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이후 리얼리티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감독, 멜 깁슨이 이번에는 잃어버린 마야 문명의 몰락을 다룬 영화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기 전에는 북미지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영화라는 것, 마야 문명의 몰락을 다룬 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시놉시스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더군다나 스페인의 침략사가 러닝타임 절반 정도를 차지하겠거니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 12월31일 <에라곤> 시사회 전 <아포칼립토>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엔 상상했던 스페인 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화면 가득 겨울을 무색케 하는 후끈한 녹색 열기가 몸으로 다가오는 밀림의 장엄함과 반라의 마야인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무슨 예고편이 저렇게 무거워? 이 영화 별 거 있겠나?'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에라곤>을 관람했었다. 하지만, 올해 1월8일 CGV명동에서 <아포칼립토>를 보면서 나의 선입견이 전적으로 틀렸음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화술(話術)에는 다음과 같은 법칙이 존재한다 - 연설이나 스피킹을 시작할 때 처음 5분 동안 청중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청중의 몰입, 집중도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기에 그 연설은 이미 물건너간 스피킹이 되고 만다. 이에, 처음 5분 안에 반드시 쇼킹하거나 재미난 예제를 활용하여 청중을 사로잡으라는 법칙이 80년대 말부터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법칙은 비단 연설이나 스피킹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의 법칙으로도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적용되고 있다. 즉, 관객의 몰입도를 배가시키기 위해 첫 상영시작 5분 동안 강렬하거나, 굉장히 스피디하거나, 충격적인 화면으로 관객에게 각인시키라는 법칙이 영화에서도 적용되고 있는데, <아포칼립토> 역시 이 공식에 충실하다. 처음 장면은 아메리카에서 서식하는 동물 '맥'을 사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덫으로 유인하여 사냥하는 모습은 CG로 표현했지만 쇼킹한 리얼리즘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 장면은 앞으로 보게 될 잔혹 리얼리즘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멜 깁슨 본인이 액션영화를 많이 찍었기에, 그 감각을 살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아드레날린이 뿜어져나오는 스크린의 세계로 관객을 거세게 몰고 간다. 영화 중반부 이후 관객들로 하여금 이목을 다른 곳에 낭비하지 못하도록 만든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추격전은 이 영화를 보면서 긴박감 넘치는 액션을 즐기기에 바쁘게끔, 숨 쉴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나무 위에 은신해있는 주인공의 피 한 방울이 추격자 Middle Eye의 어깨 위로 떨어지는 긴박한 장면 - 흑표범의 추격 - 폭포로의 투신 - 아기 출산 - 주인공이 종영 10분 전 Middle Eye와 결투하는 장면 등, 긴박감을 팽팽하게 조성하기 위해 잘 짜여진 기폭제는 이 영화 러닝타임 1시간 30분 이후 이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만일 이 영화가 리얼리즘에만 충실하고 이 영화의 후반부와 같은 액션의 오락성을 배제했더라면, 이 영화는 고증은 재현해내겠지만 재미는 반감된 다큐멘터리로 자리매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멜 깁슨 감독이 헐리우드의 상업적 감각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리고 새디스트적 리얼리즘에 충실한 이 영화는 예전 <매드 맥스>,<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보여준 감각을 고대 마야인의 세계에 충실하게 투영하고 있다. 세계사에서 말로만 들어왔던 인신공희(人身供犧)장면을 직접 목도하노라면, 잘못된 마케팅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뤘던 <판의 미로>의 잔인함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울 지경이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인류학적으로 재현된 스너프 필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가지 예만 들어보겠다. 이 단락 첫 부분에서 새디스트적 리얼리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 혹시 영화 러닝타임 한 시간 이후 인신공희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의 심장이 적출되고 목과 몸이 분리된 이후, 화면이 심하게 상하좌우로 흔들림을 느꼈는가? 이는 희생자의 머리가 잘려진 후 몸에서 굴러떨어지는 희생자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촬영기법이다. 목만 남은 희생자의 시각을 관객이 화면으로 바라볼 때, 희생자의 끔찍한 공포가 앉아있는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되도록 계산된 촬영이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묘사되지 않아서 다행인 점은 - 마야인의 자해 공양이 전혀 나타나질 않는다는 점이다: 자해 공양은 상처를 내어 자신의 피를 뽑아 공양하는 풍습이다.
