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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찬란한 역사의 무상함 황후화
kharismania 2007-01-12 오후 9:43:36 3376   [5]
대륙의 역사는 광활하다. 특히나 4대문명의 발상지인 황하를 머금은 중국 대륙의 역사는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근원을 잃지 않고 유구한 스펙타클을 이어오고 있다. 황제가 바뀌고 국호가 바뀌어도 그것은 중국의 역사라는 갈래안에서 해석되고 계승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 광활한 스케일을 머금은 그들의 역사는 확실히 그 넓은 영토만큼이나 거대한 구조물처럼 묘사되어야 마땅할 것도 같다.

 

 '영웅', '연인'을 통해 중국산 블록버스터 무협물을 만들어오던 장이모우 감독의 신작은 그 이전 작품들의 스케일조차도 무색하게 만들만한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당나라 말기의 황실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시대를 병풍처럼 배치하며 역사보다는 황실이라는 존엄한 위치에 선 가족의 복잡한 관계도를 그려내고 황실의 품위로 은폐한채 위태롭게 유지하던 그 복잡한 관계도가 급작스럽게 붕괴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끌어낸다.

 

 마치 온통 금칠이라도 한듯 럭셔리하게 광을 내는 영상의 화려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입을 벌어지게 한다. 거대한 황궁은 그야말로 호화로움 그 자체이며 건물의 외부부터 내부까지 심지어 작은 기물들과 장신구까지도 화려하고 찬란한 색감으로 무장한 자태는 가히 대륙의 거대한 위용을 과시하는 것만 같다. 찬란했던 과거 왕조의 거대한 역사를 화려한 위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인 방법론. 웅장하면서도 디테일한 그 미장센은 거대한 황궁의 몸집부터 가느다란 비녀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지 그 스케일적인 면보다도 관객을 자극하는 것은 극 중 등장하는 인물들간의 뒤얽힌 관계로부터 빚어지는 심리적 알고리즘이다. 영화는 충효예의(忠孝禮義)라는 군자적 명제를 바탕으로 그들의 표면적인 정의를 전시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들이 보여주는 모순적인 관계의 맞물림은 그것을 와전한다. 장이모우 감독이 최근 몇년사이 자본을 끌여들어 만든 거대한 무협물들, '영웅'과 '연인'은 절대군주가 존재하는 중국의 과거왕조가 존재하는 역사를 배경으로 그 스펙타클한 현실에 존재하는 허구적인 개개인의 관계도를 그린다. 그리고 그 관계도는 항상 뒤틀려있거나 길이 막혀있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인물들은 서로간에 뒤틀린 관계안에서 갈등을 빚고 그 행위는 결국 막힌 길로 내달리는 부질없는 질주극이 된다.

 

 이 작품은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미로같은 인물간의 개연성을 만들어낸다. 옛 연인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처인 황후에게 원한을 지닌 황제(주윤발 역)나 자신을 해하는 황제의 의도를 동시에 증오하며 묘종의 선택을 하는 황후(공리 역). 그리고 그 두사람의 주변에 있는 세명의 왕자들은 각각 친모와 계모의 관계로 인해 얽히는 모종의 관계도를 그리며 실타래처럼 얽혀있지만 그 관계가 명확한 묘한 인물간의 구도를 형성해낸다.

 

 점차 그 관계가 뒤엉켜가면서 이야기가 점점 고조되어가는 과정은 중반 이후로 치달으며 본격적인 클라이막스를 형성한다, 물론 그 뒤얽힌 가족사로부터 암묵적으로 예상되는 갈등구조의 파괴 공작은 예정대로 실행된다. 그리고 왕자의 난-근원적인 이유는 다르지만-이라고 명명되도 좋을 법한 예정된 절정외에 갑작스럽게 더해지는 복병같은 사건은 그 예정된 절정을 도식화시키지 않는 하나의 방편이자 그 비극성의 색채를 가중시키는 광기어린 장치로 작용한다. 갑작스럽게 드러나는 궁내의 사건과 예정되었던 궁외의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며 복잡하게 번져가는 결과적인 사건들로부터 관객은 언젠가 맞이할 것이라 예상했던 갈등의 분출을 시각적인 경이로움과 함께 도발적인 행위의 충격으로 모색하게 된다.

