동사무소와 인우의 집등)이 낯설지 않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이는 일관성을 유지한 조명 덕분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 쓰인 빛의 성질은, 밤이건 낮이건 화면에 안락함을 주는 효과를 지니는데, 이는 <정사>의 거칠었던 필름과는 또다른 어법으로 다가온다.)인지라 등장 인물의 대사 하나하나에 관객들은 적대감을 가지지 않게 된다. 배경에 삽입된 음악은 다양한 시대와 상황을 지녔지만, 영화의 상당부분은 효과음만을 사용한 터라 보는 이들로썬 사소한 것에 몰입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영화의 순한 성격(순한 영화라는 점에서 <순애보>란 제목은 그럴듯 하다)은 연출의 수월함을 가져왔을지는 모르나, 동시에 나태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결말의,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는 두 남녀의 나레이션이 다소 허망한 것은 그 때문이다.
여하튼 <순애보>는 세련된 영화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유머가 있다. 꽉 찬 느낌의 화면에서 의외로 단순함의 미덕을 볼 수 있다. 감독은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자신을 돌아보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영화속 간절한 (리에 어머니와 같은,또는 우인과 같은) 인연의 모습을 담고 싶었을까,.. 어쩌면 이도저도 아닌, 그저 우연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인우의 집 천장이 새는 모습이 황당하기보다는 우연아닌 우연처럼 느껴졌듯이. <순애보>는 기시감을 가장한 '기억' 에관한 영화다. 또한 난데없이 슬퍼지기도 하고, 즐거워지기도 한다. 어설픈 조울증에 걸린듯 하지만 영화가 결코 밉지 않은건 만들어진 이미지를 보는 기분이 좋아서 혹은, (적어도 작품내에서) 무리없이 짜여진 각본 때문이지 싶다. (덧붙여, 다케시 영화로 친숙한 오스기 렌의 등장도 반가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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