사멸된 고대 문명의 충실한 재현을 알리는 장치로는 잔혹 리얼리즘 추구만이 아니다. 마야인의 당시 언어를 살려낸 것은 멜 깁슨의 영화제작 철학을 관조할 수 있는 장치인데, 사멸된 고대 문화를 재현함에 있어 화면만 재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혼과 정신적 문화를 관객이 배우로부터 한껏 느끼게 만드는 고대 마야어의 재현은 감독인 자신과 배우들에게는 고역이었겠지만, 고대어를 고집하는 멜 깁슨의 리얼리즘 추구 철학은 영어권 관객들에게뿐 만 아니라 비영어권 관객들에게 객관화된 리얼리즘 탐닉을 풍성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고대 마야를 스크린 상으로 재현한 영화 가운데 고증에 충실하다는 점은 이 영화의 액션 못지 않게 중요한 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Fugitive>와 같은, 추격 액션이라는 흥겨움을 거세하면 숨겨진, 의도된 장치를 볼 수 있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질문과도 유사한데, 고대 마야 문명의 몰락의 원인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는 질문이다. 우선 이 영화의 맨 처음 부분을 살펴보자.
"위대한 문명은 외부에 의해 정복 당하기 전에 내부로부터 붕괴되었다."
서구 사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시작하는 이 영화는, 이 영화가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함으로 이 영화의 존재 사실을 알면서 필자가 상상하게 만들었던 스페인 침략사에 관해서는 언급이 극도로 자제되어 있다. 스페인 군은 영화 마지막에 스페인 범선에서 보트로 상륙을 시도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지, 스페인 군의 마야 침략과정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스페인 군의 상륙으로 미루어 볼 때 영화 속 시기를 대략 1519년에서 24년 사이로 어림짐작 가능하게 만든다.
내부적 잠식요인에 의해 마야 문명이 붕괴되었을까? 아니면 스페인 군의 외세 침략에 의해 멸망 당했는가? 하는 질문을 관객들이 제기할 때 이 영화는 후자로 정의내림을 회피하고 만다.
마야 문명의 내부적 붕괴 원인을 영화 속에서 찾아본다면 다음과 같은 가능성이 제기된다.
(1) 가뭄으로 인한 흉작으로 인신공희를 펼치는 장면에서 마야의 식량부족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2) 영화 중반부에 인간 사냥꾼들이 포로들을 데려오는 여정 중, 홀로 남은 여자아이가 예언을 하는 장면이 있다. 병에 걸린 여자아이인데, 스페인 침략자가 상륙하는 시기로 살펴보면 이 여자아이가 앓은 병은 천연두로도 짐작 가능케 만든다. 천연두는 아메리카엔 없던 질병으로, 북미 인디언 뿐 아니라 마야인들에게도 항체가 없었기에 마야인에겐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3) 이 영화 중반부까지 펼쳐지는 장면(마을을 습격하여 남자들을 포로로 데려오는 장면)을 이해하려면 고대 마야 풍습을 이해해야 한다 - 소치야오틀이라고 불리는 '꽃의 전쟁'인데, 이는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일으키는 전쟁이 아니라 인간 제물을 확보할 목적으로 벌이는 전쟁이다. 꽃의 전쟁은 피지배민에게 반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여 지배민과 피지배민과의 갈등이 야기되었다.
이러한 내부적 요인에 의해 화려했던 고대 마야 문명이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장치가 바로 영화 맨 처음에 제시되는 서구 사학자의 인용문이다. 하지만 후자의 관점, 다시말해 스페인 외세의 침략으로 멸망당했을 사실에 대해서 이 영화는 아쉽게도 영화 후반부의 마지막 2분으로 희석하고 만다. 물론, 이 영화 마지막의 스페인 군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마을을 짓밟은 지배문명의 준엄한 심판자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 마야 문명의 멸망이 내부로부터 기인했음을 영화 초반의 인용문을 통해 관객들에게 역하지각(Subliminal Perception)으로 제시하는 반면, 외부 침략으로 멸망당한 사실에 대해서는 마지막 2분의 생략어법으로 회피하고 마는 영화이다.
PS. - 이 영화 주인공의 이름은 Jaguar Paw인데, 주인공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마야 문명권에서 최고의 제물은 재규어였는데, 신의 위력이 구현된 동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영화 속에서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 주인공의 복부 관통상은 폭포에서 투신한 뒤 육지로 올라왔을 때에는 상처가 보이지 않는, 옥의 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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