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곳저곳에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투쟁의 분위기를 곧잘 느끼게 된다. 학교 곳곳에 걸려 있는 각종 권리들을 외치는 현수막들, 하루도 보이지 않는 날이 없는 투쟁적 목소리의 대자보들, 집회에 대한 포스터들. 우리가 예전부터 대학생에 대해 가져왔던, 그리고 지금 대학생의 입장으로서 가지고 있는, 어쩌면 강박에 가까운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대학생의 모습은 굳이 눈을 비비고 보지 않아도 대학교 안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지금은 예전만큼 "데모"니 어쩌니 하는 사회적 반향이 덜하다고 해도, 여전히 그런 물결은 소리없이 강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런 운동권적인 분위기에서 난 상당히 멀어져 있다. 특유의 귀차니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괜히 복잡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내 주변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우리나라 안에서 거세게 불붙고 있는 각종 정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들고 일어서는 이들도 있지만, 난 그런 문제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흥분할지는 몰라도 내가 직접 들고 나서지는 않는다. 누가 옳다고 쉽게 판단할 순 없겠지만, 그들이 무모한 걸까 아니면 내가 비겁한 걸까. 영화 <오래된 정원>은 그걸 묻고 있다.
80년대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붙잡혀 교도소에서 무기수마냥 살던 남자 오현우(지진희)는 17년을 복역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이 되어서야 교도소를 나온다. 너무나 오랜만인 사회생활 속에서 어안이 벙벙하기만 한 현우 앞에 어머니가 뜻하지 않은 소식을 꺼낸다. 한윤희(염정아)가 죽었다는 것. 현우와 윤희는 꽤나 각별한 사이였다. 군부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일단 일행들과 뿔뿔이 흩어지기로 한 현우는 자신을 숨겨줄 사람으로 윤희를 소개받는다. 교사인 윤희는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현우와는 달리 비운동권임을 당당히 주장한다. 그렇게 시대와 한참 거리가 먼 듯한 곳 갈뫼에서 둘의 동거는 이어지지만, 점차 조여오는 시대의 암울한 억압 속에 현우는 안절부절못한다. 결국 서울에서 동료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현우는 죄책감에 서울로 올라갈 결심을 한다. 현우와 윤희는 그렇게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를 기약없는 이별을 맞이한다. 그렇게 17년을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뚜렷이 남아 있는 옛추억에 현우는 윤희와의 추억이 담긴 흔적들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시대적으로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분위기의 영화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꽤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들의 연기는 묵직했던 당시 분위기처럼 마냥 무겁고 강렬하고 카리스마 있지는 않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무게감을 덜어낸 대신 절제되었지만 절실한 감정의 표현이 진한 여운을 느끼게 한다. 원래 배우에게는 감정이 확실히 드러나는 연기보다는 감정을 절제하는 연기가 더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원작소설을 읽지 않아서 100%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염정아는 윤희라는 역할에 안성맞춤이지 않나 싶다. 자유롭고 쿨한 사고관 속에서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지만 그게 어울리지 않는 시대때문에 아픔 또한 깊이 삭혀야 하는 여인의 모습이 염정아의 시원시원한 연기 속에 잘 드러났다. 언제 헤어질지 알 수 없는 연인과의 이별 앞에서 눈물조차 쉽게 보이지 않으면서 "입혀줘, 재워줘, 먹여줘, 몸줘, 왜 가니 니가?"라면서 원망의 말을 내뱉지만, 너무나 지리하게 이어지는 이별 속에서 점차 쇠약해져가는 그녀의 모습은 그래서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지진희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시대의 부조리에 분노하며 일어섰지만 흔히 생각하는 투사의 모습처럼 마냥 적극적으로 싸우지 못하고 내면의 갈등을 겪는, 그런 갈등 속에서 몸과 마음이 많이 다치게 되는 남자의 모습을 깊이 있게 소화해냈다. 현재 부분에선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중장년의 모습이었지만 묵직하고 절제된 감정 연기 덕에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나 온통 어둠 밖에 보이지 않는 교도소 독방 안에서 애간장이 끊어질 듯 목놓아 우는 장면에선, 별다른 시각적 효과 없이 단지 울음 소리 만으로도 관객의 감정을 제대로 건드리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매번 사회 문제나 역사적 문제에 대해 쿨한 시선을 유지하며 블랙코미디처럼 나아갔던 임상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좀 더 진지하면서도 인간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지금 생각해도 드라마틱하면서 충격적인 10.26 사건을 그저 농담따먹기처럼 풍자적이면서도 허무한 분위기로 그려냈던 전작 <그때 그 사람들>과는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그렇게 어이없게라도 웃긴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거대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휩쓸리며 상처를 입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해 한결 따뜻하고 관심어린 시선을 드러내며 그들의 아픔에 대해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임상수 감독이 유순한 스타일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격동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만큼, 영화 속에서는 꽤나 강렬한 인상들을 남기는 장면들이 때때로 등장한다. 