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연]은 2000년 이후 2년 간격으로 제작되고 있는 중국 무협 블록버스터의 계보를 어어가는 영화로 2000년 [와호장룡]이 10대소녀의 성장기를 (와호장룡은 정신분석학으로 바라보면 재미있는 해석이 가능하다), 2002년 [영웅]이 전체주의의 미화를, 2004년 [연인]이 어설픈 반전으로 꼬리가 갉아먹히는 오로보로스를 다루었다면 2006년 [야연]은 중국판 햄릿 이야기를 다루되 - 세익스피어의 문학에서처럼 남자주인공의 관점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햄릿의 거투르드 왕비의 시점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햄릿의 등장인물들과 비교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황태자 우(다니엘 우)-햄릿
황후 완(장쯔이)-거투르드 왕비
황제 리(유 게)-클로디어스 왕
칭(주신)-오필리어스
칭의 오빠-레어티즈
황후 완(장쯔이)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었기에 그녀의 역할은 햄릿의 거투르드 왕비에 비해 굉장히 증폭되었다. 리가 황제인 형을 암살하고 황제로 등극하여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인 조카 우를 살해하기 위해 병사를 파견할 때, 완은 황제 리에게 Quid Pro Quo로 황제와 협상한다. (영화 초반 황제가 완의 뒤에서 어루만지면서 대화하는 장면) - 물론 Quid Pro Quo가 제시되었을 때에는 이미 조카를 암살하기 위해 병사를 파견한 뒤였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완은 문학 햄릿의 주인공 햄릿의 역할을 차곡차곡 수행해나간다 - 황제였던 남편을 그리워함과 더불어 죽은 남편의 복수를 모색하는 모습과 복수를 치밀하게 준비하기 위해 리에게 신임을 쌓아가는 모습, 완 그녀가 아직도 흠모하는 황태자 우에게 연민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장쯔이의 연기는 날로 진화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공리와 같은 배우가 맡았다면 연륜미가 더해졌겠지만 장쯔이가 연륜은 떨어진다 하더라도 남자주인공 다니엘 우보다는 확실히 연기의 폭이 넓은 배우임엔 틀림이 없다.
영화에서 황후 완의 역할이 이렇게 크다보니 황태자 우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수동적인 역할로의 축소 말이다 - 우는 완과 칭의 오빠가 하라는대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운신하고, 아버지의 복수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못하는 설정으로 나온다. 예를 들면 약재상에서 우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맹독을 구입하고도 이를 실행에 옮기기위한 계획 내지는 실천이 나타나는가? 그렇지 않다. 도리어 우의 캐릭터에 비해 황제 리의 역할설정이 커보일 따름이다. 황제 리의 캐릭터는 신하를 처벌하기 위해 태형을 집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잔인하고 완고한 캐릭터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황후 완의 진정한 사랑을 갈망했던 지고지순한 순정남(?)에 가까울 지경이다.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는 영화 후반부를 보면 안다) 황후와 사랑을 교감하기 위해 신뢰를 쌓아가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점진적으로 묘사되는 캐릭터이다. 황후 완과 더불어 격구 경기를 하길 원하지만 완이 원치 않자 그녀의 의사를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모습은 그 한 예이다.
영화의 미술 배경은 [와호장룡]처럼 동양적 행간의 미, 여백의 미를 구축하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서구적 방식의 미적 감각을 채용한다. 웅장하고 화려한 황궁의 비주얼은 [영웅]과 같이 화려한 빛의 향연으로 채워지지 않고 어두운 실내 인공광으로 대체된다. 욕망과 배신이 꿈틀대는 어두운 왕궁의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이 영화는 미적 적용에 있어 탁월한 센스를 발휘한다. 영화 제목 자체부터가 어두움과 가까운 '밤의 연회'이니 말이다.
