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오페라 라보엠(La Bohème)을 락과 재즈, 아카펠라, 라틴 음악등의 현대적 변주를 통해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리메이크한 '렌트(Rent)'는 조나선 라슨이 7년에 걸친 세심한 준비기간 끝에 무대에 올린 96년 1월 브로드웨이 초연 이래로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지금까지 이어오며 각광받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무대의 열기를 스크린으로 이전하고자 하는 산물이다.
앙리 뮈르제의 소설을 각색한 오페라 라 보엠의 변주인 렌트는 파리의 뒷골목을 뉴욕의 뒷골목으로 택지 전환시키며 보헤미안의 삶을 누리던 시인과 화가, 철학자와 음악가를 영화감독, 락커, 댄서 등으로 변환해서 대입했다. 그리고 19세기를 병들게 했던 폐결핵은 20세기의 AIDS로 치환되었고 현대의 이색적인 패러다임인 동성애가 개입했다. 파리의 뒷골목에서 가난하지만 자유롭게 살아가는 보헤미안의 정서는 대서양을 건너 뉴욕의 뒷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다만 라보엠의 비장감을 좀 더 희망적인 예찬으로 변환한 것은 렌트만의 그것이다.
일단 이 영화는 8명의 주요인물들 중 미미 역을 맡은 로자리오 도슨과 조앤 역을 맡은 트레이시 토마스를 제외하고는 96년 초연때 공연했던 인물들이 그대로 캐스팅되었다. 이는 영화가 렌트라는 뮤지컬을 영화라는 다른 개념의 장르로 변주하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원작의 뮤지컬적인 성격이 영화라는 외피안에서도 그 생명력을 유지되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자 하는 의도로 읽혀진다. 영화는 그 의도처럼 마치 스크린안에서 뮤지컬을 구현하는 것 같다.
525600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사랑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무대에 선 8명의 주인공들의 화음으로 1년이라는 시간을 사랑으로 설명한다. 사랑만이 525600분이라는 1년의 흐름을 채우는 것이며 그것만이 인생을 수놓는 가치라고. 영화는 뉴욕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젊은 영혼들의 사랑을 통해 빈곤한 삶이 풍요로운 행복을 맞이하는 방식을 노래한다.
이 영화는 마치 뮤지컬의 지정학적 한계를 영화적으로 극복하는 것만 같다. 물론 뮤지컬을 비롯한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인 현장감이 배제되겠지만 협소한 무대로부터 벗어나 스크린 안에 안착된 비제한적 공간안에서 그 생동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 영화는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의 영화화라는 점에서 같은 뿌리에서 완성된 '시카고'를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 모두 동명의 원작 뮤지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동질감을 지니는데 두 영화가 보여주는 도시적 감수성 역시 그런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시카고라는 도시가 지닌 화려함 이면의 그늘을 매혹적인 춤과 노래로 표현한 '시카고'나 뉴욕이 지닌 풍족한 외관 이면의 뒷골목 정서가 보여주는 빈곤함을 활기찬 춤과 노래로 묘사한 '렌트'는 미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다만 '시카고'가 인공적인 셋트와 흑백의 대비적인 컬러감으로 도시적 욕망의 흑백대비를 분명히 한다면 '렌트'는 실외적이고 넓은 일상공간의 다채로운 색감으로 젊은 감성에 어울리는 다양성을 확보한다.
원작의 원년멤버 대부분으로 구성된 극중 연기자들은 뮤지컬의 명성을 영화로 옮겨왔다. 다양한 공간에서 다채롭게 표현되는 춤과 음악의 향연은 이 영화를 수놓는 백미이자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을 거머쥐는 노골적인 수법이다. 그 경쾌한 음악과 춤에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뺴앗기는 것만으로도 사실 이 영화는 꽤나 즐겁다.
이야기는 원작 뮤지컬을 그대로 따르는데 사실 원작을 접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영화의 이야기는 생소할 수도 있는 부분이 된다. 동성애와 에이즈(AIDS)에 대한 묘사는 언급이 아닌 주제의식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지닌 외관적인 웅장함의 구석에 숨겨진 폐부를 드러내는 소치(所致)이기도 하다. 극중 인물들이 대사를 통해 혹은 노래를 통해 뉴욕은 최악의 도시라고 드러내는 것처럼 그들에게 뉴욕이라는 도시는 부도덕하고 억압되는 공간이다.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에는 골목 구석까지 집세(RENT)의 버거움이 목을 조르는 부족한 자를 위할 줄 모르는 도시. 하지만 그 암울한 뉴욕 뒷골목에서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키우며 블루칩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희망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삶과 부합된 에너지의 분출은 춤과 노래의 화법에 적합하게 어울린다.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낭만적 열정을 노래하는 젊음의 에너지가 꿈틀거리듯 그들의 삶은 무모한 방임이 아닌 선택의 자유로 승화되는 듯 하다.
원작의 생동감은 스크린의 획일화로 미약해졌으나 영화만의 비한계적인 영역의 확장은 뮤지컬의 매력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으로부터 배어나오는 즐거운 가무의 향연은 절망적인 삶안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이야기에 생동감을 얹는다. 원작 뮤지컬의 관람 여부와는 무관하게 영화는 뮤지컬의 에너지를 영화에 잘 배어들게 하고 영화만의 색감을 만들어내는데에도 성공한 듯 싶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인물들의 매력을 부족함없이 잘 보여주며 무대의 에너지를 스크린으로 입양한 성공적인 사례이자 좋은 본보기이다. 그 즐거운 134분간의 향연이 끝나면 마치 기립박수라도 쳐야할 것만 같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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