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인권위원회의 프로젝트 중 하나인 '시선' 시리즈가 세번째를 맞이하였다. 임순례, 정재은, 여균동, 박진표, 박광수, 박찬욱(이하 '여섯개의 시선'), 박경희, 류승완, 정지우, 장진, 김동원(이하 '다섯 개의 시선') 등의 11명의 감독들이 이 시리즈를 참여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여섯편의 이야기에 일곱명의 감독이 참여하였다. 첫번재, 두번째 시선 시리즈가 좁은 단위의 인권을 이야기했다면 세번재 시선은 더 깊이 파고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의 첫번째 에피소드인 '잠수왕 무하마드'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작은 화학공장에서 일하는 무하마드는 사실 불법 이주 노동자이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위협을 겪고 있고 저임금에 고노동을 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그가 살던 마을에서는 알아주는 잠수왕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한 프로그램이 그를 만나러 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한국에서 단속반에게 쫓겨 목욕탕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중이다.
이 어이없는 아이러니에 '잠수'라는 의미는 두가지 뜻이 숨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깊은 물에 숨을 쉬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잠수'이자만 또다른 '잠수'의 의미는 '몸을 숨기다'라는 의미로 숨겨진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면에서 첫번째 에피소드의 무하마드는 자신의 주특기를 선보임과 동시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목욕탕에서 보여주고 있다.
'말아톤'을 연출하여 그래서인지 목욕탕에서 열대어들이 등장하는 판타지 장면은 마치 초원이가 야구장과 할인매장, 그리고 밀림을 향해 뛰는 모습과도 흡사하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지만 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두번째 에피소드인 '소녀가 사라졌다'는 '도로 눈을 감고', '원더플 데이'등과 같은 단편으로 주목을 받은 김현필 감독의 작품이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소년소녀가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혼자 사는 몸이지만 용감하게 자신의 꿈을 위해 살아가는 소녀 선희는 짝사랑하는 동네 오빠를 위해 캠코더를 사려고 한다. 하지만 전기가 끊기는등 자신이 살기도 벅찬 상황에서도 그녀는 알바를 하면서 유학을 갈 오빠에게 줄 캠코더를 사려고 한다. 더운 여름 촛불로 밤을 지세우던 선희의 집에 불이 나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선희는 보이지 않고 덩치 큰 곰 한마리만이 사람들에게 보일 뿐이다.
전기료 체납으로 촛불을 켜고 자다가 불이 나서 숨진 소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이 작품... 사건이 발생한 후 한전은 그 체납자들에게 납부기간을 연장하거나 최대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전기를 공금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있었으며 세희 같은 소년소녀가장 또한 계속 생기는 추세이다.
사실 이 작품은 매우 난감한 것이 불이 나고 선희는 사라지고 곰이 한마리 대신 출몰하는 장면이다. 곰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상당히 어려웠다. 선희가 곰으로 변해 사라진 것이 아닌가 그런 상상도 해보았지만 말이다. 곰과 선희는 어찌보면 비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고립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다는 면에서 사고를 당한 선희와 선희 대신 나타난 곰의 유사성은 그렇게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은 선희를 곰처럼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냥 있었던 사람 혹은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처럼말이다.
방황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로 주목을 받은 '마이 제너레이션'의 노동석 감독이 이야기하는 세번째 에피소드는 '험난한 인생'이다.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에 대응하는 또래 어린이들의 이야기이다. 경수는 좀 잘 사는 집의 아이이다. 어머니가 소개해준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같이 학원에 지내는 외국인 또래 아이를 원어민 교사이자 친구처럼 지내는 중이다. 경수의 생일잔치에 많은 아이들이 모이고 경수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소개하기로 한다. 그런데 소개한 여자친구는 백인이 아닌 흑인 여자아이였다. 아이들은 그 친구가 우리말을 못알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놀리기에 여념 없다. 놀라기는 경수 어머니도 마찬가지... 미국에서 왔는데 왜 흑인인가 경수에게 질문을 하지만 경수가 대답을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인터넷 지식검색까지 동원을 하게 되지만...
세번째 이야기는 편견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였다. 특히 우리는 피부색이 다르면 좀 이상하게 보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멀리하고 놀리기에 여념이 없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이 우리와 같이 숨을 쉬고 있다. 작품 말미에 경수역을 맡은 배우가 '색깔이 없었으면...' 노래를 부른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크레파스나 물감을 보면 살색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살색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색상이며 인종차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색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색을 크래파스나 물감에서 빼버리거나 '살색'이라는 이름대신 다른 이름을 사용하자는 운동도 벌이기도 하였다. 지금 그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색에 편견을 갖는 것처럼 그 사람이 흑인이건 황인종이건, 백인이건간에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고기 자리'를 감독한 이미연 감독이 보여주는 네번째 에피소드는 '당신과 나 사이'라는 작품으로 육아 분담 문제를 이야기한 작품이다. 대우와 호정은 맞벌이 부부이다. 호정의 임신으로 호정은 아이를 낳고 쉬고 있는 상태이다. 그녀는 다시 회사를 구할 생각이다. 이에 비해 대우는 호정의 이런 생각을 이해 할 수가 없다. 호정 역시 대우가 육아 분담문제에 소홀하게 대햐는 것에 무척 불반을 갖는다. 잠시후... 대우의 모습이 달라져 있다.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것이 인권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겠지만 아이를 보살필 육아 분담의 문제는 최근 들어서 심각하게 이야기화 되고 있는 문제이다. 핵가족화, 맞벌이 부부의 등장으로 대우. 호정 부부 같은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임신을 하고 나서부터 여성은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의무 아닌 의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며 남성 역시 똑같이 육아 문제에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두 남녀가 티격태격 싸우다가 화면이 변한다. 그런데 이후 상황은 너무 우스꽝스럽다. 남편인 대우는 어느새 아이와 함께 시장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우의 목소리가 아닌 성우의 목소리가 깔리면서 육아분담 문제는 당연히 같이 부담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관객들은 놀랄지도 모르지만 어찌보면 이것은 앞에도 이야기했듯이 당연한 일이다. 부인이 집에만 있다면 부인에게 양육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만 같이 맞벌이를 한다면 서로 도와가면서 육아문제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갑자기 '바른생활 사나이'버전으로 바뀌지만 우리는 그동안 양육 문제는 여자들의 문제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터라 그것을 깨려면 많은 숙제가 남았음을 느끼게 된다.
