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영화를 보러 들어갈 때 난 이정재가 흑수선인줄 알았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안성기가 출소하는 첫 장면에서도... 이정재는 젊은시절의 안성기로 나오겠거니 생각했다... 이정재가 형사로 나올 때도 1인 2역을 기대했다... 나는 원작도 몰랐다... 이미연이 흑수선인 걸 안 건... 이미연의 나레이션을 통해 스스로 고백한 자신의 정체...그걸로 알게 됐다.
영화이건 어떤 예술 작품이건... 상업작품이건... 제목이 주는 의미는 크다 그런데 흑수선은 눈물 많은 여인, 수선화 같은 여인이었다... 나는 6.25 당시 첩보원으로 활약하던 흑수선의 변화무쌍한 활약상을 기대했는데... 여명의 눈동자의 채시라나 최재성처럼 말이다...
긴장감을 줄 수 있는 부분을 대사로 늘어뜨려버린 건 각본상의 최대실수다 회상씬이 줄 수 있는 위험성의 상당부분을 이 영화는 그대로 안고 끝까지 가지고 갔다.
이영화는 멜로였다. 멜로로선 성공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멜로적 접근과 액션을 부각시키는 부분이 아주 어색해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안성기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애틋함이나 이미연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사랑의 여운이나 역사의 아픔을 느끼고 갈등해야 할 이정재의 현실이 너무나 평범하게 드러나 버렸다.
우리의 슬픈 역사에 대한 감독의 감상적 접근(배창호 감독의 최근 영화는 '정'이었다.)이 영화적으로 살아날 수 있는 모든 매력을 죽여버렸다.
이것을 졸작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영상이나 화면처리, 거제도 수용소의 고증... 이런 부분들은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상미학을 스토리로 끌어가는 힘이 부족해 보인다. 감독이 힘을 뺐다면... 각색을 전문 시나리오작가에게 맡기거나 함께 공동작업을 했다면... (JSA에서 우리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또하나의 수작이 우리 가슴에 새겨질 수 있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