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혼자서 봤다. 비까지 오기를 바랬는데, 그날 비가 올 듯하다가 오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혼자 영화 보는 것이 오히려 편할 때가 있다. 나이가 좀더 어렸을 때는,
친구랑, 혹은 데이트 할 때, 특별히 할 것이 없어 영화를 볼 때가 가끔 있었지만,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쉽진 않고 보고난 후에도 그리 재밌거나 감동적이었던 기억이 많지 않다.
이 영화는 그냥 혼자서 봤다.
무섭다는 것이 나를 더 자극했다. 난 무서운 영화 보면서 엄청 겁내고 쫄지만, 또 그것을 즐긴다.
각설하고...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감상을 적어본다.
난 어떤 특정 직업을 일반화하는 류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직업은 그 사람이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음에도, 실상은 또 그런 일반화의 오류를 나 스스로도 하게 될 수밖에 없기에.. 그것이 나의 직업으로 다가오면 화가 날 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 영화는 특정 직업을 다루면서도 그런 류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상당히 현실감있게, 때론 코믹하고 때론 진지하게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직업에 처음 입문했을 때, 그 직업에 긍지와 보람을 갖고 열심히 한다. 그러나 현실에 부딪히고, 실적에, 결과에 쫓기다 보면 서서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실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싫어한 선배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어느새 초라하게 늙어가거나 다른 직업을 전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그런 모습들이 송강호의 연기를 통해 하나의 흐름으로 보여서 조금은 안타까웠다.
실적을 위해 아닌 줄 알면서도 자백을 받아내고,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를 여자친구와의 섹스로 풀고, 중년이 되어서는 다른 직업을 찾아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하는 가장의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는 것일까?
영화 속의 범인은 너무나도 잔인하게, 그러나 완벽하게 범행을 저지른다. 살인의 동기나 이유도 추측할 수 없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왜?"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치 스크린을 통해, 어두운 영화관 어느 구석에서 몇 번은 반복해서 이 영화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범인을 향해 송강호는 쳐다보는 듯하다. 왜 죽였냐고, 지금 어디서 뭐하냐고, 그러고 너는 잘 살고 있냐고 묻고 있는 듯. 하지만, 범인은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겠지...
한편, 이 영화는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너무나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내면서도 정작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실제로 그 사건 이후로 화성 지역의 집값이 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이사를 했으며, 지금도 모방 범죄가 한 두 건씩 일어나고 있다는데 우리는 너무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무 대책없이 쉽게 잊어가는 건 아닌가? 뭐 그런 것들을 상기시키고 있는 듯했다.
굳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아니라도, 각종 사건사고들에 대해 쉽게 흥분하고, 성금을 모으고, 함께 슬퍼하는 듯하지만, 금방 잊어버리기에...
또 하나 더. 이 영화 속에는 아이들의 눈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 아이들이 두려울 때가 있는데, 실상 아이들은 그만큼 순수하기에 정확하게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도 아이들이 사건의 단서가 될 만한 정보들을 제시하지만 어른들은 이를 무시한다. 굳이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남의 말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반성을 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살인사건"이라는 다소 위험하고 민감한 소재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흥미성과 진실성, 현실성을 잘 살려내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결론에서 철저히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열린 구조를 택했다는 점에서도 많은 유연성이 있어 좋았다.
비오는 날, 빨간 옷 안 입어야지...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