관도 없이, 하다못해 하얀 천에 씌워지지도 못한 채 무슨 미라처럼 무성의하게 비닐로 싸여진 희생자들의 시신들, 그 시신들 앞에서 관이라도 좀 더 보내달라고 절규하는 동료들(모르는 사이더라도 분명히 함께 싸웠을 것이니), 부당한 노동 현실 앞에 주저없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모습 등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필사의 투쟁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이 일체의 미화나 절제 없이 보여진다. 이러한 시대상의 분명한 묘사는 임상수 감독이 이 영화에서 단지 안타까운 두 연인의 사랑을 통해 인간적으로 상처를 보듬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참으로 참혹했던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담담히 직시하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현우와 윤희의 사랑은 낭만적이고 싶어도 낭만적일 수가 없다. 세상이 그렇게 두지 않는다. 현우는 자신을 숨겨준 윤희와 동거하게 되면서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되지만, 그런 감정이 짙어질수록 불안감 또한 느끼게 된다. 피바람을 부르며 휘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 자신 또한 그런 역사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에 맞서 싸웠던 한 사람으로서, 현우는 그런 현장에서 벗어나 전원에서 한가로이 사랑의 감정을 나눈다는 것조차도 사치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고 자유주의고를 떠나서 그저 사랑 하나만 알고 신명나게 사랑하고 싶었는데, 그에게 그것은 곧 죄책감으로 되돌아 올지도 모른다는 부담이었던 것이다. 혼자 행복하게 사랑에 빠져 있으면, 곧 비겁하고 이기적인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를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 시대의 무언의 억압은 현우에게 평생 사무칠 이별과, 17년이라는 사회와의 현격한 괴리감을 가져왔다.
현우의 고민 속에서 애꿎게 희생당하는 것은 윤희다. 그야말로 비운동권을 표방하며 그 어떤 사상적 싸움, 계층적 싸움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어하는 여인. 그러나 그런 그녀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주변에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온갖 사상적, 계층적 갈등의 회오리는 사랑하고 아꼈던 주변 사람들까지 앗아가며 그녀를 행복하지 못하게 만든다. 시대에 상관없이 내 맘대로 살아가는 대가로 그녀는 연인과 영원을 전제로 한 이별을 맞아야 했고,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인간이 가장 원하는 기본적 가치인 자유를 갖는다는 것이 사치로만 보이고, 온갖 갈등에 휩싸여 처절하게 함께 싸워야지 사람답게 보이는 것만 같았던 세상 속에서 말이다. 혹 억지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당연한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던 이들 또한, 자유란 먼나라 얘기일 뿐이었다.
이렇게 영화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혹은 의지에 상관없이 시대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다 생채기를 내고 평생 갈 통증을 남기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마저 무시됐던 냉혹한 시대상을 조명한다. 아직 현우 선배를 사랑하냐는 후배 영작(윤희석)의 질문에 윤희가 "그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다"고 대답했듯이, 그런 시대상 속에서 사랑이란 사치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을 영화는 얘기한다. 변화의 길목을 걷는 시대 속에서, 사람의 감정까지 없어도 그만인 "여분의 부품"처럼 취급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잠시 펼쳐지는 시집 속에, 시의 내용은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제목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시가 있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현우와 윤희가 뜨겁게 사랑했던 그 시대가 그랬다. 온갖 갈등과 물리적 충돌이 정신없이 일어나 사람들을 흔들던 이 시기엔, 사랑이 상대적으로 너무 말랑말랑하고 현실도피적으로 보여 서정시라는 게 유난히 쓰기 힘들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가 학교 수업시간에도 종종, 일제 강점기에 현실 참여적인 시 대신에 서정적인 시만 주로 쓴 시인들은 마냥 좋은 평가만 받지는 못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서정시와 같은 감정을 발현한다는 것은 혼자 행복하려는 비겁한 도피처럼 보였을 거란 얘기다.
하지만 사랑하며 행복한 것이 비겁한 일인가? 격동의 역사 속에서 피로 얼룩지고 눈물로 얼어붙은 심장을 따뜻하게 부여잡고 녹여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마냥 현실 도피적인 일인가? 영화는 현우와 윤희의 깊은 그리움을 통해 그들의 사랑은 하기 미안한 일이 아니라, 자칫 역사의 회오리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었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현대사 속에서 힘없이 스러져 간 민중들의 모습에도 포커스를 들이대며, 이들의 열정 또한 숭고했음을 얘기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부당한 현실에 스러져 가며 분신까지 불사했던 그들이 무모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현실을 잊고 신나게 사랑하고 싶었던 현우와 윤희가 비겁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모두가 다, 비정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딱딱하게 굳어져 갔을 수도 있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역사의 경계선을 초월해 모두가 함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예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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