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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잔혹사 노리코의 식탁
kharismania 2007-01-31 오전 1:21:59 826   [3]
가족(家族). 우리가 믿는 그 안락한 울타리는 과연 진실일까 혹은 우리가 믿고자 하는 하나의 환상일까. 사실 그 따뜻하고 아름다운 환경에 질타를 가한다는 것은 마치 우리가 아름답게 떠받들어야 하는 신화적 가치를 감히 훼손하려한다는 혐의가 될 수도 있다. 가족의 기능이라는 것은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적 가르침에 따르면 사회화를 위한 첫 단계이며 사회적 구성원으로써의 원활한 기여를 위한 안식처 기능이라 명시되어 있다. 물론 또박또박한 규범적 질서로 정의되지 않아도 우리는 가정이라는 환경이 얼마나 자신에게 중요한것인가를 누구나 인지한다.

 

 하지만 과연 그 당연해야 할 사실과 현상은 일치할까? 우리가 의심하지 않는 그 것들을. 가정이라는 신성한 가치를. 이영화는 마치 그 누구도 두들기고 싶어하지 않은 가족이라는 껍데기를 뜯어내고 그 속을 파헤친다. 과연 우리가 믿는 그 가정안은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 어쨰서 우리는 그 믿음에 안주할 수 없는 것인가.

 

 '당신은 당신과 관계하고 있습니까? 당신과 당신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극에서 반복되는 이 질문은 마치 궤변과도 같은 불쾌함을 동반하는 질문이다.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자신과 자신의 관계. 이는 마치 부적절한 비교군을 세운 오류적 논법이 아닌가라는 불만을 제기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말장난같은 질문은 끔찍한 사고의 밑바닥까지 잠겨있는 영화의 태생적 이유이자 영화를 통해 반복순환되는 질시적 주제이기도 하다. 

 

 나와 나의 관계. 이 질문이 불쾌한 첫번째 이유는 일단 그 질문을 받아들이는 우리, 즉 관객 자신에게 있다. 그 질문의 오묘함을 뒤로 하고 그 질문의 직역을 받아들이면 결국 당신과 당신의 관계, 즉 나와 나의 관계가 무엇이냐라는 물음은 당신 자신의 진정성을 잘 알고 있냐는 물음과도 같은 것이 된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진리적 정언 명령처럼 훈계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는 이 질문은 자신 스스로의 내면과 무관하게 현실안에서 안주하듯 살아가는 우리의 솔직한 군상을 자극한다.

 

 두번째. 결국 그 자극적 질문이 뻗어나가는 종착역은 스스로에 대한 자문과 그 자문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라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현실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문제들 덕분이기도 한데 본질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건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현실이라는 외양적 가치에 길들여지고 그것을 숭상할 수 밖에 없는 스스로의 나약함 덕분이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근원적 욕구를 침식시키고 사회적인 혹은 타자와의 관계적 소통에서 만족스러울만한 욕구를 받아들인다. 결국 자신이 타인과 소통하고 있는 자신은 자신이 아니며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은 결국 드러날 수 없는 덧없음을 스스로만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소통속에서 자신은 적당히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반문을 제기한다면 그 만족 역시 본질적인 자신에 대한 만족인가라는 또 다른 반문을 제기하고자 함이다. 결국 순수한 자기 자신의 본질안에서 자신은 만족할만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앞에서 어느 누구도 발가벗겨진 수치감을 얻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마지막 세번째, 그 앞의 두가지 경우를 논외로 친다고 해도 어쩄든 그것이 이루어지는 첫번째 필터적 역할을 가정이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를 통해 사회화를 겪는 자식의 팔할은 대부분 부모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팔할의 자식들은 자신과 무관하게 꿈을 짊어지거나 장래희망에 종속된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고 쉽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해도 결코 그것은 자신 스스로에게 어떤 거리낌없이 당당한 선택이었다고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가정이라는 하나의 집단이 형성하는 전체주의적 알력 양상은 사회로 뻗어가고 그 구성원간의 권력게임으로 빚어지기도 한다. 결국 가정이라는 곳이 행하는 사회화는 일종의 세뇌로도 이해될 수 있는 것이고 그 세뇌과정은 본질적인 자신보다는 타성적인 자아를 양산해내는 하나의 장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가족이라는 신화는 사실 어찌보면 구성원간의 알력싸움과도 같다. 전작 '자살클럽'과 '기묘한 서커스'를 통해 기괴한 도발을 꾀하던 소노 시온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비로소 진지하게 논증을 시작한다.

 

 가족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맡고 행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 혹은 딸이라고 불리는 자식들까지. 아버지는 돈을 벌고 어머니는 살림을 하며 아이들은 그 아래서 자라난다. 마치 하나의 규칙같은 이 사실은 인류가 문명이라는 하나의 기반위에 서기 시작한 이래로부터 지지되고 있는 인본적 공식에 가깝다. 결국 가족이라는 것은 낳음과 받음의 뼈대로 이뤄지는 앙상한 집단인 셈이다. 그 위에 갖가지 의미가 살을 발라 가족이라는 영역이 부풀어오르는 것이다.

