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안에서 인연이라는 명목으로 스치듯 지나는 군상들 중 기억나는 얼굴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인생안에서 의미를 부여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연과 같은 부딪침안에서 필연과 같은 인연을 좇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모든 필연같은 만남이 지속성안에서 생명력을 잃는 것은 삶안에서 지극히 평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자잘한 만남의 조각이 때론 어느 지속적 순간보다도 빛을 발하며 영민하게 거듭나는 한순간이 있다.
한 여자와 그 여자를 바라보며 실랑이를 벌이는 두 남자. 두남자중 한 남자는 대뜸 그 여자에게 명은이가 아니냐며 반가워한다. 어리둥절한 여자의 표정은 그녀가 명은이인지 아니면 아닌지를 알 수도 없게 애매모호하지만 그녀는 자신은 명은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상황에서 억울한 당사자는 자신인데 여자는 마치 당황스러운 상황을 도망치듯 그자리를 벗어난다. 하지만 그 남자는 오히려 채근하듯 여자에게 부탁을 강요한다.
그 부탁이란 것도 상당히 당황스럽다. 생전 본적도 없는 명은이라는 여자의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니 하루만 가짜 딸 노릇을 해주라는 것이다. 그 당황스러운 제안에 망설임을 느끼지만 그 제안을 수락한 여자의 태도가 더욱 모호하다. 이렇게 엉뚱하면서도 그 결과가 궁금해지는 공간으로 영화는 달려가기 시작한다.
다이라 아즈코의 '멋진 하루'에 있는 여섯편의 단편 소설 중 두번째 이야기인 '애드리브 나잇'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황당한 사건을 빌미로 벌어지는 경쾌한 에피소드의 웃음 너머로 평범한 일상적 서민의 성찰이 발견되는 소설과 이 영화의 맥락은 대부분 동일하지만 영화만의 그것은 감성이다. '여자, 정혜'와 '러브 토크'를 통해 여성적인 섬세함을 바이올린 선율처럼 잡아내던 이윤기감독의 조율이 이번 영화에서도 지극히 드러난다.
제안도 당황스럽지만 그 상황안으로 끌어들어가는 그녀(한효주 역)는 관객에게 일종의 의심마저 부여한다. 어쨌든 그녀는 타인들의 공백을 메꾸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마지막 방편은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위한 선물과도 같은 배려다. 비록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고인의 운명을 앞둔 이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남은이들의 마지막 지푸라기다.
물론 이 제안이 당황스러운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다. 제안을 처음 내놓은 기용(김영민 역)의 자신감도 사실은 수세에 몰린 사정에 의한 객기와 같다. 어쩄든 그토록 수소문하던 명은이가 아닌 명은이를 닮은 여자를 문밖에 두고 가족들은 토론을 벌이지만 서로간의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왁자지껄한 의견피력이 무력하게 느껴질정도로 허무하게 그녀는 그 영역안으로 발을 들이게 된다.
산 송장과도 같은 명은의 아버지의 임종순간을 목도하는 친지들의 모습은 어쩌면 그 순간을 기다리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그 고된 기다림에 유종의 마침표를 찍기위해 어쩌면 명은을 애타게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죽지않은 이의 마지막을 정해진 듯 말하는 명은의 삼촌(김중기 역)이나 그런 그를 질책하면서 정작 죽지 않은 그의 옆에서 곡소리를 내는 지호 아버지(최일화 역)의 모습은 그 지친 기다림의 결론을 보고싶어하는 자들의 단면이다. 그들은 그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도 서로의 치부를 건드리며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서로를 헐뜯는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의 기다림에 지쳐가는 이들의 자학과도 같은 상황의 발견이다.
제3자이지만 그 연극에서 가장 큰 배역을 맡은 그녀는 오히려 친지들보다도 그 상황에 진지하다. 타인의 영역에 들어온 이방인은 오히려 그 영역에 심취되어 자신의 본질을 탐색한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자신의 헐거워진 자리를 체면치례하듯 유지하는 친족들보다도 거짓이지만 분명한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그녀는 자신의 의무를 이행한다. 그것은 타의적인 강압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표명되어 나타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생뚱맞아보이는 상황이 가당성을 획득하는 것은 그녀의 감춰진 진실이 입밖으로 흘러나오는 순간덕분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본명을 말하는 순간 관객이 짊어져야 했던 오해의 순간은 와해되고 진실이 그 공간에 침투한다.
미약하지만 감흥없는 삶안에 예속된 여성들의 모습을 스크린에 투영하는 이윤기 감독의 감성은 이 영화에서도 선을 살린다. 그 속내를 알수 없는 연민의 깊이에서 보경은 '여자, 정혜'의 정혜(김지수 역)와 실타래가 엮어지는 인물이다. 감정이 최대한 절제되고 인물의 대사보다는 표정으로부터 드러나는 자제된 감성적 표현력이 이 영화에서도 곧잘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그 절제의 선을 충실히 이행한 한효주의 연기는 영화의 감성에 부합되는 적절함이다.
제목은 영화의 내용과 탁월할 정도로 부합된다. 결국 아주 특별한 손님이었던 보경은 타인의 영역에 이방인으로 들어서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청사진을 엿본다. 자신이 짊어진 자책감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했던 심리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우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물론 그녀가 스스로 내뱉는 고백이상의 개인적인 아픔의 깊이를 더욱 들어낼 수 있는 근거는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경이 영화속에서 사라진 명은과 동일한 성격의 아픔을 지녔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케한다. 특별한 개인으로 점철되는 사연이지만 이는 여자라는 동시대적인 통증이다. 홀로 세상에 부딪쳐 살아가는 부경은 자신의 연약함을 가리기위해 침묵이라는 수단으로 자신을 감싼다. 허세와 같은 외면에 가려진 내면의 사연이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그녀가 타인의 제안에 편입을 결정했을지에 대한 수긍이 들어선다.
우스운 에피소드적 상상력을 통해 드러나는 감성적인 투명함. 원작소설의 이야기에 덧씌워진 영화의 맑은 감성이 꾸밈없는 자연광처럼 자연스럽게 배어든다. 감정의 평형을 지속시키며 감정의 충만에 이르게 하는 영화는 말을 아끼는 대신 감성적인 교감을 시도한다. 타인의 영역에서 자아의 빈자리를 발견하고 삶의 필연을 충만하는 보경의 일탈적 행위는 결국 자신의 존재의 자리를 찾는 여정으로 귀결된다. 자신의 자리를 떠나 타인의 자리에 충실함으로써 그로써 발생하는 자신의 영역에 대한 발견. 그리고 그 자리로의 회귀. 그것은 삶에 대한 재발견이자 생의 의지에 대한 모호한 물음표에 느낌표의 화답을 넣는 작업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잔잔하지만 울림이 큰 여운적 감성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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