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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노라, 보았노라, 감동했노라. 록키 발보아
kharismania 2007-01-05 오전 2:47:02 3851   [7]

최근 들어 할리웃 필름공장의 움직임은 과거지향적이다. 최근 인디아나존스4의 크랭크인 소식도 들려오고 다이하드 네번째 시리즈물도 올 해 중으로 극장에 걸릴 전망이다. 뭐 물론 불혹의 나이에 근육질로 무장하고 돌아온 아놀드 형님의 터미네이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수퍼맨도 돌아온 마당에 말이다. 그리고 8,90년대 스크린 안에서 링위를 호령하던 그 분도 돌아오셨다. 록키. 그가 돌아왔다. 16년만에 그가 링위에 선다.

 

 사실 영화속의 캐릭터는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와 함께 늙어간다. 그것은 영화라는 픽션이 현실을 배제하지 못하는 모순이자 당연한 이치다. 록키도 마찬가지다. 록키의 페르소나인 -사실 록키가 페르소나가 되어야 옳겠지만- 실베스터 스텔론도 이미 예순이 넘은 나이이고 록키 역시 그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나이 먹은 배우를 통해 젊은 날의 영광을 플래쉬백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니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영광대신 정처없이 흐르는 시간을 인정하고 함께 이야기를 진행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흘러버린 시간은 챔피언을 일개 레스토랑의 주인장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도대체 왜 돌아온 것일까.

 

 록키라는 캐릭터는 8,90년대 세대를 설레게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속에서 과거의 향수에 젖을만한 감성을 지닌 캐릭터는 흔하지 않다. 천하무적의 캐릭터라기 보다는 언제나 고난과 역경을 맞이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캐릭터였던 록키는 분명 5편의 시리즈안에서 받았던 각각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일관되는 빈티지 영웅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의 영웅이 그리움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돌아왔다는 것은 무색하다. 전설로 남아야 했을법한 캐릭터가 21세기에 부활했음은 그럴만한 자신감이 있는가의 의문에 답해줄 의무가 있는것이다.

 

 어쩌면 20세기의 유물같은 이 영화가 관객을 찾는 것은 마치 영화속의 록키가 링을 오르는 심정과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링에 오른 록키를 환호하는 모습은 단지 영화속의 청중만이 아닐 것 같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록키를 응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만 하다.

 

 암으로 세상을 등진 아내의 무덤앞에 앉아있는 록키의 모습은 왕년의 챔피언의 풍모는 사라지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하다. 링에서 내뿜던 전의대신 레스토랑에서 화려한 과거담을 손님들에게 말해주는 그의 모습은 세월앞에 장사없음을 증명하는 것만 같다. 아들은 점점 자신과 멀어져가고 쓸쓸함이 커져가는 차에 자신도 모를 기운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사실 변한건 록키뿐만이 아니다. 록키가 링에 서지 않는 권투의 현실도 그렇다. 전적 무패의 무적 챔피언인 딕슨(안토니오 타버 역)은 화려한 전적과는 무관하게 복싱팬들의 원성과 비난만을 얻는다. 그것은 그의 경기가 전혀 재미있지 않기 때문이다. 패배를 모르고 난관을 겪지 못한 챔피언은 그럴만한 실력을 갖추기도 했지만 무언가가 부족해보인다. 그것은 록키가 보여주었던 것을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상황에서도 견디고 일어나 상대방을 때려눕히던 근성. 그에게는 그것을 볼 수가 없다. 단지 짧은 시간안에 상대를 때려눕히는 펀치기계는 환호 대신 원성을 살 뿐이다. 관객이 보고자 하는 것. 그것은 결과적 승리가 아닌 승리의 쟁취에 있다. 그래서 청중은 과거의 챔피언인 록키를 그리워한다.

 

 이 영화가 관객을 설득시켜야 할 부분은 진정성이다. 록키가 링에 돌아와야 할 이유는 단 한가지다. 그가 록키니까. 단지 중년의 영광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혹은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허구적 미화를 꾀했다면 그의 링 역시 그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록키의 말처럼 자신의 몸안에 꿈틀거리는 야수를 느끼기에 그는 링에 서야만 한다. 복서로서의 본능. 오랜 시간동안 외면했던 링에 대한 본능적 발걸음이 긴 동면에서 깨어나 그를 이끄는 것이다. 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 스스로를 위해서. 링에 다시 오르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자신을 위해서. 그것은 어쩌면 왜 사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물음과도 같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한 방법은 링에 오르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링에 오른다.