 

 노리코(후카이시 카즈에 역)는 자신의 현실을 견뎌내지 못하는 고등학생이다. 그녀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나 얼마전 도쿄로 진학했다가 임신해서 돌아온 조카들의 사례를 들며 그녀의 아버지 테츠오(미츠이시 켄 역)는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도쿄로 가출하고 자신이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페허닷컴'의 정신적 지주인 우에노역 54의 가명을 쓰던 쿠미코(츠쿠미 역)와 만나게 된다.

 

 영화는 총 5장으로 나누어진다. 4장까지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각각의 인물이 장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사건의 화자역할을 하며 마치 하나의 극을 인물의 시점에 따라 나눠배열함으로써 4각형과 같은 이야기의 구도적 틀을 형성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5장을 통해 그 4각 구도의 위 아래에 면을 형성함으로써 마치 육면각체의 부피를 형성하는 듯하다. 그 개별적인 플롯의 흐름은 하나의 입체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그것은 결국 하나의 도형같은 이야기를 완성한다.

 

 노리코. 유카(요시타카 유리코 역). 쿠미코. 테츠오. 주머니속의 칼. 이렇게 총5장의 경계를 지닌 이야기는 4장까지 나누어지던 이야기의 흐름이 마지막 장에서 하나의 교점을 형성하며 모여든다.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그 장들은 각각 제목으로 명명된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시선 그 자체이며 심리 그 자체이다.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은 차례차례 서사적 흐름에 따라 시간의 한부분을 자신의 중심으로 옮겨가며 바톤터치하듯 극의 전개를 전이시킨다.

 

 극의 발단을 만드는 것은 노리코다. 그녀의 가출은 모든 이야기의 생성 지점이 된다. 스스로 도쿄의 역에서 자신의 소매 실밥을 뜯으며 그것이 자신의 새로운 자아인 미츠코의 탯줄이라 했듯 그녀의 가출은 그 평온했던-평온한 척했던-가정의 한 귀퉁이를 헐어내며 그 안위적인 집단의 해체를 꾀한다. 그 해체의 증폭을 부르는 것은 유카이다. 그녀는 누나의 가출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의 울타리인 가정에 대한 고뇌를 끌어안는다. 그녀는 누나의 단서를 좇아가며 한편의 글을 쓰게 되는데 그녀의 글은 자신의 누나가 집을 떠나야헀던 이유가 결국 아버지에게 있었음을 인지한다. 노리코가 단지 자신의 개인적 욕망에서 가정으로부터의 일탈을 꾀했다면 유카는 그 일탈을 통해 개인의 각성을 맞이한다. 그래서 그녀는 유카라는 이름을 떠나 요코가 되어 가정의 붕괴를 도모하고 혼란을 야기한다. 노리코가 미츠코가 되고 유카가 요코가 되는 것은 자신의 근원을 버리는 행위적 상징으로 가정에서의 일탈과 함께 렌탈 가족이라는 대체 행위의 근간이 된다.

 

 그 근간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은 쿠미코인데 그녀는 우에노 역 54번 캐비넷에 버려진 태아시절의 정념을 현실로 끌어낸다. 그녀는 마치 '몬스터'의 요한을 연상시킬 정도로 포커페이스적인 사악함을 지녔고 '링'의 사다코와 같이 자신의 원한같은 정념을 기반으로 자신과 무관한 타인들에게 복수를 행한다. 오노 시온의 전작 '자살 클럽'에서 여고생 54명의 신주쿠 지하철 자살사건이 그 정념의 카니발의 한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그녀의 가족 렌탈 사업은 단순히 현상적으로 보자면 마치 현실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행위같지만 실은 그것은 현실의 결핍된 진정성에 대한 조롱에 가까운 행위다. 그녀의 렌탈사업은 일종의 복수에 가깝다. 자신을 버린 친모에 대한 원한은 세상에 존재하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유대감에 대한 조소로 발전하고 이는 결국 그 공동체의 허세같은 존재를 해체시키고 본질이 없는 빈 껍데기같은 렌탈 가족을 옹립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껍데기의 욕망을 원하는 결핍된 이들에게 마음껏 은총을 내린다.

 

 테츠오는 유카가 남긴 글을 읽는다. 그는 그리고 비로소 개안(開眼)하듯 현상을 살핀다. 무심코 믿고 있던 것들이 이토록 붕괴의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얻고 그 붕괴의 중심에 자신이 서있었다는 사실에 머리를 쥐어뜯는다. 물론 그의 말대로 자신의 모습이 유카의 시뮬레이션과 일치하진 않지만 자신이 몰랐던 현상에 대한 분별력이 자신보다 어린 딸에게 있었다는 것에 더 큰 충격을 얻는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지만 추후에 그것은 또다른 원망으로 와전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구성원에서 상위에 서 있는 아버지로써의 존립적 욕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족이라는 형태의 겸애인가 혹은 이기인가. 어쨌든 그는 신문기자로써의 감각을 살리며 딸들의 뒤를 좇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그 와중에 아내는 떨어져나갔고 직장도 관두었다. 그는 여고생 54명의 신주쿠 역 변사와 자신의 딸이 연관이 있음을 직감하고 딸이 남긴 노트를 따라 그녀를 추적한다. 자살 클럽. 그렇다. 자살클럽이다라고 그는 믿는다. 그리고 그가 확신한 그곳에서 만난 그 부류의 남자는 그에게 말한다. 자살클럽따위는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과 관계하고 있습니까?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원형의 미로를 그리며 파국적 그로테스크를 새겨나간다.

