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의 남자친구> 코리아헤럴드 기사 (번역문)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이 말씀에 토를 달자면 이러하다. 많은 남성들이 이웃의 아내를 탐하고 있어 이러한 악습은 기울어져가고 있는 사회의 도덕성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금지해야 한다는 것.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전부가 아니라면)에게는, 금지된 것이 오히려 도발의 유혹을 배가시킬 뿐이다. 결국, 다른 이의 아내를 탐한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그 한계에 관해 정곡을 찌른 말인 것이다. 이것은 박성범 감독의 영화, <내 여자의 남자친구>의 흥미로운 테마이기도 하다.
실제로 석호(최원영)는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는 않는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지만, 그녀에게 충실하고 싶지 않다. 자칭 플레이보이인 석호는 미혼여성들을 잘 노린다. 그는 지연(고다미)과 지속적인 성관계를 갖는데, 그녀는 카메라 렌즈에 남자의 몸을 담는 것 이상을 원하는 도발적이고 요염함 자태를 가진 사진작가이다. 또 석호는 채영(김푸른), 우리나라에서 가장 정숙한 여인으로 보이는 대학생을 유혹하고 싶어한다.
이웃의 아내를 탐하는 역동적 논리는 여기에 적용된다, 지연은 석호와 그가 명백하게 자기쪽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가벼운 연애놀이를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석호가 사진작가를 확실하게 손아귀에 넣었다면 그런 관계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은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석호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보다 많은 것을 정복하려고 모험을 무릅쓴다. 목표는 채영의 순진무구함의 결정체다. 아무리 석호가 비싼 선물을 안겨주고, 보통의 데이트 책략으로 유혹하려고 노력해도 채영은 넘어올 기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채영의 끈덕진 거절이 석호의 격렬한 열정을 더욱 뜨겁게 달굴수록 금단의 사과로 인해 인간의 욕망이 극단적으로 증대되는 것을 제시하는 증거는 더 풍성해진다.
지금까지, 영화 기법이라는 관점에서 아주 분명하다. 박감독은 어쨌거나 이런 기법으로 줄곧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 왔다. 그는 전지적인 카메라 앵글을 채영에게 이동한다. 채영은 결국 정숙한 여자가 아닌 것으로 들통난다. 석호의 이미지와 나란히 배치하면서, 감독은 채영이 각각의 장면에서 실제로 꾀하는 것이 무엇인지 폭로한다. 대부분의 경우, 채영은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하는데, 그는 도서관보다는 모텔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학생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얘기 같지 않은가? 2000년도에 홍상수 감독은 이미 풍자적이고 클래식한 영화 <오! 수정>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김을 당한 숫처녀)에서 이중관점 기법을 썼었다.
영화 <내 여자의 남자친구>는 한동안 그런 기법을 모방하는 것 같지만 대체로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선보이기 시작하는데, 새롭게 부차적인 이야기들과 인물들을 주요 줄거리에 통합시키고, 최대한으로 폭로효과를 증폭시킨다.
주요 장면은 반복적으로 보여지는데, 관계의 복잡미묘한 거미줄안으로 새로운 층위가 더해간다. 석호가 그의 영수(고혜성)라는 이름의 친한 친구이자 대학동기와 엮이면서 이야기가 출발된다.
식상하다고? 영화의 도발적인 플롯전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운좋게도 아무런 기대 없이 극장에 들어간 관람객들은 복잡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에 빨려 들어갈 것이다.
영수는 엄청 수줍음을 타고 심지어는 서툴러 보이기까지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눈은 지연에게 꽂힌다. 이미 그녀는 제멋대로 굴러먹는 카사노바인 석호에게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석호가 모르는 것은 가장 친한 친구가 아내와 사실상 잠자리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영수는 석호의 아내와의 불륜에 대해서는 그닥 흥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대신 영수는 자신이 정복하지 못한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바로 지연이라는 여자다. 그 사진가의 마음은 그렇다. 또다른 탐한다는 것의 형식-석호와 또다른 연인과의 관계 사이 어디에 놓여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많은 인물이 관여한 생생한 섹스 씬들이 복잡한 드라마에 상업적인 차원을 가미한다.
중요한 의문점은 복잡한 인간관계가 종국에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반복적이고 겹치는 장면들을 따라가는 수고로움이 표값의 가치가 있을 것인지에 있다. 첫 번째 의문에 관해서 대답하는 것은 영화의 흥을 깨고 나서야 가능하다. 그러나 두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대대적으로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놀라운 결론(갈채를 받아야 마땅한 명연기)이 흩어진 조각들을 제자리에 모아놓아 깔끔한 그림이 될 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불륜에 대한 계명을 신선하게 조명하기 때문이다.
양성진 글 (insight@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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