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 도심 속 야수들의 거친 울부짖음...
이 영화를 개봉 당시, 그리고 그 직후에 안 봤던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권상우와 유지태의 조합이 썩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둘이 같이 나온다는 게 뭔가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여겨졌고, 그래서 그 결과물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가 없었다.
이제와서 영화를 본 소감을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둘의 조화에 대한 불신은 어느 정도 내 판단이 옳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은 상당히 괜찮은 누아르 내지는 액션 영화로 나타났다.
보통 누아르라 하면 뒷골목 세계의 거칠지만 어두운 남성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를 지칭한다고 보이는데,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모두 사법기관에 근무한다고 보면 결코 어두운 뒷골목 세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화면의 질감이라든가 손병호의 열연에 힘입어 누아르 세계의 분위기를 맘껏 느낄 수 있다.(일부러 어둡게 보이기 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상영 당시 극장에서의 화질과의 차이인지는 모르겠는데, 출연진의 얼굴이 모두 연탄배달하다 온 사람들처럼 거무죽죽해 보였다)
다혈질 형사 장도영. 그는 역주행도 마다하지 않고 칼을 휘두르는 범인에게 그냥 몸을 던지는 열혈형사. 대박의 꿈을 쫓아 복권을 사는 도중에 배다른 동생이 살해된다. 이제 그의 모든 분노는 동생의 죽음으로 집약된다.
냉철한 검사 오진우. 농부인 아버지의 철학을 가슴 깊이 새겨두고 사회의 '피'를 뽑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이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아내의 이혼 선언과 지방으로의 전근이다. 그는 가장 큰 '피'인 유강진을 검거하기 위해 단순하고 과격하지만 결코 악과 타협하지 않는 장도영을 팀으로 불러 들인다.
권상우의 거친 액션과 폭발, 야수의 본능을 조금씩 발산하는 유지태의 연기도 매력이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유강진 역의 손병호다. 야수에서의 그의 악역 연기는 너무 전형적이긴 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매력적인 연기였다. 차라리 손병호의 비중을 좀 더 키워, 권상우, 유지태, 손병호의 세 다리로 버틴 형국을 연출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가능할만큼.(나쁜 행동을 하는 손병호말고 가족과의 관계를 좀 더 부각했더라면 역의 전형성도 상쇄되고 더 소름끼치는 인물형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권상우와 유지태의 조합에 대해선, 좋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이는 권상우에 기인하기보다는 유지태에 대한 느낌 때문인 듯 한데, '뚝방전설'에서의 유지태는 아직 못봤지만(꽤 좋았다고는 하는데), 유지태의 장점은 역시 섬세하고 부드러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유지태로 인해 이 영화의 완성도가 더 낮아졌다든가 하는 건 아니니깐.
마지막으로 좀 아쉽다고 하면, 권상우의 주변이 너무 삭제되었다는 점(그의 동료관계가 영화에서는 소멸되어 마지막 장면, 권상우가 쓰러질 때 동료 형사의 안타까운 주저앉음에 정서적으로 동의하기 힘들었다.)과 유강진에 대한 분노가 유강진을 보호하고 있는 좀 더 큰 세력에게 향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버렸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분명 복수는 하긴 했는데, 왠지 큰일 보고 휴지로 닦지 못한채 주저 앉아 버린 듯한 느낌이 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인다.
- 장르 : 느와르/액션 - 시간 : 124분 - 감독 : 김성수 - 출연 : 권상우(장도영) 유지태(오진우) 손병호(유강진) 강성진(조영철) 이주실(도영 모) 정원중(부장검사) 이한위(방계장) 김윤석(주현태) 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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