 

 가족이라는 근엄함에 도전하는 이 영화는 그 신화의 폐부를 구석구석 드러낸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유지하고 양보하는 것들은 사실 그 전체적인 형태보존을 위한 개개인의 희생들로 이루어지는 잔혹한 피의 역사와도 같다. 그래도 우린 가족이잖아라는 말은 위안이 되는 듯 하지만 지독한 속박의 강압과도 같다. 영화는 그 외면되는 지점을 지독할 정도로 극악하게 찍어내고 외부로 내팽개친채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이 파헤치는 지점은 가정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그것은 그 안에 있는 개개인에 대한 각성의 요구다. 결국은 당신은 당신과 관계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끊임없는 구간반복의 형태변형인 셈이다. 그 안정된 공간에서 안주하고 있는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질시. 자신 스스로가 자신이라 믿고 있는 자아의 망각 현상에 대한 질타.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는 해체된 가족이 재구성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그 그로테스크한 현상은 오히려 웃음의 홍조를 띠고 있지만 실로 끔찍하다. 계약관계와도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진실을 드러내고 자신이 원하던 가족간의 관계를 유지한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통해 과연 무엇을 지켜가고 있는가라는 물음과도 맞닿는다. 결국 우리가 지켜가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부정하고자 하는 이면에 대한 공동의 은폐가 아닌가.

 

 물론 이 영화는 모든 상황을 극단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가정이 실제로 이토록 극악한 사고관으로 채워져있는 공간만은 아닐것이다.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은 그 기괴한 상상력이 지향하는 것은 결코 가정의 해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해체가 결과적으로 재구성된 경유는 바로 그 이유이다. 몸통을 훤히 드러낸 그 가정사는 껍데기만 남은 것이 아니라 껍데기를 버렸다. 보호막과도 같던 위선과 질서의 강압을 벗어던진 채 다시 한번 가족이라는 형태로 결합한 그들은 완전치는 못해도 예전처럼 위태로움을 감추지 않는다. 노리코의 대사처럼 예전에는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가족이 내다버린 부질없는 욕망의 빈자리에 세울 수 있는 진정성이다. 사자가 아닌 토끼가 될 수 없냐는 유카의 울부짖음은 그 가족의 행복이 구성원 일부를 먹이삼아 자라고 있음을 인증하는 인정과도 같다. 그것은 노리코와 데츠오의 대립이 빚어낸 가정의 파국이 어느 지점에서 어긋난 것인가를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가족이라는 것도 태생이 지닌 긍정적 환타지를 벗겨내면 개개인의 집단일 뿐이고 그 집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역할수행이 적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에서 가정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안에서도 개인화되어가는 사회적 풍토안에서도 모호해지고 허약해지는 가족의 유대감은 존속을 강요받기보다는 다른 차원의 구심점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각자 토끼가 되어줄 수 있겠는가의 형평성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사자가 되어야만 하겠는가의 욕구적 발현의 장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그것은 가족이라는 허세적 탈을 벗겨낸 뒤의 문제다. 그 허세를 뒤집어 쓴 각자의 관계. 결국 당신은 당신과 관계라고 있는가의 물음은 세부적으로는 그 가족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물음이자 동시에 가족이라는 형태 그 자체의 관계적 물음인 셈이다.

 

 유코가 되었던 유카는 무명(無名)을 택하고 그 어딘가로 다시 떠난다. 노리코는 그런 동생을 조용히 배웅한다. 그리고 쿠미코는 그 안에 머무른다. 결국 그것은 가족이라는 안위적 구성이 결코 영원할 수 없으며 그 끝에서 남는 것은 개개인의 자신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이 가족을 져버리는 잔혹한 행위라기 보다는 개인이라는 하나의 존재가치를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모종의 은유체계일 따름이다. 동시에 그 안에 남겨지는 것 역시 본인의 선택인 셈이다. 그 체계의 보존은 걍요가 아닌 선택이다. 그것이 이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관계의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인정해야 할 부분은 그것이다. 가족이라는 형태, 즉 하나의 굴레 안에서 개인 자신에 대한 탐구의 끈을 버리지 말 것. 개인화되어 가는 사회안에서 자신의 껍데기같은 이기심만을 개인화시키지 말고 본질적인 자아의 각성을 옹립할 것. 그것은 반항적 눈빛이 아닌 성장의 자각이다. 당신과 당신의 관계는 결국 그런것이다. 그것은 결국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소통이며 확실한 정답인 셈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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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코의 식탁(2005, Noriko's Dinner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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