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를 극장에서 정식으로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원래 보려고 마음먹었던 영화가 매진이었던 탓에 <글래디에이터>의 입장권을 구입했었지만 영화를 모두 감상하고 난 후엔 나로 하여금 '매진이었던 탓에'를 '매진이었던 덕택에'로 자연스레 바꾸어 생각하게 만들어 버린 영화다.
<글래디에이터>의 스토리는 사실 아주 단순하다. 그 단순한 영상 중의 상당 부분이 명장 출신인 막시무스의 화려무비한 싸움으로 채워져 있다. 잔인한 것을 싫어하는 관객이라면 구태여 보고 싶지는 않을 장면들도 많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주연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에 의해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모든 부분들이 상쇄되거나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된다. 처음 노예 상인에 의해 발견된 막시무스가 로마 속주의 작은 검투장에서 싸울 때는 잔인함과 과격함만이 드러난다. 검투사의 의무라 할 수 있는, 관중을 흥분시키는 역할에도 막시무스는 냉담하다. 오직 상대를 빠른 시간 안에 잔인하게 죽일 뿐이고 돌아서 버릴 뿐이다. 그러나 로마 콜로세움으로 옮겨 자신의 가족을 죽였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황제를 대면한 후의 그의 눈빛과 행동은 다르다. 작은 검투장에서 상대를 죽이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발산해 왔던 그의 가족의 죽음에 대한 애통과 분노가 황제를 만남으로써 제대로 된 배출구를 아주 가까운 곳에 갖게 된 셈이다. 싸울 때에는 여전히 더없이 사납고 날쌔지만, 그 싸움 후의 눈빛은 원수를 앞에 두고 더욱 고통스럽고 짙다. 어떤 시합 후 황제 코모두스가 막시무스의 아내와 아들이 죽음을 앞두고 창녀와 계집애 같았다 말하여 정면으로 막시무스를 자극하고 모욕했을 때, 막시무스 분의 러셀 크로우의 눈빛과 음성은, 고통을 인내로 누르고 분노를 조용히 끓이는 그의 연기는 전율을 느끼게 했다. 샛길로 새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글래디에이터> 후 러셀 크로우의 좋지 못한 사생활 혹은 성격에 관한 스캔들이 새어나올 때조차 내가 크로우를 변함없이 좋아하고 지지했던 것은 <글래디에이터>에서의 그의 연기에 더없이 감탄했던 사실에 기인한 바가 크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 속 막시무스의 강렬한 인상을 끝까지 바보같게도(?) 믿었다고 해야겠다.
만약 이 영화의 주연이 빈약한 연기력의 소유자에게 맡겨졌다면, 아니 보통은 넘는 연기력을 지닌 배우에게 주어졌더라도 <글래디에이터>는 수작 아닌 평작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위에서도 말했듯 이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한 인간을 영웅으로 끝없이 떠받드는 영웅 스토리이자 역경 극복기이다. 반복되는 것은 싸움, 싸움, 싸움의 연속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주연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은 영화에 더없는 힘을 불어넣었고 평작이었을 영화를 수작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 영화를 명작으로 만들기 위해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화려하고 정교한 그래픽 등 많은 부분들이 합쳐져 힘을 보탰으나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주체는 배우다. 배우 자신이 막시무스가 되어 고통을 느끼고 분노를 표출할 만한 역량을 갖고 있지 못했다면 관객은 배우 아닌 내용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결국은 어느 점에선가는 한계가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러셀 크로우의 배우로서의 힘은 일개 얼치기 관객에 지나지 않는 나조차 분명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특별할 것 없는 줄거리의 영웅담일 뿐일 수도 있었던 이 영화를 수작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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