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인터넷신문에 반딧불의 묘에 관한 글이 실린적이 있다.
당시는 이라크전이 발발하던 시점이였고 세츠코남매를
희생될 이라크아이들에 비유하는 것이다.
당연히 찬반논쟁이 일어났고 나는 반대쪽이였다.
지금도 나는 그 리뷰를 쓴 기자분이 너무 나이브한 관점을 가지지않았나 생각한다.
살펴보자.
세츠코남매의 아버지는 일본황군장교다.
당시의 일본같은 초군국주의사회에서 어떤 위치인지 알것이다.유신시절한국에서 사관학교의 위상을 생각해보시길.
그런데 이런 엘리트계층의 아이들이 무정한 어른들에게 버림받고 학대당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
이것이 과연 반전평화코드일까?
맞다. 강력한 반전메시지를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편향되고 축소된 불완전한 평화이다.
이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혼동시킨다.(고의로?)
일본침략군의 선봉장아버지는 행방을 찾을 길없는 전쟁피해자들과 동일시된다(!)
미국의 폭격은 파시즘을 격퇴하기위한 군사행동이 아니라 천재지변과 같은 반열.
그리고 세츠코남매를 버리는 무정한 어른들은 호국영령을 모욕하는 비열한 속물들로 비춰지고.
지나치다고? 후방의 "배신자"들을 증오하는것이 파시스트전쟁론의 정수.
그렇다고 내가 파시즘운운하는건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 나는 일본식반전메시지의 얄팍함에 화가 나기보다는 맥이 풀린다는 느낌.
그들의 논리란 "전쟁은 비참한것. 모두가 희생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그리 중요한것인가?"
참 답답한 일이나
균형감각은 있어야겠지.
어떤 네티즌은 "반딧불의 묘"가 간접적이나마 일본침략전쟁을 미화한다고 비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뻔했으나 그래도 이 영화의 반전평화메시지는 인정하고프다.
비록 앞에서 밝힌바와 같이 참으로 "일본적"인 메시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나 더. 마지막에 오빠가 세츠코에게 가한 행동은 사랑이 아니다. 절망감의 벽에 부딪치면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닫는 전형적인 일본사람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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