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춤을 춘다. 웅장하고 화려한 선율에 맞추어 최고 권위자의 위엄을 세우고 예술가적 자질을 드높일 왕에 의한 왕을 위한 왕만의 춤을 춘다.
<파리넬리>의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이 수년만에 내 놓은 <왕의 춤>은 춤과 예술을 사랑한 루이 14세와 루이 14세의 권력, 남성성, 그리고 음악을 사랑한 륄리의 이야기이다.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두 작품인 <파리넬리>와 <왕의 춤>은 인물의 성격과 기본적인 모티브, 예술성을 지향한 여러 가지에서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
남성도 여성이 아닌 카스트라토로 살아가는 파리넬리와 이름뿐이 국왕과 실질적 권력을 가진 재상 사이에서 고뇌하는 루이 14세는 외로움의 깊이는 다르지만 예술의 힘을 빌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며 고독을 이겨내는 방식은 같을 것이다.
파리넬리와 루이 14세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재능에 불을 붙여준 사람은 파리넬리의 형인 리카르도와 루이 14세의 예술적 영감의 동반자인 륄리로 이들이 없었다면 잠재적 능력을 가진 천재로 끝을 맺었을지 모른다.
물론 리카르도와 뤼리 또한 천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겸손으로만 파리넬리와 루이 14세를 대하지는 않았다. 파리넬리를 자신의 음악에 있어서 영원한 악기로 묶어 두려한 리카르도는 생명이 없이 기교뿐인 음악으로 파리넬리의 버림을 받는 과욕의 작곡가였다. 륄리 또한 영원히 사랑 받는 음악은 프랑스에서 나와야 한다는 프랑스 음악가들의 천대 속에 이탈리아 태생의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건 음악에 대한 열정과 능력뿐이었다. 루이 14세에게 인정을 받으며 달콤한 권력 속에서 오만과 독선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예술을 소재로 한 영화 대부분은 거대한 스케일과 철저한 고증으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예술가의 혼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예술가 특유의 광적인 카리스마와 대립적 인물구조에서 오는 긴장감도 빼 놓을 수 없다. <파리넬리>와 <왕의 춤>은 위의 여러 면에서 충분히 적절하였으며 예술성과 스토리의 배합은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웠다.
카스트라토가 노래를 부르고 왕이 춤을 추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구도와 예술적 재미가 있는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작품에는 장인의 혼이 담겨져 있다.
힘찬 몸놀림과 단아하고 위엄 있는 왕의 춤에서 나는 왕의 권력을 보았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왕의 슬픈 눈와 권력이 주는 오묘한 감정을 보았다. 오늘도 왕이 춤을 준다. 힘있는 자만이 출 수 있는 .... 그런 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