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영된 KBS의 '신화창조'. 한국기업들의 성공담을 재구성한 다큐프로그램이다. 척박한 해외시장을 개척하거나 맨손으로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철저한 기업가 정신으로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 낸 많은 기업인들의 성공신화가 소개된다. 작년 6월 종영되기까지 이 프로그램의 평가는 꽤 좋은 편이었다. 성공 뒤에 숨은 비사를 들으며 많은 시청자들이 이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는 성공담의 공식에 충실한 헐리웃판 '신화창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성공한 기업가(여기서는 증권브로커)의 다분히 '신화'적인 성공스토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상황의 '재연'에 충실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성공담이 주는 감동은 매우 크다. 시대와 상황을 넘어 '인간승리'라는 보편적 욕구에 소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보편적 욕구에 이르는 과정은 매우 험난하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만 성취를 이룬다. 유명인사의 자서전이 그렇게 많이 팔리는 것은,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회자되는 것은 자신이 오르지 못한 어떤 '경지'에 대한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너무 손쉽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성공스토리의 속성상 별다른 부담없이 긴장-갈등-위기-해소라는 진부한 플롯을 따른 것은 어쩔 수 없었다치자. 하지만 상황 '재연'에 치중한 나머지 맥락이 완전히 실종돼있다. 그가 가난하고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라났다는 것, 아내가 집을 나갈 정도로 가난했던 이유는 낮은 학력과 '흑인'이라는 인종적 특징 때문이었다는 것은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가 요즘 우리 언론에서도 회자되는 '가난을 되물림'하는 '사회구조적 문제'까지 고민했어야 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애써 상황의 맥락을 무시하고 탈색함으로써 이 이야기를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의 치열한 투쟁'으로 치환하는 것은 그 '가난'이 오로지 개인의 문제일 따름이라고 말하는 것 밖에 안된다. 이것은 깊이의 문제를 떠나 일종의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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