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리 감독의 <그녀는 날 싫어해>는 미국영화다. 흔히 미국영화라 하면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를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러한 영화들을 뭉뚱그려 미국영화라고 하는 것은 다소 맞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미국인이 감독하고, 대부분의 배우와 스텝도 미국인이며, 미국자본으로 만든 영화는 일단 미국영화다. 하지만 앞서 말한 메이저 영화들은 세계에서 통할만한 흥행 코드를 갖춘 철저한 상업영화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 영화들은 ‘미국영화’라기보다 ‘할리우드영화’라 부르는 것이 맞을 성 싶다. 그렇다면 미국영화란 무언가. 당연한 얘기겠지만 미국영화는 미국인이 만든,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의 문제를 다룬 영화이다.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들을 다루고 있는 스파이크 리의 이 영화는 그래서 지극히 미국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제약회사의 부사장인 존이다. 그는 MBA출신이며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미 성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성공은 왠지 공허하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회사에 출근을 하고, 에이즈 치료제의 핵심 연구자인 쉴러 박사의 방에서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눈다. 박사는 존에게 회사에 모든 에너지를 쏟지 말고, 결혼도 하고 자기 인생을 살라는 말을 한다. 그리곤 자신의 연구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박사의 죽음에 실의에 빠진 존에게 쉴러 박사의 소포가 배달된다. 거기에는 경영진이 박사에게 실험을 조작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과 주가 조작 등의 계획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이 있었다. 존은 그 사실을 SEC(증권거래위원회)에 고발하지만, 존의 행동을 눈치 챈 회사에서 오히려 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졸지에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SEC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지목된 존은 결국 회사에서 쫓겨난다. 회사 측은 용의주도하게도 존의 자산을 모두 동결시키고 그의 손발을 꽁꽁 묶는다.
그렇게 궁지에 몰린 존에게 약혼자였던 파티마와 그녀의 레즈비언 연인인 알렉스가 찾아온다. 둘은 그에게 정자기증자가 되어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한다. 존은 윤리에 반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해서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돈이 궁한 그는 마지못해 그녀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파티마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레즈비언들을 그에게 소개하며 임신사업을 알선하기 시작한다. 존은 비아그라를 먹어가며 레즈비언 손님들을 받고, 결국 하루아침에 레즈비언들의 종마로 전락하게 된다. 실제로 레즈비언들이 그러한 방식의 임신을 원할지 상당히 의문이지만, 어쨌든 존은 결국 19명이나 되는 아기들의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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