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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km8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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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8 오후 8: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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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머>는 참 착한 영화였다. 착한 사람들이 힘을 합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상을 현실로 이루어낸 작지만 큰 승리의 감동 드라마다. 이 영화는 어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도 트릭을 구사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공법으로 승부한다. 이야기는 아주 심플하다. 그러나 그 감동은 결코 심플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특별하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지만, “뻔한 스토리네, 결말이 빤히 보이는…”이라고 생각했을 대다수 관객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조금씩 동화되어 가다, 종국엔 결말이 다 나와있는 정공법 드라마의 엔딩씬에, 다같이 마음 졸이고 곧이어 환호하고 박수치게 만드는 힘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진 진정한 미덕이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한국영화 한 편이 있었다. 스타배우 한 명 없이 시골 깡촌에서 할머니와 손자의 얘기를 담았던 ‘집으로’는,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참으로 창대했으니, 별다른 스토리도 거창한 볼거리도 없는 작은 영화가 수백만 관객을 울고 웃게 만들었지 않은가! 누군가는 이 영화를 두고, 너무나 교훈적이고 인위적이어서 불편한 영화라 평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의혹을 다 차치하고, 나는 극장에 불이 켜질 때까지 눈물을 펑펑 쏟아냈던 기억이 있다. 그 할머니가 곧 내 할머니였고, 매번 틱틱대는 그 손자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그리 어여삐 여겨주었던 할머니는, 뒤늦게야 철이 난 손녀가 살갑게 대해드릴 기회 한 번 주시지 않고 세상을 뜨셨었다. 그래서 할머니를 생각할 때면 난 언제나 죄인이었다. 눈물을 흘린 관객들은 다같이 자신의 할머니를, 또 어머니를 생각했을 것이다. 잠시 잠깐일지라도 대다수 사람들 마음 한 켠의 ‘착함’을 이끌어낸 영화였고, 그게 바로 착한 영화의 힘이자 울림이라 여겼었다.
언제부턴가, ‘완벽한 자질을 가지고, 언제나 스스로를 희생하고, 모든 난관을 해결하며, 우매한 다수를 리드하는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에 동화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세상은 그런 소수의 영웅에 의해 구제되거나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매해보이고 나약해보이는 대다수 작고 평범한 사람들의 작지만 빛나는 연대를 통해, 더디지만 의미있는 행보를 하고 있는거라 믿어서이다.
<드리머>는 두 가지를 말해준다. 잔잔하지만 설득력있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것,,,그리고 ‘가족은 소중하다’라는 것,,, 둘 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뻔한 얘기지만, 또 이 둘 다 종종 우리에게서 잊혀지곤 하는 사실들이다.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에 나온 아름다운 문구 하나가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는…… ‘꿈★은 이루어진다!’ 는 이제 대한민국의 대표 문구다.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간절히 원했고 또 그 벅찬 결과를 확인했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꿈꾸었던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치자! So what? 그러면 어쩔텐가,,, 그래도 여전히 우리에겐 꿈꿀 자유가 있고, 꿈꾸는 동안 행복하며, 노력해봤지만 안된 일에 대한 후회가, 지레 포기하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보단 백 번 낫다, 고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있다.
“넌 위대한 챔피언 / 네가 달리면 땅이 울리고 하늘이 열리지 / 승리는 네 것 / 우승컵을 안은 나는 네 등을 꽃다발로 장식하네” 다친 말 소냐에 대한 케일(다코타 패닝 분)의 굳은 믿음과, 딸의 꿈을 이루어주고픈 아빠와 가족들이 케일에게 보내는 사랑과 지지는 기적을 만들어냈고, 그걸 보는 내 가슴도 충분히 벅차 올랐다. 그리고 이 영화가 단지 ‘개연성 있는 허구’가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아도, ‘영화니까 가능하지’란 말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더불어, 연륜의 대 배우들 사이에서도 그 존재감이 꽉 차게 느껴지는 다코타 패닝을 지켜보는 재미나, 말 이름 등을 재치있게 번역해 놓은 자막을 보는 재미 또한 놓치기 아까운 쏠쏠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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