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독일의 문호를 알게한 작품 원작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를 영화화한 톰 티크베어 감독에게 갈채를
보내고 싶었던 영화를 눈으로 직접확인할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했다. 향수는 한 천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18세기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탄생한 '향' 즉 냄새에 대한 지극히 예민한
감각을 지닌 비운의 주인공 장 밥티스트 그루느이(벤 위쇼우)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독한 악취로 뒤덮힌 생선장터에서 태어난 그루느이의 비극적 출생부터
그의 주변사람들에게 닥쳐오던 불행, 그 불행과 함께 냄새에 대한
강한 집착과 소유욕을 가진 주인공의 일생의 비화는 그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다. 태어날때부터 죽음의 위기를 맞았던 그는 세상의 냄새를
하나, 하나 기억하는 특유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모든 냄새를 분리하고
그 세밀한 냄새의 조각조각 조차 분별해 낼줄 알았던 천재인 그는
고아원에서 길러지다가 무두쟁이에게 팔려나간다. 무두쟁이에게 팔린
그는 하루 16시간 동안 일하면서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다. 그의
냄새에 관한 감각은 더욱 더 예민해지고 그 냄새에 대한 소유욕은
이루 말할수 없이 강렬해진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이제는 점점
몰락해 가는 향수가게의 주인 발디니(더스틴 호프만)가 포착되고
그의 천재적인 감각으로 발디니가 견재하는 경쟁자의 향수가게의
펠리시에가 개발한 '사랑과 영혼' 의 향수를 측량조차 하지 않은채
감각만으로 만들어 내는 놀라운 재주를 지닌 그루느이를 제자로서
받아들인다. 놀라운 향수를 수많은 조합법으로 만들어 내는 그루느이
의 재능으로 다시 번창하게 되는 발디니의 가게, 하지만 그루느이
가 원하는 것은 향수의 영원한 보존방법이었고, 일반적인 증류법으로
는 그가 원하는 것을 가질수 없음을 발디니의 한계에 의해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향수를 소유할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루느이는 무력감에 죽음의 위기에 처하고 그런 그에게 한가닥
희망 그라스가 생명의 불을 지핀다. 발디니의 가게에 들어가기 전
아름다운 미모와 다른 사람과는 다른 체취를 지닌 한 여자를 살해했던
그루느이, 그가 원했던 것은 그녀가 지닌 향수였다. 하지만 그 체취를
결국 손에 넣지 못했고, 그런 그의 희망을 밝혀준 그라스를 향해 출발하던
그는 도중에 도달한 냄새없는 세상의 극점과 같은 정상에서 자신의 체취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천재는 다른사람과
다른 단 한가지, 자신의 냄새가 없음을 깨닫고 절규하지만 곧 계획을
바꿔 그라스로 다시 향하게 된다. 그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체취를
그대로 향수로 만들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된 그루느이는 그동안 생각했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향수를 만들기 위해 스물 다섯명의 여자를 살해한다.
그리고 그 체취를 향수로 만들어 배합해내는 그루느이, 그라스에는 이미
처녀를 살해하는 악마적 살인범의 공포로 통행금지령까지 발행된 상태다.
그루느이의 엽기적 살인 행각도 결국 그 끝을 보이게 되고 덜미를 잡힌다.
하지만 그루느이의 완벽한 향수는 이미 완성된 상태, 그의 처형식날
광장으로 모인 분개한 사람들과 주교, 하지만 그가 완성한 완벽한 사랑을
받는 향수는 사람들의 전체 환각과 패닉 상태로 만든다. 그의 손짓 한번에
눈물을 흘리며 죄인이 아니라 천사라 외치는 사람들과 주교, 심지어 자신의
딸 로라가 살해당한 리치조차 그에게 용서를 구하며 나의 아들이라 부른다.
향수 하나로 제왕으로 군림할수 있는 그가 뿌린 향수의 잔재가 남,녀,노,소
그리고 신분과 성별을 초월한 사랑의 행각을 벌이게 만든다. 짐승처럼 헐떡
이며 서로의 몸을 탐하는 사람들의 모습...그것은 원시적인 인간의 본능을
끌어낸 태초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단지 향수하나로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리는
악마의 연금술사같은 그루누이는 자신이 존재하던 파리로 향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이끌린 자신이 태어난 곳, 그곳에서 향수를 모두 쏟아 부으며
향수에 이끌린 사람들의 사랑이 그의 몸을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지상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그루느이의 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원작소설을 먼저 읽어본 탓에 영화는 그루느이의 행각을 세밀하게 묘사하지는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소설의 느낌이 전해줄 대부분의 느낌을 충분히
관객들에게 전하도록 연출했다는 것에 상당한 감탄과 놀라움을 느끼게 만든다.
연출과 연기가 뒷받혀 주었지만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글솜씨에서 배어나오는
결코 세상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무취의 고독한 천재 그루느이의 내면의 묘사를
어느정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소설도 그러했지만 영화에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천재란 존재와 인간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 그리고 천재가 가지는 범인이
이해할수 없는 지독한 고독과 그만큼 받아들이기 원했던 사랑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면
서 보여줄수 있는 놀라운 상황을 선과 악의 경계도 모든 감정조차도 마비시키는
아이러니하면서도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준다. 비극적
천재의 잔인한 운명앞에서 결국 그가 그토록 원했던 모든 소유욕을 충족하는 순간
조차 허망하며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사랑의 굶주림이 그를 다시 무로 돌려
버렸음을 말이다. 원작소설의 느낌을 빼놓고라도 영화로서 배우들의 충실한
연기와 소설에서 보여줄수 없었던 영상미에서 보여지는 색다른 느낌은
잔잔히 마음속에 파문과 함께 풀어놓을수 없는 숙제를 마음속에 새겨놓은 영화,
적극적으로 한번쯤 볼만한 영화임을 추천하고 싶은 그런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