'뇌절개술', '정당정치의 역습'으로 알려진 김곡, 김선 감독의 'Bom Bom Bom'은 역시 편견에 대한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왕따와 동성애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음악으로 치료하는 이야기이다. 마선은 호모로 놀림을 받은 소년이다. 하지만 그는 드럼을 치는데 있어서는 학교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마선을 이해하지 못하고 놀리고 심지어 겁탈을 하기 까지 한다. 드럼 치는 모습에 반해버린 마택은 마선과 친하게 지내보려고 하지만 주위에서 같이 마택까지 놀려대는 바람에 그와 음악적으로 친해지려고 싶어도 친해질 수 없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선은 홀로 교실에 있고 아이들은 놀리기에 여념이 없는데 이 때 마택이 교실로 들어서고 그들은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인종에 과한 편견 만큼 무서운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속설과 그것에 대한 편견이다. 오로지 확인되지도 않은 소문에 사람들은 긴장하고 반대로 그 소문에 소문의 대상자는 놀림 대상이 된다. 아무것도 못하고 놀림을 받기만 하지만 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뭔가 능력을 주신다는 점에는 이에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악기라는 것이 혼자 연주해도 멋은 있지만 여럿이 모일 수록 그 화음은 더 해지고 더 아름답게 변한다. 마택과 마선이 연주하는 락 음악은 그래서 자유와 편견에 대한 억압을 탈출시키려는 그들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마지막 여섯번째 에피소드는 '선택', '가슴에 돋은 칼로 슬픔을 자르고'의 홍기선 감독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다룬 '나 어떡해'가 마지막 주자이다. 비료 공장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는 '도 氏'...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그는 정식으로 일하는 것이 아닌 계약직이기 때문에 어떤 해택도 없다. 회사에서 맘대로 책도 빌릴 수 없으며, 몸저 누우신 어머니를 간호할 수도 없다. 휴가라던가 월차 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그는 해고 통지를 받게 되고 더욱더 난감한 상황에 이른다.
영화는 초반 '도 氏' 역을 맡은 정진영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정진영의 인터뷰 부분은 가상의 인터뷰이지만 그 이후 나오는 인터뷰는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이 인터뷰에 드러나 있고 다시 '도 氏'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영화는 '도 氏'의 해고 장면을 끝으로 끝을 알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에 등장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등장하여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보너스를 주었는데 겨우 봉투에 든 것은 1 만원이었고 그걸 보는 순간 차라리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술 시중을 드는 사람들로 전략해 버렸다'는 등의 이야기도 나왔다. 정말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이 영화를 기획한 '국가인권 위원회'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금도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도 못한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어이없는 퇴출 선고를 받기도 한다. 당연히 회사에 좋은 근무 환경을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잘못 말하다가는 목이 달아날 것이 뻔하니깐 말이다.
여섯개의 이야기는 전편의 내용들 보다 더 확장적이다. 가령 '다섯개의 시선'에서 장진 감독의 '고마운 사람'과 앞에 이야기한 '나 어떡해'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장진 영화는 코믹하게, 그리고 홍기선 영화는 암울하게 그렸다. 물론 그게 코믹이건 암울이건 간에 그들의 상황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이들 작품이 주는 위력은 크다고 본다.
시리즈를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작품들의 특성이 들어나는데 '여섯개의 시선'의 경우 포스터가 감독들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인지도 역시 감독의 인지도에 중점을 두었다면 '다섯개의 시선'은 포스터의 경우 작품들의 스틸컷으로 포스터를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번 '세번째 시선'의 경우 감독들의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무엇보다 전편들의 작품들에 비해 더 깊숙히 파고들고 진지해졌다는 것이다. 포스터의 경우 김태우, 정진영, 전혜진 같이 알려진 배우들이 많았던지라 이들을 포스터 하나에 모으는 모험을 감행했다. (물론 여섯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다 모이면 좋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알리는데는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이번 '세번째 시선'의 안타까운 점이라면 다큐가 없었다는 아쉬움이 든다. '여섯개의 시선'에서 박찬욱 감독이 보여준 '믿거나 말거나-찬드라의 경우'라던가 '다섯개의 시선'에서 김동원 감독이 보여준 '종로, 겨울'과 같이 인권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다큐가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얼마전 설문조사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네번째 시선 시리즈는 누가 되었으면 하는 설문말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아직 우리나라는 감독은 많고, 인권에 관한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 시리즈는 어쩔 수 없이 장수 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내년에는 또 어떤 감독들이 시선 시리즈를 가득 채울지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