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일요일들>은 <빛나는 거짓> <내 청춘에게 고함> <양아치어조> 등 최근 몇년간 관객과 만났던 ‘독립장편영화’의 어떤 흐름을 잇고 있다. 그 흐름에 따르면 복수의 주인공이 각자의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희미한 관계를 맺고, 영화 속 그들의 일상은 충분히 특별할 수 있지만 반복적이며, 연기와 촬영을 비롯한 영화 화법은 일반적인 감정이입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꽉 찬 이야기보다는 무색무취의 공기를, 극적인 감정의 폭발보다는 이를 전후한 알 듯 모를 듯한 감정변화의 결을 묘사하는 것 또한 일관된 특징이다. 각각의 영화가 지닌 고유한 개성과 그들이 구축한 고유한 세계를 고려할 때 이런 식의 정리는 심각한 수준의 폭력이 될 수 있지만, 이들 영화가 모두 상업영화의 익숙한 양식(樣式)이나 영화적 과장과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객의 적극적인 개입을 위한 일말의 불친절함을 감수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처럼 보인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그 자체로 가치판단 혹은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관건은 애써 고수한 그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애초의 의도를 관철했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팔월의 일요일들>은 절반의 성과를 거뒀다. 사후적이고 인위적으로 고찰 가능한 관계 혹은 인연이 실은 얼마나 희미하고, 또 질긴 것인지를 말함에 있어 성공적이기 때문이다. 한 여인을 둘러싼 남편과 정부의 서로 다른 기억을 이야기하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팔월의 일요일들>과 동명의 영화가 맺고 있는 관계부터 세 주인공의 인연까지, 비약없이 자연스럽다.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두 남녀의 시선 교환을 바라보는 영화의 마지막 역시 딱 그만큼만 의미심장하다. 무리하게 비극적이거나 쓸데없이 관조적이거나 허황되게 비관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인물을 정중앙에 놓는 미니멀한 클로즈업, 인물과 인물, 대상과 카메라의 거리를 정확하게 계산한 패닝으로 정리될 수 있는 촬영스타일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의 규모 및 주제와 효과적으로 조우한 스타일이 사려깊고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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