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이 당연한 커플....
게리(빈스 본)은 시카고를 누비는 관광 가이드 답게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마초 스타일의 남성이고, 브룩(제니퍼 애니스톤)은 갤러리의 유능한 큐레이터로 마구 들이대며 노골적으로 작업을 거는 게리의 스타일에 반해 연인이 된다. 영화는 이들이 어떻게 연인이 됐는지는 거의 생락한 채 바로 이들이 어떻게 갈라서게 되는지는 길고 세세하게 보여준다.
브룩은 게리의 화끈한 스타일이 맘에 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무심함과 연결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처음 이들의 불화가 시작되는 '레몬 12개 사건'을 보면, 게리는 먹거리로 사용될 레몬이라면 12개가 아니라 한 박스라도 사올 용의가 있지만, 단지 식탁을 장식하기 위해서라면 3개의 레몬도 아까울 뿐이다.
미술 갤러리의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고려하면 브룩이 12개의 레몬으로 장식될 식탁을 즐겁게 상상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해보인다. 따라서 게리가 단 3개의 레몬만 사오고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끝까지 우기는 모습에 실망하고 화가나는 것도 당연하다. 영화 전체적으로 게리는 단 한 번도 브룩에게 지는 꼴을 보이지 않는다. 말로 어떻게든 브룩을 몰아 붙이고선 자신이 정당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화끈하고 남성답다고 하면 보통 여성들은 이와는 반대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다. 즉, 일견 사소해보이고 자자분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화끈하게(!) 양보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실제 그런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지기 싫어 여성을 몰아 붙이고 그것이 남성 답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12개가 필요하다고 하면 12개 사다주면 될 일을...
어쨌든 브룩은 '레몬 12개 사건' 이후 과감하게 이별을 통보한다. 물론 브룩의 이별 통보는 게리에게 충격을 주자는 의도였지만, 게리는 자신이 받은 충격을 더 큰 충격으로 브룩에게 되돌려 주고자 한다. 둘의 감정싸움은 커져만 간다. 커다란 음악 소리를 틀어대고, 같은 집에서 살면서 특정 공간의 출입을 봉쇄하고, 자신이 원하는 당구대를 설치하고, 오빠의 폭행과 쇼걸들을 불러와 난잡한 파티까지...
이쯤되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미 짜증이 날 대로 난 상태다. 둘의 재결합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당장 헤어져야 마땅한 커플로 인식되어 진다. 물론 아무리 사이가 벌어졌어도 사귀던 사람과 완전히 그 관계를 끝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결단이 필요하며 망설임이라는 감정이 붙어오기 마련이지만(이 영화가 말하는 바도 이런 감정이라고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좀 심했다. 그게 동서양의 차이일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작업(?)과 험담을 한 뒤에 같이 콘서트를 가자며 미끼를 던져보는 브룩의 감정은 사실 잘 이해도 안 되고,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의 영화가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을 누르고 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는 게 잘 믿겨지지 않는다. 만약 제니퍼 애니스톤이 브래드 피트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영화를 촬영하면서 빈스 본과 새로운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그런 가십이 없었다고 해도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