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제목부터가 역설과 모순을 담고 있다.
젊은 여성의 시한부 인생을 소재로 삼은 이 영화는 생명활동으로서 종양이 던져주는 혹독함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
을 반추한다. 주인이 젊을수록 몸 속의 암세포도 속절없이 빨리 자라난다. 앞으로 많은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앤은 자신이 할 일들을 하나 둘 실천하면서 지워나간다. 안타까운 종양의 성장을 따라, 영화는 주인공에게 남아있
는 행복을 절실하게 보여주면서 가진 것 없어보이는 앤의 소중한 것들을 세심하게 들춰보인다. 얼핏 상투적인 신
파 멜로가 될 수 있었던 영화의 소재는 삶의 대척점들에 대한 차분한 관찰로 승화된다. 생명과 죽음, 일상과 일탈,
부모와 자식, 머무름과 떠남, 시작과 끝, 그리고 부부생활과 외도에 이르기까지.
앤의 짧은 여생에 개입하는 한 따뜻한 남자는 같이 살던 여자가 가구를 다 가져가버린 휑한 집에서 살고 있다. 여
자가 돌아올까봐 새 가구를 들여놓지 않는 남자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앤의 눈에서 자신 안에 있는 엇을 본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은 남자와, 떠날 날을 기다리는 여자는 각자의 상실감으로부터 비롯된 온기를 나눈다. 역
시 가진 것 없어보이는 이들의 사랑을 통해 영화는 보편성을 띤 인간애의 가치를 보여주려고 애쓴다. 결국 남자는
주인공의 외도의 대상이 아닌 새로운 삶을 이어받는 대상이다. 그래서 영화는 눈물을 강요하지 않은 채 수수한 희
망을 전해준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그런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