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순간부터 주인공에 동화되기 시작했을까.
안락사를 인정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논쟁을 피하기 위해 감독이 섬세하게 포진해놓은 많은
뜀틀들을 하나하나 따라 넘으면서 언제부터 난 라몬 삼페드로가 좋아지기 시작했던걸까?
제길, 기억나지 않는다.
완전한 포로가 되었었다는 거로군.
영화를 보는 동안 내 눈동자를 누군가 지나가다 봤다면 웃겼겠어. 터진 계란처럼 풀어져있었을거야.
머리는 듬성듬성 빠지고, 피부는 이미 늙기 시작했고, 머리통도 크고, 손가락 마디들은 뒤틀려있는
그 사내의 무엇이
매력적으로 보였던걸까?
감독이 주인공을 고를때도 이런 생각을 했을것이다.
'그는 눈빛과 목소리뿐이다. 그것만으로 관객을 홀릴 수 있는 배우여야 한다.'(그랬을까??)
실제 실화속 주인공 남자는 침대에 누워 26년 세월을 보냈지만 여자가 일곱이었다던가....감독은 그렇게까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지(?) 여자를 둘로 대폭 줄이면서, 최소한 침대에 누운 채 두명의 여자는 만족시킬(?) 수 있는 남자를 찾았다. 그리고 성공.
하비에르 바뎀은 멋지게 라몬을 소화해낸다.
26년전, 젊은 청년의 모습과 침대에 누운 늙어가는 남자를 동시에 한 배우가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그의 눈빛은 조리개처럼 열리고, 닫힌다.
그의 눈이 웃으며 동시에 우는 연기를 했을 땐 누구나 대단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영화포스터를 첨 봤을땐 잘 생기지도 않은 배우 얼굴 하나 달랑, 보름달처럼 떴길래, 황당했었다...이제사 얘기지만....)
실화를 바탕으로했다고는 하지만, 감독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은 대단했다.
라몬과 그의 아버지, 라몬과 형, 라몬과 형수, 라몬과 조카는 각각 고유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들은 관계를 통해 서로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라몬의 꼼꼼함과 코믹함, 시적 감수성은 모두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감독은 어느 누구하나의 캐릭터도 실수로 죽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모든걸 받아들이는 덤덤한 사랑과, 형의 고집스런 사랑과, 형수의 나누는 사랑, 조카의 코믹한 사랑은 이야기 내내 깊이 스며들어 있다. 밖으로 오버해 튀어나오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버티고 있다.
라몬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라몬의 안락사 결정이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의 덤덤하면서도 강한 성격을 드러내주기 위해서.
라몬과 같은 전신마비 신부가 티비에 나와 "그는(라몬은) 사실 작은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것 뿐입니다. 죽으려하는게 아니라구요." 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라몬이 원하는건 그저,
"해가 지니까 이제 집에 돌아가야 겠어."다.
그가 욕심을 내는 건 사람들이 흔들어주는 손인사를 받으며 떠나고자 하는 것 정도다.
영화는,
힘겨운 삶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사람과, 살아있으므로 살아내는 나무같은 사람과,
새로운 탄생으로 인한 즐거움과, 죽지 못해 사는 사람과, 두려움으로 버티는 삶 등을 다양하게 살핀다. 그리고 라몬이 원하는 죽음도 그런 다양함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엄청난 무기와 같아서 모든 걸 잡아먹고, 결정지을 만큼 강하다.
그 앞에서 절대로 무너져선 안된다.
그것이 삶에 대한 결정이건, 죽음에 대한 결정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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