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왜 꼭 강요해야 할까...
동생 소이의 생일 선물로 리트리버 강아지를 훔쳐온 찬이. 아마도 찬이가 강아지를 훔친 이유는 생일선물 겸 자신이 지고 있는 동생의 양육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했기 때문일 것인데, 아마 실제였다면 부담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개, 그것도 리트리버 같이 장난끼 많고, 털 많이 빠지는 중형견을 키운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새로 가족이 된 '마음이'는 어머니가 떠나간 공간을 채워 나간다. 소이에게 벌어진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영화는 두 아이와 마음이가 열어가는 힘들지만 단란한 삶을 비춰준다. 특히 정류장에서 오빠를 기다리던 소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마음이의 귀를 열어 놓는 장면 등은 저절로 웃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정말 괜찮았던 전반부를 지나 빙판에서 소이가 사고를 당하고 난 이후, 후반부 전개가 가족영화라는 레테르 치고는 꽤 거칠고 폭력적으로 전환된다. 기본적으로 굳이 마음이에게 소이의 사고에 대한 원죄 의식과 상처를 안겨주고, 동물이 주인공인 아이들이 보는 가족영화에서 죽음, 그것도 자연스럽지 않은 죽음(세번에 걸친)을 반복해 보여줘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감동적이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감동을 강요하는 태도로 인해 오히려 감동이 자제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평소 찬이의 행동을 고려해 볼 때 찬이가 앵벌이 조직에 합류하게 되는 것 자체가 그다지 이해되는 정서는 아니었는데, 더군다나 앵벌이 두목의 찬이에 대한 무분별한 적개심은 정말 납득하기 힘들었다. 마음이에 대한 과도한 폭력 행사와 파출소에까지 숨어 들어가 찬이를 데리고 나올 만큼의 적개심이란...
작년 한 해, 말을 주인공으로 한 '각설탕'과 개를 주인공으로 한 '마음이'가 나오면서 한국에도 동물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본격 시도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진 모르겠지만, 처음 시도되는 두 편의 동물영화가 모두 죽음을 중심으로 감동을 주려했다는 점은 한국 영화계 정서의 일단을 보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두 편 모두 죽음을 내세워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감동을 주기 위해 꼭 극단을 치달아야 하는 것인지...
어쨌거나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들었다.(찬이가 마음이에게 소이 보고 싶으면 소이에게 가라고 하는 대목에서.... 흑흑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