 

 물론 영화가 이야기의 기승전결과 무관하게 그를 무작정 링에 올려보내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가 추켜세움을 받을만한 이유는 록키의 복귀라는 이벤트성 메뉴덕분이 아니다. 예순의 나이인 록키가 링에 올라야 하는 이유는 그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그 존재를 증명해야 될 대상은 누구인가. 여전히 자신이 챔피언임을 입증하고 싶은 것인가. 그것은 자신 스스로에 대한 증명이다. 모두가 자신을 퇴물이라고 하는 그 시절에서 자신 스스로도 그렇다고 믿어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그가 과거에 존재했던 영광에 묻혀 살아가지 않기 위한 중년의 몸부림과도 같다. 나이들어간다는 것, 즉 늙어간다는 것의 고독감과 그 비애를 극복해가려는 캐릭터의 의지가 두드러진다. 그것은 록키가 한차례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의도가 받아들여질만한 가장 큰 근거이자 이 영화가 관객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점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세상을 이끌던 세대에서 점점 후방으로 밀려나는 아버지 세대가 되고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던 세대에서 점차 그 중심에 서는 아들세대를 바라봐야 하는 낡고 떨어져가는 인생의 후반기에 서 있는 이의 심정. 이는 어쩌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심정을 역설함과 동시에 누구나 언젠가는 겪게 되는 경험담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복서의 삶을 통해 보여지는 인생역전 드라마 따위가 아닌 오랜 세월을 살아온 어느 노장의 훈장같은 세월에 대한 진한 고백과도 같다. 그의 주먹에 담긴 인생 여정은 관객의 마음에 예상치 못한 감동의 크로스 카운터를 날린다. 

 

 물론 그 과정이 세월에 대한 반항적 의식은 아니다. 단지 늙어간다는 것은 다 그런것이라는 폴리(버트 영 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록키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 낡아가는 세월안에서의 자그마한 가능성을 향해 미트를 날린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닌 지키기 위해서. 시간이라는 핑계안에서 우리가 먼저 포기하고 외면하는 그것을 위해서.

 

 후반부의 경기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이자 백미이다. 영화가 지루할 정도로 촘촘하게 쌓아가던 게임의 근거들은 마침내 화려하게 조명된다. 진짜 라스베가스의 특설링의 복싱 챔피언전을 관람하는 것만 같은 리얼함. 실제로 복싱경기를 중계하는 전문인들을 캐스팅하고 중계화면과 같은 질감의 화면은 영화의 감동과는 별개로 터프한 복싱 경기의 박진감 그 자체이다. -실제로 마이크 타이슨이 잠깐 출연하기도 한다.- 그 치열했던 경기 끝에서 록키는 자신을 안아줄 에드리안느는 없지만 자신 스스로를 다시 찾는다. 몸안의 야수는 사라지고 아버지로서의 자긍심과 낡아가는 인생에 또 하나의 훈장을 남긴다. 그를 향한 청중의 뜨거운 박수는 분명 그에게 챔피언 벨트가 필요없는 이유가 된다.

 

 사실 고백하자면 필자는 이 영화 자체가 이미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었다. 얼마전 다른 영화의 시사회가 열리는 극장에서 이 작품의 예고편을 보는 순간조차도 이 영화는 분명 조롱을 얻을 것이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잡은 반가움. 보고 싶다라는 의외의 설레임을 마주했다. 그래. 록키는 오늘의 영웅이 아니지. 그래서 보고 싶었다. 물론 과거의 영웅이 시간의 장벽을 깨부수고 오늘의 영웅으로 도래하는 꼴을 기대한것이 아니다. 그냥 보고 싶었다. 시간안에서 풍화되어버린 그의 챔피언 벨트 대신 여전히 살아있는 영웅의 굳건한 의지를 보고 싶었다. 그의 강력한 훅과 카운터 펀치의 작렬보다도 그의 끈질긴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된 치열한 경기를 보고 싶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록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록키는 링 위에 있을 것이다. 한 곳에 오래 있다보면 그곳이 되는 것이라는 록키의 말처럼 이 영화는 마치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에 반가운 친구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다. 필자가 노골적으로 이 영화를 지지한다고? 맞다.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그대도 한번 보라. 그리고 과연 그 끝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필자는 사뭇 궁금하다. 이 영화는 화려했던 인생여정의 끝에 다시 그 길로 돌아온 록키의 길거리 정신, 스트리트 스피릿(street spirit) 그 자체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총 0명 참여)
djhighy
님의 글이 영화를 보구 싶다는 야수를 꿈틀거리게 하네요..^^   
2007-02-08 12:40
monica1383
지금까지 무비스트에서 보았던 그 어떤 리뷰보다도 최고입니다.

상투적인 영화 기자들의 글은 비교도 되지 않는 진지한 평입니다.   
2007-01-31 15:22
loveyids
님이 쓰신 리뷰 몇개 봤는데 대단히 잘쓰셨네요

영화기자같아요~~   
2007-01-18 01:05
sbkman84
브라보   
2007-01-05 07:13
1


록키 발보아(2006, Rocky Balboa / Rocky VI)
제작사 : Revolution Studios, United Artists,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Metro-Goldwyn-Mayer (MGM) / 배급사 : 20세기 폭스
수입사 : 20세기 폭스 / 공식홈페이지 : http://www.foxkorea.co.kr/ro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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