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윌 스미스(크리스 가드너 역)는 나레이션으로, 토머스 제퍼슨이 기록한 독립선언서에 대해
말을 하곤 한다. 독립 선언서 그 자체를 거론하기 보다는 그 안에 적혀있는 '행복 추구권'에 대하여.
영화 속 크리스는 말 그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자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 행복이란 울타리 안에는
'가족'이라는 전형적인 요소가 밀집되어 있지 않고 '크리스토퍼'라는 아들이 중심에 서있다.
아비 없는 아들을 만들고 싶지 않다, 가 가장 기본이 되어 아들을 사랑하는 부성애가 그것을 돈독히
쌓아올린 것 같다. 무슨일이 있어도 아들의 손을 놓지 않았던 그의 구리빛 손이 아주 크게 확대시 보였던 것도
그런 그의 부성애가 영화속 모든 곳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행복, 행복....
영화 초반에서는 'happiness'라는 말이 여러번 나온다. 부인인 린다는 더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이유로
집을 떠나고, 크리스는 아들인 크리스토퍼에게 넌 행복하지 않느냐고, 자신은 행복하다고. 한 편으로는
행복을 강요하는 듯도 보인다. 물론 영화속 놀이방에 적혀있는 'happyness'의 스펠링을 운운하기도 하며.
행복?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자의던 고의던,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붙잡고 버리지 않고 앞으로 질주한
한 사내가, 그런 노력으로하여금 행복을 얻어낸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주머니와 지갑이 빈털털이가 되어 말그대로 broken 해버린 그 상황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아들의 손을 붙들고 달려나간 결과가 바로 행복이라고.
아들을 위해 교회 빈민소의 방을 얻기 위해, 아들이 떨어뜨린 장난감 하나도 주워주지 못하도 달려나간 것이
행복이라고.
남들이 잘 때에, 아들을 위해 공부를 하고 기계를 고친 것이 행복이라고.
영화는 그렇게, 사소한 행복부터 눈에 보이는 큰 행복까지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갈 곳이 없어진 크리스가 아들 크릿토퍼를 화장실에 데려가 재우는 장면이 있다.
타이머신을 타고 과거로 왔다면서 공룡을 피해 동굴로 들어가자며 화장실에 아들을 데리고 들어온 크리스의
모습이 가장 슬퍼 보였지만... 크리스토퍼가 이제 안전한 거냐며 천진하게 웃을 때엔 난 그 아이의 얼굴에서
가장 큰 행복을 읽었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나의 행복을 일깨워 주는 작은 감동이 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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