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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증명할 수 있나요? 금발의 초원
kharismania 2006-09-19 오전 3:33:24 1236   [2]

 만약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았다면, 또한 '메종 드 히미코'를 보았다면 두 영화를 통해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이름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이누도 잇신'감독은 그렇게 단 두 편의 영화로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신뢰감있는 존재가 되었다.

 

 '금발의 초원'은 사실 위의 두 영화보다 일찍 제작된 영화다. 국내개봉시기가 위의 두 영화보다 늦은 것이다. 그러니 순차적으로 본다면 이영화는 두 영화보다도 먼저 입담에 올랐어야 했다. 물론 그것은 단지 먼저라는 순서적 이유 때문은 아니다.

 

 이누도 잇신이 자신의 팬층을 쌓아올린 조제나 히미코 같은 작품이 관통하는 것은 로맨스다. 그러나 그 로맨스는 지극히 독특하다. 장애인소녀와 대학생의 사랑은 불분명한 계기로부터 출발하고 깊어지며 이별조차도 순간적이지만 모든 것이 당연한 듯 싶어진다. 또한 히미코에서의 동성애자 아버지를 둔 여성이 아버지의 젊은 애인과 로맨스에 빠져드는 내용 역시 지극히 평범하지 않음이다. 하지만 그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로부터 추출되는 감성은 지극히 보편적이다. 그것은 감정선을 이루는 본인들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타인들간의 감성의 본질적 충돌에서 비롯된다. 본인들에게는 지극히 절실하고 솔직한 감정이지만 타인에게 보여지는 건 감정보다는 외적 모양새이다. 시선의 차이가 보이는 불협화음은 감정의 진솔함을 가리는 법이다. 그리고 이누도 잇신의 영화는 그런 경계선을 돌파한다. 물론 그 어려운 작업이 통하는 관건은 영화가 관통하는 로맨스의 진실된 감정을 관객에게 뚜렷하게 투영하는 것이다.

 

 나리스(이케와키 치즈루 역)는 노인들의 도우미 일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새로운 노인을 돌보기 위해 찾아간다. 그곳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조금 이상하다. 그 할아버지는 자신이 20살의 젊은이라고 믿고 있다. 아무래도 치매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자꾸 자신을 대학시절 자신이 사모하던 여자라며 마돈나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싫었다. 그런데 점점 이 할아버지가 좋아진다.

 

 닛포리(이세야 유스케 역)는 어느날 눈을 뜨니 자신의 몸이 무거워진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난데없이 나타난 옆집 꼬마는 자신을 영감이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때 한 소녀가 나타나 자신을 돌볼 도우미라고 하는데 그녀는 자신이 사모했던 대학시절의 마돈나다. 그녀가 자신을 돌봐준다니 꿈만 같다. 아니, 이건 꿈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보낸다. 꿈 속인데도 그녀는 시간이 되면 돌아가버린다. 그래서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려한다. 어차피 꿈이니까.

 

 만약 우리가 사는 곳이 꿈이라면 그 꿈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줄만한 유토피아가 되어줌이 바람직하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염원들이 꿈에서나마 이루어진다면 그 꿈은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은 코마상태라도 좋을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항상 달콤한 꿈에서 깨어 현실을 대면해야 하고 현실은 항상 꿈처럼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무언가가 이루어짐을 느낀다면 그것이 꿈같은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실과 꿈의 경계는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현실을 살고 있다는 것은 행복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있다는 것에 대한 근거가 된다.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이상적 현실에 대한 기대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불만족감이자 만족을 향해 가야만하는 현실적 목표가 된다.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현실은 때론 두렵다. 좌절도 겪고 아픔을 딛은 뒤에 찾아온 행복이 소중한 건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행복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그만큼 현실에서의 행복은 염원되어지는만큼 소중하다.

 

 닛포리가 직접 현실에서 얻어진 행복을 증명하고자 함은 그게 아니었을까. 그는 행복했다. 자신이 소망하던 마돈나가 자신을 찾아왔고 그녀는 자신의 청혼조차도 받아주었다. 그래서 그는 뛰어내렸다. 자신에게 찾아온 행복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리스는 자신의 배다른 동생을 사랑하지만 그로 인해 슬픔을 느껴야만 한다. 자신이 스무살이라고 믿는 치매노인의 구애는 정신나간 행위로 치부하기에는 진솔하고 순수해보인다. 자신의 절실하던 사랑은 점점 희박해지고 그 희박한 사랑위로 생각지도 않던 닛포리가 겹친다. 동정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를 동정하는 것이라도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성취한 행복의 무게감앞에서 자신이 망각하던 현실과 자신이 믿고 있던 꿈의 경계선을 놓쳐버린다. 놓쳐버린 경계선의 축을 기울이기 위해 그는 직접 대기 속으로 몸을 띄운다. 그리고 자신이 현실안에서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스무살 청년이 아닌 여든 살의 늙은이였음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그녀와 결혼할 수 없게 됨도 깨닫는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짐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했음을 깨닫는다. 꿈이 아닌 현실속에서.

 

 나리스는 알았다. 행복을 찾는 방법을. 전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이들의 행복이 아닌 그 행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못하는 자신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고백한다. 자신의 배다른 동생에게 시작을 알린다. 끝은 상관없다. 그시작에 의미가 있으니까.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좋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예감은 출발하니까. 그것이 자신이 처한 현실이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것보다는 현실안에서 무언가를 해보는 것이 더 나을테니까.

 

 이 영화는 이누도 잇신의 대표작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의 원류이자 전신이다. 자연광을 최대한 이용한 듯한 영화의 빛깔은 따스하다. 마치 이영화의 느낌처럼 관객을 따스하게 감싸안는 것만 같다. 이 작품은 후자의 두 작품보다도 판타지적인 몽환성이 느껴진다. 그것은 시간을 거스르는 닛포리의 질병같은 착각으로부터 빚어지는 결과물이다. 여든 살의 치매노인은 자신을 스무살로 안다. 그래서 그는 관객에게 여든살의 노인이 아닌 스무살의 청년으로 보인다. 만일 늙은 노인이 실제로 그 연기를 했다면 이 영화의 이미지는 단순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스무살의 청년이 연기하는 여든살의 할아버지는 인상적이다. 이보다 실감나는 특수효과도 없다. 기발하면서도 번뜩이는 재치가 아닐 수 없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은 무언가 결핍된 인물들간의 로맨스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비정상적인 방식의 소통은 가장 정상적인 감성적 울림을 동반한다. 아름다운 이야기. 어른들을 위한 동화와 같이 그는 깊숙히 잠들어 있는 관객의 영혼을 조심스레 흔드는 것만 같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거나 혹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한번쯤 두 손으로 눈을 가려보자. 황금빛으로 물든 금발의 초원에 기선이 들어오는 것이 보이는가. 그리고 셰계일주를 떠나자. 자신이 사랑하고픈 그 사람을 곁에 두고. 정녕 그것이 꿈일지라도 그곳은 아름답다. 그곳에는 현실에서 간과하는 자신의 사랑을 꿈꾸게 한다. 다시 깨어날 잠깐의 꿈일지라도 그곳으로 갈 수 있다면 그대는 한번쯤은 사랑앞에 웃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꿈같은 현실이라도. 현실같은 꿈이라도. 우리는 현실을 얼마나 믿으며 살고 있는가. 행복을 인지하지 못하는 삶은 꿈보다도 부질없다. 우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행복의 기운조차 인지하지 못하니까. 그러니 증명할 수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금발의 초원을 꿈꾸며 날아오를 수 없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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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초원(2000, Across A Gold Prairie / 金髮の草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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