- 하지만 이 영화는 세련된 미적 감각의 향유 만큼이나 캐릭터 연출에 신경을 썼어야만 했다. 황후 완과 리의 역할 비중이 70%이상을 차지하다보니 우의 설정은 물론이려니와 오필리어스를 연상시키는 칭과 칭의 오빠의 역할 비중은 완과 리의 역할 배치에 비해 굉장히 축소되고 말았다. 혹평을 하자면 완과 우가 처음 대면하는 장면에서 아크로바틱한 무용에 가까운 칼놀림 장면과 영화 중반부의 잔인한 신하 태형 장면, 완과 리의 격구 장면을 과감히 삭제해서라도 황태자 우- 칭-칭의 오빠 캐릭터 3인의 인물 묘사를 늘렸어야 한다. 영화를 보고있노라면 칭이 우를 향한 사랑을 엿볼 수는 있을런지언정 왜 우를 그토록 연모하고 사랑했어야 하는가에는 캐릭터 묘사가 굉장히 미흡하다. (주신의 연기력이 아까울 정도) 그리고 레어티즈를 연상하게 만드는 칭의 오빠 캐릭터도 후반부에 들어서야 집중적으로 묘사되는데 - 영화 속의 마지막 30분을 최대한 극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다면, 영화 속의 화려한 색채의 향연 만큼이나 영화 초반부와 중반부에서 치밀한 인물 묘사를 관객에게 제공했어야 한다. 그래야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인과관계에 의해 야연의 마지막 설정이 화려한 빛을 발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펑 샤오강은 그러하질 않았다. 그의 예전 영화에서도 연출력 미흡이 나타났었건만 이번에도 그 약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때문에 영화 마지막 30분은 엇박자의 도미노를 연상하게 만든다.
- 아크로바틱한 화려한 몸놀림의 비주얼은 기존 중국 무협 블록버스터의 명맥을 새롭게 이어나간다. 순간의 동작을 역동적으로 묘사하기에 적합한 슬로우모션의 아크로바틱을 보고있노라면 게임 [맥스 페인]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비주얼 부분에 있어서 헤모글로빈 과잉반응은 어찌하랴? 슬로우 모션으로 나타나는 칼놀림과 더불어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의 향연은 킬빌처럼 노골적이지는 않더라도 점진적으로 뿜어져나오는 피를 보고있노라면 도살장에 들어간 기분이 든다. 심지어 황태자 암살에 실패한 병사들이 자결하는 장면에서는 자결한 병사들의 피가 다리 아래에서 보초 서고 있는 다른 병사의 투구로 줄줄 흘러내리는 목불인견에 가까운 양태를 보인다. 영화 자체가 궁중에서의 욕망과 암투를 다룬 변주된 [햄릿]이기에 기존의 무협영화에서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액션의 과잉보다는 자연스러운 영화 설정의 흐름을 위해, 그리고 유기적 인물관계 설정을 위한 섬세한 연출이 필요했다. 이미지의 과잉을 연출, 내러티브 극대화로 대체했더라면 이 영화의 호소력은 관객에게 지금보다 훨씬 어필했을 것이다. [무극] 이후 재연된, 중국영화에 있어서 또하나의 과유불급이다.
- 마지막으로, 영화에 태클 걸기 위해 언급한 리뷰 타이틀을 살펴보겠다. 이 리뷰 타이틀인 다른 영화와의 유사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영화 초반부 왕의 병사들이 시냇가를 건너는 장면은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The Lord of the Rings : The Fellowship of the Ring]에서 나즈굴이 아르웬을 추격하는 장면을 연상케 함이 개인적인 사견이라 할지라도 다음에 기술될 이 두 장면은 우연의 일치일까?
(Ⅰ)황태자 우가 거란에게 볼모로 인계되는 종착지에서 왕의 암묵적인 지시로 병사들에게 살해당하려 할 찰나에 칭의 오빠와 부하들이 눈 속에서 튀어나와 우를 구해내는 장면은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일본 애니 [수병위인풍첩 獸兵衛忍風帖]에서 주인공이 숙적 겐마를 처음 벨 때 - 눈 속에 매복해 있다가 겐마가 말을 타고 나타날 때 겐마를 치는 장면과 유사하다. (칭의 오빠가 눈 속에서 튀어나와 칼로 베는 장면을 주목하도록)
(Ⅱ)[수병위인풍첩]과 유사한 점이 우연이라 하더라도 -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칭의 오빠가 갑옷 어깨에서 단도를 꺼내는 장면이 [글래디에이터 Gladiator]에서 황제 코모두스가 원형경기장에서 막시무스에게 열세로 몰리자 갑옷 어깨에서 단도를 꺼내는 장면과 동일함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Ⅰ)의 항목은 우연의 일치라 하더라도 (Ⅱ)의 항목은 글래디에이터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의구심을 가지게 만드는 장면이다.
(사진자료 일부는 cine21.com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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