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크에 오토리버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학생들이 가장 갖고 싶어 했던 전자기기는 워크맨과 카세트 데크였다. 특히 투데크에 오토리버스 기능이 추가된 카세트는 최신 제품 축에 속했다. 투데크가 음악 더빙을 위한 필수사항이었다면 오토리버스는 귀차니즘에 빠진 현대인들을 위한 혁신적 기능이었다.
플레이 단추가 '팅'하고 튕겨오르면 테이프를 뒤집어 줘야 했던 이전 제품과 달리, 오토리버스 기능이 장착된 카세트는 '달그락'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으로 B면을 틀어주었기 때문이다. 처음 오토리버스 기능을 갖춘 카세트를 갖게 되었을 때의 환희란. 나는 그때 현대과학의 승리를 외쳤다.
영화 '라디오스타'는 '투데크'적인 영화다. 지금은 잘 듣지 않는 아련한 추억같은 '라디오'라는 매체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화려했던 88년 가수왕의 남루한 현실이, 뿔테 안경에 멜빵바지를 입고 '오빠'를 외쳤던 팬클럽 회장의 비루한 일상이 '과거'라는 집합적 기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옛 모습을 잃지 않은 '영월'이라는 공간에서, '밴드'를 논하고 '가수왕' 운운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투데크'적 특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 그리고 영화가 들려주는 노래 하나하나를 더빙해놓고 싶은 내 마음이 '투데크'적인 것일 게다. 친구의 음악 테이프를 빌려 듣다 너무 좋아 공테이프를 사러 문방구에 나가는 마음처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한 믹스 테이프를 짝사랑하던 여자친구에게 건네는 마음처럼 말이다.
나는 그 때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라디오'와 '수학의 정석'과 '제도샤프'로 새벽을 밝혔던 그날의 밤들을 나는 잊지 못한다. 돌아보면, 그 시절은 '가요'의 단출한 코드처럼, '방화'의 단순한 플롯처럼 기교가 없고 투박해서 더 아름답고 정겨웠다. 인생의 끊임없는 오토리버스. 부침과, 행복과 불행이 부단히 교차하는 말 많고 일 많은 요즘의 내 삶에 비추면 그 때 그 시절은 이 영화 '라디오스타'처럼 언제나 가슴 한 켠에 더빙해 두고픈 추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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