 

 또한 인물들의 갈등구조가 점점 그 폭을 넓혀가는 과정도 이야기를 입체적인 구조로 승화시킨다. 황제와 황후로부터 기인된 갈등의 구조가 왕자들에게 계승되며 첫쨰 원성왕자(리만 역)는 그 갈등을 심화시키고 둘쨰 원걸왕자(주걸륜 역)는 갈등구조에 구체적인 행위를 낳으며 셋쨰 원상왕자(리우예 역)는 그 구조에 변수적인 가학적 충격으로 작용한다.

 

 재미있는 것은 캐릭터간의 연관관계와 그 연관관계를 통해 보여지는 상황의 변화인데 극에서 황제를 통해 강조되는 충효예의는 그 가족의 기능이 붕괴되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황후와 첫쨰왕자의 연분적 관계나 -물론 이는 근친상간이라 할 수 없다. 그들은 친모와 친자관계가 아니니까.- 황후와 황제의 갈등구조, 그를 통한 대립적 파국 국면, 그리고 그에 맞물리는 둘째 왕자의 가세. 이 어지러운 관계도는 이미 그들이 숭상하는 가치가 내면적으로 무너졌음에도 외면적인 품위와 허세로 유지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그 충효예의의 일부가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기도 하는데 둘쨰왕자는 충을 버림으로써 모에 대한 효를 완성한다.   

 

 무엇보다도 후반부에서 보여지는 전투씬은 이 영화의 최고 절경에 해당하는 비쥬얼적 쾌감인데 금빛갑옷으로 몸을 두른 반란군과 회색갑주로 그를 물리치는 황군의 대결씬은 반지의 제왕이 보여주는 스펙타클의 동양적 변주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웅장하고 경이롭다. 그 색채의 대비도 그렇고 그 거대할법한 전투가 결정지어가는 경악적인 책술의 결과물도 마찬가지다. 그 광대한 스케일을 화려한 색채의 향연으로 채운 영화의 미술적 감각은 장이모우 감독의 전작들이 보여주었던 서정적인 시각효과보다 한차원 더 나아간 모양새다. 눈이 부실정도로 빛나는 금빛 인해전술은 한덩어리가 되어 역동적인 효과를 빚어내며 그 화려한 물결이 나약하게 핏빛으로 점철되어가는 과정은 가학적인 비통함을 느끼게 한다.

 

 화려한 금빛갑주가 피로 물들고 생(生)의 표식이던 수놓은 국화가 사(死)의 표식으로 역전되며 영화는 그 첨예하던 가족사의 수난을 마감한다. 다섯의 인원으로도 벅차게 넓던 단상의 식탁은 셋으로 줄고 종래에는 둘로 남는다. -물론 그 끝에 남은 건 하나일 것이다.- 이는 사실 상징적인 묘사인데 황실 말기의 모습을 황실 가족의 몰락 과정을 통해 다른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다. 난세의 세상을 통해 말기의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 난세의 위에 서 있는 황제의 주변부가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거대한 역사의 종말을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것과 같다.

 

 어쨌든 그 광활한 스케일이 담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은 하나의 권력안에서 흔들렸던 무상한 과거사의 비극적 결과물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황실의 집안 싸움은 중양절의 금빛 축제를 핏빛으로 물들이며 금빛으로 치장한 시체들로 궁을 메운다. 결국 역사안에서 빚어지는 거대한 담론같은 전쟁은 그 당사자들과 무관한 시체더미의 희생을 쌓는다. 결국 그것은 권력의 내부에 서 있는 자의 무심한 정언 명령에 대한 원성이라기 보다는 권력을 쥐지 못한 자들이 받들어야 했던 숙명같은 희생에 대한 또다른 고찰이 될 법도 하다. 이는 최근 수성(守城)을 통해 민심을 구하려던 묵공과는 다른 방법론이면서도 비슷한 뉘앙스인데 묵공이 희생을 막아내는 방법을 통해 그 가치의 행위적 소산을 증명했다면 이 작품은 산더미처럼 쌓인 희생을 통해 드러나는 권력의 파괴지향적 결과물을 내던진다. 그 끝에 남겨진 건 황제와 황후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단상위의 대면이다. 내동댕이쳐진 탕약 너머로 남겨진 빈 식탁은 그 망조의 기운이 휩쓸던 왕조의 마지막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written by kharismania-


(총 0명 참여)
gullpong
멋진 리뷰입니다. 초딩들이 이해할 수 있을런지... ㅎㅎㅎㅎ   
2007-02-28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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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화(2006, Curse of the Golden Flower / 滿城盡帶黃金甲)
배급사 : (주)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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